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의 입] "문 대통령도 패싱 당했다"

김광일 논설위원 2021. 2. 22.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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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청 간담회, 라는 것이 있다. 당청(黨靑)이라는 것은 당은, 집권당, 청은, 청와대를 뜻한다. 당청, 즉 집권당과 청와대가 한 자리에 모여 얘기를 나누는 것이 당청 간담회다. 민주당에서는 당 대표, 원내대표가 오고, 청와대에서는 당연히 대통령과 비서실장 같은 사람이 테이블에 앉는다. 테이블 양쪽에 다섯 명씩 앉으면 대략 10명쯤 되고, 그 뒤에 배석한 사람들까지 있으면 20명 가까이 될 수도 있다.

지난 주말부터 오늘까지 신현수 민정수석의 ‘사의(辭意) 파동’이 나라를 온통 들썩이게 하던 와중이었는데도 신 수석 얘기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또 다른 현안으로 뜨겁게 정국을 달구고 있었던 국정원 불법사찰 얘기도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대신 재난지원금 문제, 한일 관계 등을 논의했다고 했다. 원래는 오전 11시쯤 시작해서 점심을 먹지 않는 간담회로 계획됐으나 문 대통령이 “논의에 집중하자”고 해서 갑자기 도시락을 먹으면서 오후 1시쯤까지 회의 시간이 길어졌다고 했다. 이런 말도 약간 믿기 힘들지만 아무튼 청와대 설명이 그렇다.

이날 문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처럼 당정청이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준 때가 없었다. 역대 가장 좋은 성과를 얻어낸 당정청이라고 자부해도 좋을 것입니다.” 이 말이 언론 제목으로 많이 나왔다. 그중 ‘역대 가장 좋은 성과’라는 말이 상황 파악에서 빗나간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한 매체는 “현실은 시궁창인데 자화자찬 일색이었던 당청 간담회”라고 꼬집기도 했다. 반면 일부러 이낙연 대표 띄워주기를 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전직 대통령 사면 발언, 4차 재난지원금을 선별적으로 주느냐 보편적으로 주느냐 논란 등을 빚으면서 상처 받은 이 대표를 공개적으로 칭찬해주면서 사기를 북돋웠다는 것이다. 4월7일 서울·부산 시장선거를 앞두고 당청이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날 문 대통령은 모두 발언에서 이렇게 말했다. 4차 재난지원금을 언급하면서 “당에서도 재정 여건을 감안해 달라.” 이것은 무슨 뜻일까. ‘재정 여건을 감안’해 달라는 것은 돈 풀기의 규모를 줄여달라는 뜻이다. 홍남기 기획재정부에서 해왔던 얘기를 대통령이 대신 해준다는 맥락도 있었다. 그러자 바로 이어진 비공개 석상에서 이낙연 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가 경기 진작용 지원금을 거듭 거론하자 문 대통령은 말을 바꿨다.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에서 벗어날 상황이 되면 국민 위로 지원금을 검토할 수 있습니다.” ‘재정 여건 감안’에서 갑자기 ‘위로 지원금’으로 바뀐 것이다.

따지고 보면 재난지원금 관련 대통령 발언은 이렇지가 않았었다. 지난달 1월18일 신년기자회견 때 이렇게 말했었다. “4차 재난지원금은 논의할 때가 아니다.” 그랬다가, 다시 ‘여건을 감안해달라’고 했다가, 또 다시 ‘국민 위로금’으로 바뀐 것이다. 그 사이 코로나 상황이나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절박한 현실이 크게 요동친 것도 없다. 다만 대통령 발언이 크게 요동친 듯한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선거를 코앞에 두고, 그리고 임기 말 마지막 해에 들어선 문 대통령이 민주당에게 “주도권을 내주고 있다”, “여당에 휘둘리고 있다”, “주요 현안마다 강경파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등의 분석이 나왔다.

북한 문제, 대북 정책도 문 대통령의 발언이 급선회하는 인상을 주고 있다. 1월 신년회견 때 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좀 더 속도 있게 북미, 남북 대화를 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즉 남북 정상회담 추진 등 대북 정책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한 달 쯤 뒤인 2월15일 정의용 외교장관 임명장 수여식에서는 “가시적 성과를 올리기 위해 서두르진 말라”고 했다. ‘속도감 있게’에서 ‘서두르진 말라’로 바뀐 것이다.

한일 관계에 대해서도 문 대통령은 지난달 이렇게 말했다. “과거사는 과거사고, 미래 지향적으로 발전해 나가야 하는 것은 그것대로 해나가야 한다.” 어떤 대통령이든 한일 관계에서 ‘미래 지향적’ 이란 말을 쓸 때는 적극적으로 한일 관계를 개선하고 유화 국면으로 이끌겠다는 의지 표명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엊그제 당청 간담회에서는 이런 발언으로 바뀌었다. 즉 위안부 피해자 및 강제징용 배상 판결 문제와 관련, 문 대통령은 “일본의 진심어린 사죄에 달린 상황이다.” “단순히 돈 문제만은 아니고 당사자들이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한일관계에서 대통령이 ‘미래 지향’을 버리고 ‘진심어린 사죄’ ‘당사자 인정’ 이 두 가지를 꺼내는 순간 그것은 한일 경색을 불사하더라도 정치적으로 반일 감정 카드를 다시 활용하겠다는 뜻이 된다.

이뿐 아니다. 검찰에 대한 입장도 냉탕과 온통을 오락가락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1월18일 신년 회견 때 추미애 전 법무장관, 윤석열 검찰총장 갈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국민들께 정말 송구스럽다.” “윤석열 총장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다.” 이 말은 법무부-검찰 갈등에 대해 대통령이 국민 앞에 사과했다는 뜻이고, 앞으로는 검찰의 독립성을 더욱 보장하고 관계의 정상화를 꾀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지난 2월7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유임하는 등 이른바 ‘정권의 불법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를 제지하려는 듯 ‘방탄 인사’를 재가했다. ‘윤석열은 우리 정부 사람’이라는 입장에서 그게 아니라 ‘이성윤이 우리 정부 사람’이라는 입장을 다시 확인하는 쪽으로 복귀한 것이다.

사실 ‘신현수 사의 파동’이 이번 주에 어떤 식으로 봉합이 되고 수습이 되든 상관없이 이번 사태의 본질은 작년 말 문 대통령이 신현수 수석을 임명하면서 그에게 했던 약속을 지난 검찰 인사로 180도 뒤집었기 때문에 빚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신현수 수석은 문 대통령에게서 ‘어떤 배신감’ 혹은 ‘되돌릴 수 없는 절벽’ 같은 것을 느꼈을 수도 있다. 그 결과로 사표를 던진 것이며 문재인 정권은 이미 타격을 입었다는 뜻이다.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오늘 조선일보 칼럼에 이렇게 썼다. ‘신현수 사태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이란 제목인데, 여기서 그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렇다. “(신현수 민정수석은) 철석같이 믿었던 여권의 구원투수다. 그가 또다시 등을 돌린 것이다.” 고정애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오늘 ‘지금 청와대는 위아래도 없다’는 칼럼을 썼다. 한 대목을 인용한다. 지난2월7일 일요일 박범계 법무부가 검찰인사를 전격 발표한 당일에 관한 묘사다. 이렇게 돼 있다. “법무부는 당일 낮 12시쯤 기자들에게 ‘오후 1시30분 인사 보도자료 배포된다’고 알렸다. 신 수석이 뒤늦게 이를 알고 발표를 늦추려고 했지만 법무부가 예정대로 했다. 대통령의 결재가 난 사안이라면 신 수석이 늦추려 했겠는가. 신 수석이 이에 대한 감찰과 조사를 요구했다는 게 사실이라면, 문 대통령도 ‘패싱’당했다고 봤기 때문 아닌가.”

그렇다. “문 대통령도 패싱 당했다”고 신 수석은 봤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청와대는 위아래도 없다’는 제목을 붙인 것이다. 문 대통령은 윤석열 검찰총장에게도 메신저를 보내서 “흔들리지 말고 임기를 지키면서 소임을 다하라”고 했다지만 그 뒤로도 법무부·검찰 갈등은 전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요동쳤고, 지난 연말 신현수 수석에게 “검찰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것처럼 사상 초유의 ‘민정수석의 항명 사태’, 즉 ‘민정 반란’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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