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속의 천하 이룬 세종.. 세계 최고의 과학문명 일궈냈다"
천문학 '칠정산', 의서 '의방유취'
동시대 어느 문명과 비교해도 최고
천하의 지식 끌어모아 표준 세워
사대부들 과학기술에 높은 관심
시문·경전에만 매달린 것은 아냐
세종대 조선이 성취한 문명의 수준을 전북대 신동원 교수는 이렇게 압축했다. 특히 과학 분야에 대해서는 “혁명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획기적인 변화들은 동시대 어느 문명과 비교해도 최고였다. 이슬람과 중국의 역법을 뛰어넘은 ‘칠정산 내·외편’, “15세기 최대 규모의 의서”인 ‘의방유취’, 두 말이 필요 없는 ‘훈민정음 창제’는 대표적인 사례다.
신 교수가 최근에 낸 ‘한국과학문명사 강의’는 전근대 과학기술의 면모와 발전과정을 ‘하늘’, ‘땅’, ‘자연’, ‘몸’, ‘기술과 발명’의 다섯 가지 주제로 나눠 설명한다. 말미에는 개항 즈음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한국 근현대 과학사’를 덧붙였다. 책을 보면 선사시대부터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던 우리의 과학사가 세종대에 정점을 찍는다는 걸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지난 19일 1시간가량의 전화 인터뷰에서 신 교수는 과학혁명의 설계자이자 다양한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실무자이기도 했던 세종과 그의 시대를 소개했다.
-세계 최고라는 평가를 구체적 사례를 들어 설명해 달라.
“천문학의 경우 원나라의 달력인 ‘수시력’, 이슬람의 역법을 배운 뒤 계산법을 알아냈다. 중국이 잘못 사용하던 오류까지 잡아낼 정도로 철저하게 공부했다. 이후에는 계산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중국에도 없던 새로운 관측 기구를 개발했다. 의학 분야를 보면 ‘의방유취’라는 전대미문의 책을 만들었다. 외국의 책까지 모두 모은 뒤 중복된 부분을 덜어내고, 약재가 조금이라도 틀려도 잡아내 표시한 뒤 정리했다. 당대의 책이 기존의 내용을 재배치하는 방식으로 편찬된 것이 많다는 점에 비춰보면 엄청난 성과다.”
“세종대의 업적을 흔히 표현하는 ‘독창성’, ‘자주성’은 보편성, ‘세계성’을 획득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얻은 결과다. 천하의 지식, 정보를 끌어모은 뒤 그것을 능가하는 성과를 창출했다. 국내용이 아니라 (당시 세계질서인) 유교 문명의 핵심을 바로잡으려 했던 것 같다. 천하의 표준을 세우는 작업을 한 거지. 훈민정음은 성리대전(명나라에서 성리학의 이론을 집대성해 편찬한 책)에 포함된 음양오행의 원칙을 적용해 창제한 것이고, 당사자들은 한글의 탄생을 한자의 창제와 동일한 지평에서 평가했다.”
-세종대에 어째서 이런 일들이 가능했을까.
“세종 자신이 그랜드 어젠다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출간된 지 4년밖에 지나지 않은 1419년에 조선에 수입돼) ‘따끈따끈한’ 성리대전이 학문적 욕구를 자극한 것 같다.”
-세종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 건가.
“그렇게만 보면 안 된다. 세종은 구체적인 작업 지시까지 했다. ‘자치통감훈의’(중국 역사책 자치통감에 해설을 단 책)를 편찬할 때는 신하들이 가지고 온 원고를 직접 읽고 일일이 수정했다. 이런 방식이 역사뿐만 아니라 천문학, 음악, 수학에까지 적용됐다. 현장지도를 한 셈인데, 그것의 효과가 빠르고, 분명하게 나타났다. 임금이 너무 잘 아니까 밑에 사람들도 사기(?)를 칠 수 없었던 거지.”
-세종대의 업적은 제대로 계승, 발전되었나.
“성리학의 사변적인 측면만 봐서 오해하는 것이다. 농서나 의서 편찬, 화약 개발, 목화씨 수입 등은 사대부들이 실천하려 한 기본 이념인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중 (과학기술을 실제 활용할 수 있는) ‘치국평천하’의 본보기다.”
그는 책의 머리말에서 대동여지도 제작, 수학과 박물학 탐구, 거중기 설계 등을 예로 들며 사대부들이 주도한 조선후기 과학기술의 발전을 평가하기도 했다. 다만 “적극적인 실행으로 이어지지 못한 점은 아쉽다”고 적었다. 또 “과학기술을 특별히 장려하거나 경제적인 시스템과 결합하지 않고, 생활에 필요한 것만 일상적으로 생산하는 정도에 머물렀다”며 “자본주의와 결합해 과학기술을 중심으로 사회를 재편한 산업혁명을 이룬 서양과 다른 점”이라고 말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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