[박완규칼럼] 청년, 정치에서 길을 찾아라

박완규 2021. 2. 22.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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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인구 부양에다 나랏빚 떠안아
세대갈등, 우리 사회 화두로 부상
정치언어 갈고닦는 청년정치인들
신중하고 단호하게 걸음 내딛길

민태원은 수필 ‘청춘예찬’에서 청춘을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라고 했다. “청춘의 피는 끓는다”며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이라고도 했다. 지금 청년들에겐 청춘이 저주에 가까운 말이다. 누구에게나 고단한 시절이지만 청년들이야말로 덫에 걸린 모양새다. 자아 실현 같은 큰 꿈을 품을 나이에 부모의 둥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갈 방도를 고민하는 처지다. 코로나19 사태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기회조차 얻지 못한 이들이 주변에 수두룩하다. 어렵사리 취업 관문을 넘더라도 숱한 난관이 앞을 가로막는다. 평생 집을 사지 못하게 될까봐 걱정하는 청년들이 많다. 20대는 취업 지옥, 30대는 주거 지옥이다. 이러니 결혼이나 출산을 무작정 미루게 되고 코로나19 핑계로 사람 만나는 일마저 뜸해진다고 한다.

세대 갈등이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올랐다.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세대 정의(generational justice)’ 같은 말이 유행하고 있다. 급증하는 고령인구를 부양하는 부담을 떠안는 데 대한 반발이 거세다. 개인의 빚 감당도 버거운데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나랏빚까지 떠안아야 한다. 청년들 사이에선 비난을 무릅쓰고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명확히 드러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박완규 논설실장
정치의 계절이 다가왔다. 한 달여 남은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와 1년여 남은 대선을 앞두고 있다. 온갖 공약이 넘쳐나지만 청년들이 당면한 문제들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은 미적지근하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이들에게 미래를 열어주는 건 엄중한 시대적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남에게 미룰 일이 아니다. 청년들이 정치에 적극 참여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야 할 때다. 지난해 국회에 입성한 청년 정치인들의 어깨가 무겁다. 이념이나 진영으로 갈라져 사사건건 옳고 그름을 다투는 데만 열중하는 기존 정치의 틀을 바꿔나가야 한다. 그래야 정치권이 민생과 관련한 구체적인 해법을 모색하는 데 눈을 돌리게 되고, 그 과정에서 청년들이 떠안고 있는 문제에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갖게 될 여지가 생길 것이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피 끓는 청년 정치인이다. 당 대표에게 당한 성폭력 피해 사실을 밝히고 시종일관 당당하게 처신했다. 하지만 이보다는 정치 언어에 대한 차별화된 인식 때문에 그를 주목하게 됐다.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 정치의 언어에 관해 “정치인들이 자기가 지향하는 바를 향해 끊임없이 자기 언어를 갈고닦으며 사람들에게 더 잘 전달하는 법을 고민해야 하는데, 편 가르고 상대방을 효과적으로 공격하는 데 최적화된 언어를 찾는 데만 골몰하는 것 같아 실망스럽다”고 했다. 정치인들이 판에 박힌 말만 쓴다는 것이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은 나이나 격식을 따지는 정치권 관행을 질타한다. 여권 정치인들 간의 태도 논란과 관련해 “정치는 ‘형님 동생’하는 친소관계에서 이뤄지는 일이 아닌, 국민과 나라의 미래를 그리는 일이어야 한다”며 “태도에 대한 이야기가 ‘합리적 대화’를 막는 언어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철학자 최진석은 산문집 ‘경계에 흐르다’에서 “말을 그 이전과 다르게 다루지 않고는 정치가 달라지지 않는다. 말에 대한 다른 태도만이 다른 정치를 기약한다”고 했다. 소수 정당의 청년 의원들이 국민에게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정치 언어를 정교하게 다듬는 것은 고무적이다. 청년 정치인들이 확고한 철학을 기반 삼아 정치 언어의 문법을 바꿔나가길 기대한다.

청년의 정치 참여는 신선하다. 이념이 아니라 실용주의적 가치를 추구하는 청년들이 정치의 새 길을 열 수 있다. 청년 정치인들이 어깨에 짊어진 과제가 무엇인지를 명심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하면서도 단호하게 내딛기를 바란다. 그들이 내는 길을 누군가는 뒤따를 것이기에 그래야 한다. 길을 찾지 못해 헤매는 이들에게 무력감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희망을 주는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지금 이 시대에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 아니겠는가.

박완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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