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책임회피' 청문회.."노동자 불안전한 행동" 탓한 현대중

박준용 2021. 2. 22.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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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자가 불안전한 행동"
쿠팡 등 9곳 대표 나왔지만
안이한 인식에 질타받아
구체적 안전대책도 안 내놔
최정우 포스코 회장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산업재해관련 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22일 국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열린 산업재해 청문회에 출석한 포스코 등 9개 기업 대표들은 노동자의 부주의로 책임을 돌리는 등 책임 회피에 급급한 모습이었다. 특히 이들은 산재사고에 대해 사과하면서도 재발 방지를 위한 안전대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못했다.

이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주관한 산재 청문회에는 현대건설·지에스(GS)건설·포스코건설(건설업), 엘지(LG)디스플레이·현대중공업·포스코(제조업), 쿠팡·씨제이(CJ)대한통운·롯데글로벌로지스(택배·물류업) 등 9개 기업의 대표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청문회 출석 대상인 기업 9곳에서 최근 5년간(2016~2020년) 중대재해로 인해 사망한 노동자는 103명에 이른다.

한영석 현대중공업 대표는 박덕흠 의원(무소속)이 산재사고를 예방할 대책을 묻자 “사고가 일어나는 유형을 보니, 불안전한 (작업장의) 상태와 작업자의 행동에 의해 많이 일어났다. 불안전한 상태는 바꿀 수 있지만 불안전한 행동은 (개선하기가) 많이 어렵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항상 표준에 의한 작업을 유도하는데, 아직까지도 불안전한 행동을 하는 작업자가 많다”고 거듭 강조했다. 현대중공업은 출석한 9개 기업 중 유일하게 6년 연속 산재 사망 사고가 발생한 곳이다. 2016년 5명, 2017년 2명, 2018년 3명, 2019년 3명, 2020년 4명에 이어, 올해도 1명의 노동자가 작업 중 사망했다. 이에 장철민·이수진 의원(민주당)이 ‘책임 회피성’ 발언이라고 따져묻자, 한 대표는 “작업들이 비정형화돼 있다는 뜻”이라고 해명했다.

지난해 10월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다 과로사한 장덕준씨 사건과 관련해서도 해당 기업 대표의 안이한 상황 인식이 도마에 올랐다. 이날 강은미 의원(정의당)이 “(지난해) 국감에서 장덕준 노동자 사망 관련해서 (그가 일했던) 7층은 업무강도가 가장 낮다고 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조지프 네이선 노트먼 쿠팡풀필먼트서비스 대표는 “직책에 따라서 다를 수 있다. 물동량과 관련해서는 맞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9일 장씨가 사망 직전주에 62시간10분을 일하고 심야노동을 했던 점 등을 들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한 바 있다. 다만 노트먼 대표는 “유족들이 얼마나 깊은 상처를 느끼셨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생각한다. 재발 방지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장씨의 유족을 만났느냐는 질문에, “찾아뵙고 사과하고 필요한 보상과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포스코는 산재 사망사고에 사과하고 1조원을 산업안전 투자에 쓰겠다고 밝히면서도, 구체적인 대책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포스코에서는 지난해 12월부터 3건의 산재 사망 사고가 잇따랐다. 이날 최정우 포스코 회장은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 대단히 죄송하다”며 “지난 3년간 1조3천억원을 투자해 노후시설을 고쳤으나 미흡했고, 앞으로 3년간 1조원을 안전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노웅래 의원(민주당)은 “포스코의 정비비로 계산하면 지난 3년간 (안전투자는) 1400억여원에 불과했다. 1조원은 어디로 갔느냐”고 따졌다. 박대수 의원(국민의힘)도 “포스코는 (안전투자 중) ‘안전 관리시설’에 80%를 지출했다고 했는데, 세부 집행내역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고 질의했다. 뒤늦게 최 회장은 “10억원 이상(지출)에 대해 내역을 제출하겠다”고 답했다.

포스코는 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작성하도록 돼 있는 '위험성 평가 보고서'를 청문회·노동부 감독 등을 대비해 조작한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일기도 했다. 노웅래 의원이 입수해 공개한 포스코 사내 업무지시 메일을 보면, “며칠 전 2020년 위험성 평가를 수정하였는데, 추가로 2018~2019년 위험성평가에 대해서도 수정 부탁드린다”고 적혀있는 등 보고서 조작을 지시한 내용이 담겨있다. 노 의원은 “안전을 무시하는 포스코의 모습이 단적으로 나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현정 민주노총 노동안전국장은 “청문회에 나선 기업 대표들은 ‘사고가 노동자의 실수’라는 발언을 하고 있는데, 현장을 모르는 유체이탈 화법”이라며 “올해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대표이사에게 노동자 안전 계획을 수립하고 보고하는 제도가 시행되고, 중대재해법(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도 제정됐는데 전혀 경각심이 없다. 고용노동부가 이행 여부를 강하게 점검하고 노동자가 참여해 노동안전·산재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는 걸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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