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관의 인생 첫 다큐멘터리 [안승호의 PM 6:29]
[스포츠경향]
공이 느리다. 제구가 좋다. 싱커가 좋다. 꾸준하다. 노련하다. 말을 잘 한다. 재미있다. 유쾌하다. 퍼포먼스를 즐긴다.
두산 유희관의 이미지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가다 보면 ‘매우 예능적’이라는 지점에 도착한다. 유희관은 ‘예능 섭외 1순위’ 야구 선수다. 비시즌 간간이 방송에 얼굴을 내미는 것이 이미 익숙한 데다 프로야구 미디어데이가 열렸다 하면 두산 대표선수로 고정 출연을 해왔다.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 그런 기록을 공식 집계했다면 유희관은 리그 통산 미디어데이 최다 출연 선수일 것이 확실하다. 두산은 유희관이 첫 10승을 한 2013년 이후 한 시즌(2014년)만 빼고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그사이 두산의 가을야구는 매번 유희관이 말문을 열며 시작됐다.
그가 말하는 데에 있어 이만큼 주저한 적은 또 없었다.
두산과 1년 총 10억원(연봉 3억원·인센티브 7억원)에 자유계약선수(FA)로 계약 사실을 알린 지난 16일을 전후로, 유희관은 이천베어스파크에서 진행된 공식 인터뷰를 제외한 자리에서는 말을 극도로 아꼈다. “홀가분하다. 두산 베어스에서 사랑받았고, 좋은 성적 거뒀고, 팬 여러분의 응원 덕분에 돌아올 수 있었다”는 이른바 모범답안 같은 인터뷰를 했지만, 계약 과정에서의 이런저런 감정 선까지 끄집어낸 코멘트는 아니었다.
스프링캠프 시작 뒤로도 보름 이상 시간이 지체된 시점이었다. 협상 타결까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던 듯싶다. 실제 두산은 유희관에 1+1년에 총액 10억원을 살짝 상회하는 조건을 제시했고, 유희관은 무엇보다 구단에서 계약기간으로 2년이 아닌 ‘+1년’을 붙이며 불신의 신호를 보냈다는 데 불편함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답 없이 시간만 보내던 협상은 김태룡 두산 단장이 전격 등판하며 마무리됐지만 여운은 남았다.
유희관은 운이 좋았든 나빴든, 공이 빨랐든 느렸든 지난해까지 KBO리그 역대 4번째로 8년 연속 10승 고지를 밟은 선수다. 보다 그럴 듯한 대우를 받고 싶어했던 것이 리그 통념상 무리는 아니었다.
다만 걸리는 장면은 하나 있었다. 유희관은 지난해 11월13일 KT와의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선발로 나와 3타자만을 상대해 3연속 안타를 맞고 조기 강판했다. 그게 시즌 마지막 등판이었고 그 잔상은 협상 테이블까지 전달됐다. 적어도 유희관이 그날 평균 이상으로 잘 던졌다면, 또 두산이 NC를 넘어 우승까지 했다면 유희관은 분명 다른 위치에서 협상이 가능했을 것이다.
계약일을 전후로 기자와 몇 차례 통화한 유희관은 지난 8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목소리를 냈다.
인터뷰다운 인터뷰는 아직 사절이다. 유희관은 “인터뷰하자는 연락을 많이 받았다. 그때마다 하고 싶지 않다는 말씀을 드렸다. 지금은 ‘할많하않’(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이다”며 양해를 부탁했다. 하고 싶은 얘기를 실수 없이 잘 하더라도 지금은 돌아오는 메아리가 좋을 수 없다는 걸 너무도 잘 안다는 뉘앙스였다. 협상에 불리하게 작용한 지난해 가을야구 마지막 등판을 놓고도 복기하기보다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또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경기”라며 그저 앞만 보고자 했다.
유희관은 2013년 5월 더스틴 니퍼트의 갑작스러운 등 부상으로 대체 선발로 나서 극적으로 첫 승을 거두고는 시속 140㎞에는 접근조차 못하는 느린 직구로도 정상급 선발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그렇게 드라마처럼 등장했고, 그 이후로는 예능하듯 발랄한 세월을 보냈다.
어쩌면 지금은 유희관 야구 인생의 첫 다큐멘터리가 시작되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유희관은 진지하게 그 시간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천 2군 캠프에서 훈련한다. 울산에서 1군이 돌아올 때 즈음 합류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승호 기자 si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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