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스포츠)는 정말 공정할까 [이용균의 베이스볼 라운지]

이용균 기자 2021. 2. 22.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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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야구(스포츠)가 갖는 신화는 ‘공정성’에 기반한다. ‘페어 플레이’는 스포츠의 제1원칙이다. 정해진 규칙 안에서 정정당당하게 실력을 겨뤄 승패를 가린다. 야구(스포츠)는 정말 공정할까.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능력주의’에 대한 경도를 비판한다. ‘불평등한 사회에서 꼭대기에 오른 사람들은 자신들의 성공이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믿고 싶어한다. 능력주의가 원칙이 되는 사회에서는 나는 나 스스로의 재능과 노력으로 여기에 섰다고 믿을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모든 성취가 개인의 능력으로 치환되면서 실패 역시 오롯이 개인의 영역으로 떨어진다. 샌델은 ‘실패하면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닌 자기 자신의 잘못이라는 인식도 심어주게 된다’고 말한다.

여기서 승자와 패자 사이에 위계가 만들어진다. 노력이 곧 능력으로 치환되고 그 사이에 ‘배경’과 ‘행운’ 등 다른 요소가 배제되면서 승리에게 오만을, 패배자에게는 굴욕과 자기혐오가 강화된다. 샌델은 ‘완벽한 능력주의는 행운이 따른 성공이라는 감사의 마음을 제거하고 연대감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일종의 폭정, 부정의한 통치를 조장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스포츠의 학교 폭력이 만성화되고 용인돼 왔던 것은 정확히 이 지점이었다. ‘능력주의’와 ‘성과주의’의 폭정 속에 ‘실력’은 과포장되고 팀 내 부정의한 통치를 조장했다. 해당 선수의 실력은 때로 ‘행운에 가까운 재능’ 또는 ‘유전자’나 ‘부모 찬스’였을 수도 있지만 모두 ‘노력’과 ‘능력’으로 포장됐다. 반면 운과 기회가 부족했을지도 모르는 패자들은 자기혐오와 굴욕에 빠져야 했다.

샌델은 과도한 스트레스와 고된 노력이 능력주의를 강화시키는 요소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치면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한 성공은 오로지 자신의 몫이라고 여겨지지 않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스포츠 역시 고된 훈련을 통해 능력주의를 강화시킨다. 지독한 훈련량은 선수 간 위계뿐만 아니라 지도자의 위계를 강화시킨다. 감독과 코치는 기량이 늘지 않는 선수들을 향해 “넌 왜 안 돼”라고 질문함으로써 또 한 번 책임을 선수 개인으로 돌린다. 모든 실패는 잘못된 지도 방식 때문이 아니라 선수 개인의 노력 부족 때문으로 치부된다. 어쩌면 단지 운이 없거나 기회가 없었을 뿐인 대다수 ‘패자’들은 자기혐오 속에 ‘학폭’으로 대표되는 부정의한 통치를 참고 견딜 수밖에 없었다.

샌델은 ‘추첨 입시제’ 등을 대안으로 내세웠지만 거꾸로 야구(스포츠)에 길이 있을지 모른다. NC는 지난해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경기 초반 잘 맞은 타구들이 잡히면서 경기를 내줬다. 이동욱 감독은 “잘 맞은 타구가 야수 정면으로 가는 것은 선수들이 제어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Babip(인플레이 타구 타율)은 때로 바빕신(神)이라 불릴 정도로 ‘운’의 영역이다. 야구는 능력뿐만 아니라 ‘행운’을 인정하는 종목이다. NC는 2차전의 패배에서 능력 부족을 탓하는 대신 행운 부족을 인정했고 결국 우승에 성공했다. 행운의 인정은 능력주의를 완화시키는 요소다.

데이터 또한 해답이 될 수 있다. LG 양석환은 지난 시즌 막판 제대 뒤 복귀해 타율 0.246에 그쳤다. 과거 같았으면 ‘스윙 1000개’라는 노력이 답으로 제시됐겠지만, 트래킹 장비는 양석환의 히팅 포인트가 지나치게 포수 쪽으로 치우쳤다는 점을 찾아냈다.

양석환은 노력 부족이라는 자기혐오에 빠지는 대신 “티를 극단적으로 앞에 두고 중심 이동으로 때리는 훈련을 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세상에는 개인의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 일이 훨씬 많다. 의지가 개입되지 않는 행운과, 기계를 통해 수집돼 인간의 편향이 제거된 데이터는 능력주의의 폐해를 보완할 수 있다. 그래서 야구(스포츠)는 꼭 필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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