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전달자 - 로이스 로우리 [이태겸의 내 인생의 책 ②]
[경향신문]
<기억전달자>에 등장하는 사회는 전쟁과 혼란을 겪은 뒤 재생산질서가 유지되도록 빈틈없이 체계화시켜 놓은 가상사회이다. 어렸을 때 직업이 정해지고 출산과 육아는 분리되며 가족은 혈연이 아닌 필요에 따라 구성된다. 단순한 생활, 단순한 감정이 반복되는 커뮤니티 사회이다.
사회는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데 구성원 중 과거를 기억하는 이는 ‘기억보유자’로 지명된 자가 유일하다.
주인공인 열두살 조너스는 기억보유자로부터 기억을 전달받아 보유해야 하는 직위를 맡게 된다. 기억보유자 노인은 수도자처럼 이 일을 수행한다. 조너스는 충격을 받는다. 기억은 슬픔, 분노, 사랑, 자유 같은 감정을 동반했고, 그건 커뮤니티 유지를 위해서는 불필요한 감정들로 치부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너스는 이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등한다. 그 세계를 벗어나려 결단한다.
나는 가상사회가 우리와 다를까 의문이 들었다. 우리 사회 역시 우리에게 부여하는 사회적 사명은 시스템 유지에 있지 않은지. 사회시스템으로부터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는 건 애초에 착각이 아닌지. 여태껏 대부분 시간을 내가 자유롭다고 착각하며 살아온 건 아닌지. 내가 느끼는 감정은 사회시스템이 제공하는 건 아닌지.
우리 사회시스템에서도 어떤 이는 기억보유자이며, 어떤 이는 기억전달자이며, 어떤 이는 기억을 전달받는 과정에서 조너스처럼 갈등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우리네는 사회시스템이 요구하는 고유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만도 힘들어한다. 역할을 잘 수행하게 되면 만족하며 살 것이다. 여기에는 기억과 감정들이 어느 정도 제한될 수 있다. 그래도 상관없다. 기억과 감정의 훼손쯤은.
이런 생각이 든다. 그 과정에서 얻게 된 내 기억과 감정들은 누구의 것일까, 하는. 내 것일까 사회의 것일까. 역할 이전의 나와, 역할에 충실한 나와, 역할을 벗어난 내 기억과 감정이 각각 달라진다면….
이태겸 |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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