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이현훈 교수의 왜냐면에 부쳐: 저출산 예산과 기본소득 제안 유감 / 정재훈

한겨레 2021. 2. 22.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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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ㅣ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한겨레> 2월4일치 강원대 이현훈 교수의 ‘20살까지 ‘유소년기본소득’을 주자’는 칼럼을 읽었다. 자녀양육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에 공감한다. 그러나 이 교수의 글은 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전체 내용의 흐름을 곡해하고 있다. 2006년 1차부터 3차 기본계획까지 나타난 성차별적 ‘출산장려’ 틀을 4차 기본계획에서 폐기했다. 그런데 다시 출산장려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른바 ‘저출산 예산’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유소년기본소득’을 제안하고 있다. 결국 돌봄지원 관련 사회보장제도를 없애고 유소년기본소득으로 대체하자는 이른바 ‘우파적’ 관점을 보인다. 필자는 이러한 기본소득 제안에 반대한다.

이 교수는 ‘4차 기본계획에서 영아수당 지급이 그나마 눈에 띄는 새로운 대책이지만, 합계출산율을 높이겠다는 목표치나 예상치가 없다’고 한다. 영아수당이 새로운 대책인지 모르겠다. 그보다 더 새로운 관점과 후속 대책은 개발독재시대에 국가가 심지어 낙태 비용까지 대주는 지원을 통해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한 것이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 방식을 그대로 1~3차 저출산 계획까지 적용했다. 목표만 출생아 수 감소에서 출생아 수 증가로 바뀌었을 뿐이다. 심지어 3차 기본계획에서는 2020년까지 출산율 1.5를 목표로 명시하였다. 그 결과 “자원 투입 하면 여자는 그냥 아이 낳아주는 기계냐?”는 사회적 반발이 일어났다. ‘가임기 여성, 출산 지도’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도 있었다. 돌봄 비용, 주거, 일자리는 중요한 주제다. 그러나 출산 주체로서 여성을 객체화·대상화해온 정책의 결과가 초저출산 현상의 근본적 토대다.

그래서 4차 기본계획은 ‘성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를 정책 목표로 내세웠다. ‘개인의 삶의 질 향상’도 또 다른 정책 목표다. 출산장려 틀을 버렸다. 일단 내 삶의 질이 높아지고, 독박육아나 경력단절 가능성이 없을 때 아이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인식에서다. 남성과 여성, 사회와 가족이 “함께 일하고 함께 돌보자”는 의미에서 남성 육아휴직 확대, 성평등한 일자리, 국공립 어린이집·유치원 중심 돌봄의 사회적 책임 강화, 아동의 기본권 보장, 여성의 건강한 재생산권 보장 등 전략이 들어갔다. 물론 실천 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보완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영아수당보다 훨씬 더 ‘눈에 띄는 새로운 정책 과제’다.

또 하나, 이 교수는 ‘2019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35조6322억원의 저출산 예산을 썼고 이는 당해 출생 아동 1명당 1억2천만원 수준이다. 그런데 효과가 없다. 따라서 ‘출산장려’를 위해 출생아 1인당 20살까지 매달 100만원씩 ‘유소년기본소득’을 지불하자. 현재 각종 출산·육아·교육 관련 보조금을 유소년기본소득으로 대체하면 증세 없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와 지자체가 썼다는 36조에 이르는 돈은 ‘저출산 예산’이기 이전에 돌봄 지원과 돌봄환경 개선에 사용한 ‘사회보장 예산’이다. 비교적 출산율이 높은 복지국가에서는 돌봄 관련 사회보장 예산을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이 많이 지출하고 있다. 그런 예산을 ‘저출산 예산’이라 부르지도 않는다.

어떤 ‘출산·육아·교육 관련 보조금’을 유소년기본소득으로 ‘퉁’치자는 것인지 이 교수는 밝히지 않았다. 그 36조원 중 거의 3조가 아동수당이다. 육아휴직 급여도 1조가 넘는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10조 정도를 썼다. 청년 주거 지원에는 13조가 들어갔다. 그러나 아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에 한참 못 미치는 사회복지지출 수준에 포함되는 돈이다. 이른바 ‘저출산 예산의 실패’를 핑계 삼아 보편적 사회보장제도의 확대를 대체하는 기본소득 제안에 반대한다. 삶의 질과 성평등을 향하여 보편적으로 구축해야 할 사회보장제도에 들어간 돈이 아직 모자라고 앞으로도 오랜 기간 동안 모자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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