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배출 줄이려 전기에 의존..기후변화 속 '전력망 위기' 불러
[경향신문]
전기차 등 영향 전기 수요 폭증
한파 속 정전사태 불편 ‘부메랑’
안전성 높일 과감한 투자 필요
이상혹한에 미국 텍사스의 전력망이 붕괴하면서 모든 에너지를 전기로 공급하려는 세계적인 흐름이 시험에 들게 됐다.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자동차나 난방 등의 에너지원을 전기로 대체하는 것이 불가피하지만, 잦아진 기후변화와 높은 전기 의존도가 전력망을 붕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21일(현지시간) ABC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주 텍사스주를 방문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최근 텍사스에서는 이상한파로 400만가구 이상에 ‘블랙아웃’(정전)이 발생해 20여명이 숨졌다. 전력망의 과부하는 이번 정전의 원인이 됐다. 이상혹한에 난방 수요는 폭증한 반면 185개 발전소는 설비 동결 등으로 작동을 중단하면서 전력 수요가 공급을 30%나 웃돌았다.
이상기후에 의한 전력 공급 차질은 텍사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연례행사처럼 정전이 발생하는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지난해 여름 폭염에 전력 수요가 폭증하며 75만명이 정전을 경험했다. 지난달에는 갑작스러운 혹한에 유럽의 전력망 전반이 타격을 입었다. 일본과 파키스탄 역시 이상기후로 인해 최근 전력 공급에 차질을 빚었다.
이는 에너지 소비에서 전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는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 특히 화석연료를 전기에너지로 대체하는 ‘전기화’가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은 에너지 소비의 28%를 차지하는 교통 부문에 전기차를 확대 보급할 계획이다. 유럽연합(EU)은 난방 에너지원의 30%가량을 차지하는 가스 비중을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전기로 대체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업체 블룸버그NEF에 따르면 전 세계 전력 수요는 전기차와 스마트기기, 사물인터넷 보편화의 영향으로 2050년까지 60%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블룸버그NEF의 에너지 분석가 산지트 상헤라는 “모든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전기화로 전력망 위기가 더 빈번해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에너지회사 CLP의 최고경영자 리처드 랭커스터는 CNBC에 “오늘날의 전력망을 갖추기까지 120년이 걸렸다”며 “우리는 (각국이 탄소배출 제로를 약속한 2050년까지) 앞으로 30년 동안 이것을 탄소배출이 없는 발전설비로 교체해야 할 뿐 아니라 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전력 공급을 60% 이상 증가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다시 화석연료 비중을 늘린다면 기후변화는 더 극심해질 수 있다. 폐기물을 10만년 이상 땅에 묻어야 하는 원자력발전도 흔쾌히 대안으로 택하기 어렵다. 결국 전력망의 안전성을 높이는 과감한 투자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혹한·폭풍 등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땅속으로 전선을 매립하는 전선 지중화를 진행하고, 재생에너지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 대용량 에너지 저장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시민들의 비용 부담을 위한 논의도 본격화될 필요가 있다.
국제에너지기구의 분석가 키스 에버하트 등은 지난 18일 보고서에서 “극한 기온이 과도기의 전력 시스템을 시험에 들게 하고 있다”며 “청정에너지 전환에 대한 사회적인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도 대규모 정전을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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