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수백m 주택가 잔디밭도 장작더미도 홀랑 탔어요"

이용호 2021. 2. 22.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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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달 만에 안동산불, 250㏊ 태우고 21시간만에 진화
주민 400여명 한 때 대피.. 인명피해 없어
예천·영주, 충북 영동 등 전국 곳곳 산불 잇따라
산림청 헬기가 22일 잔불정리를 위해 임하호의 물을 끌어 올리고 있다. 그 뒤로 보이는 임동면 면사무소 소재지 주변을 둘러싼 야산은 산불로 까맣게 타 있다. 안동=이용호 기자

“집채보다 큰 검붉은 불덩이가 이 산, 저 산 날아다니고, 정말 무슨 일이 나는 줄 알았습니다.” 22일 낮 경북 안동시 임동면 안동산불 피해 현장. 전날 밤 대피했다 이날 오전 귀가한 김만자(79)씨는 “진짜 면소재지까지 다 타는 줄 알았다”며 전날 밤 위급했던 상황을 전했다.

잔불 정리를 지켜보던 이승민(75ㆍ수곡리) 씨는 “이런 큰불은 처음 봤다. 산에서 수백m 떨어진 마을 안 주택가 잔디와 장작더미에 불똥이 날아들어 탔다고 한다. 소방대가 바로 진화했기에 망정이지 자칫 임동면 면사무소 소재지 전체가 홀랑 타버릴 뻔했다”고 말했다.

21일 오후 지난해 4월 25일 1,900㏊의 산림을 태운 ‘안동산불’ 이후 열 달 만에 큰 산불이 안동시 임동면 일대에서 났다. 산림ㆍ소방당국의 총력진화로 21시간만에 진화됐지만 국제규격 축구장(7,140㎡) 350개 면적인 250㏊의 산림이 불에 탔고, 수백 명의 주민들이 한밤중에 대피하는 등 큰 생채기를 남겼다. 빈집과 창고, 태양광발전소, 버섯재배사도 탔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잔불진화작업이 한창인 22일 오전 임동면사무소 주변 야산은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아직 일부 지역엔 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곳엔 경북소방학교가 있고, 230여가구 370여명이 산다.

야산에서 난 불은 강풍을 타고 순식간에 번졌다. 불길이 주거지로 접근하자 4개 마을 300여가구 400여명의 주민들은 임동초등학교에서 양지휴게소, 다시 마을회관으로 옮겨가며 대피했다. 일부 주민들은 22일 오전에야 귀가할 수 있었다. 아침 식사도 안동시가 제공한 빵과 라면으로 때워야만 했다.

주민들은 “불이 강풍을 타고 한창 타오를 때는 강 건너에 서 있는데도 겁이 날 정도였다”며 “댐이 곁에 있어 헬기로 물을 실어 나르기 쉬웠기에 그나마 일찍 끈 것 같다”고 말했다.

21일 오후 4시12분쯤 예천군 감천면 야산에서 난 산불도 영주시로 번져 22일 오전 불길이 잡힐 때까지 모두 60㏊의 산림을 불태웠다. 하룻밤새 안동 예천 영주지역 산림 310㏊가 잿더미로 변한 셈이다.

불이 나자 헬기 등을 동원해 진화에 나섰지만 강풍으로 실패했다. 해가 저물며 헬기를 철수한 뒤 방화선을 구축하고 민가로 불이 번지는 것을 방어했다.

소방당국은 안동에 헬기 23대, 예천ㆍ영주에 16대 등을 투입해 동이 트자마자 집중 진화에 나서 불길을 잡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4월 안동산불이 강풍에 재발화한 점을 교훈 삼아 이날 오후 늦게까지 헬기 10대와 인력 1,300여명을 대기시켰다.

건조한 날씨 속에 충북 영동, 세종 등에서도 산불이 잇따랐다.

산림청은 21일 오후 6시 산불재난 국가위기경보 중 ‘심각’단계를 발령해 헬기와 소방차 등 인근 시ㆍ도 진압장비와 인력을 총동원한 끝에 가까스로 불을 끄는 데 성공했다.

충북 영동군 매곡면에서 난 산불은 17시간여 만인 22일 오전 9시 30분쯤 약 20㏊의 산림을 태우고 진화됐고 그 사이 17가구 39명이 마을회관으로 대피했다.

충남 논산 산불은 13시간여만인 22일 오전 8시 20분쯤 1㏊의 산림을 태우고 불길이 잡혔다. 세종시에서 21일 오후 7시 21분 대평동 해들마을 6단지 앞 수변 갈대밭을 시작으로 오후 9시 38분까지 나성동 금강스포츠공원 인근 수변 갈대밭, 금강보행교 북측 인근 수변 갈대밭, 햇무리교 북측 인근 수변 갈대밭 등 4곳에서 잇따라 불이 났다.

이번 대기가 매우 건조한 가운데 강풍 속에 실화로 일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충북 영동 산불은 화목보일러 불똥이 튀면서, 안동 산불도 쓰레기 소각으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산림청 헬기가 임동면소재지 주변에서 잔불을 끄기위해 물을 뿌리고 있다. 이용호기자

기상청에 따르면 건조특보가 발효된 강원영동, 경북북동산지, 경상권 동해안, 대구시 등은 실효습도가 35% 이하로 대기가 매우 건조해 산불이 나기 쉬운 조건이다. 또 강풍도 겹쳐 한번 불이 나면 큰 피해를 내고 있다. 기상청은 다른 지역도 최근 비가 눈비가 내리지 않아 대기가 건조해 실효습도 35~50%로 산불 위험이 높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실효습도는 목재 등의 건조도를 나타내는 지수로, 낮을수록 건조함을 의미한다.

박종호 산림청장은 “2월에 대형산불이 5건이 동시에 발생한 것은 이례적”이라며 “우리나라 산불의 95%가 사람에 의한 실화인 만큼 산불예방조치를 철저히 지켜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안동= 이용호 기자 lyho@hankookilbo.com
대구= 정광진 기자 kjche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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