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인찍기' 우려 속 프랑스 대학 둘러싼 '이슬람좌파' 논쟁

이두형 2021. 2. 22.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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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교육부 장관, 대학 내 ‘이슬람좌파주의’ 연구 의뢰

“대학사회 타락시켜” 연구 의도 관련 강한 의구심과 반발

‘사뮤엘 파티 참수’ 사건 이후 불거진 프랑스 사회 내 이슬람 극단주의를 둘러싼 논쟁이 대학가로 번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학문의 자유와 대학 사회 전반에 대한 왜곡된 편견을 심어줄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난 16일 르몽드 등 프랑스 매체들에 따르면 프레데리크 비달 프랑스 고등교육연구혁신 장관이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대정부 질의에서 “대학 내의 이슬람 좌파주의(Islamo-gauchisme)’에 대한 연구를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에 의뢰했다”며 “이는 학문적 연구에 해당하는 것과 사상과 운동의 영역(du militantisme et de l’opinion)에 속하는 것”을 구별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한편에서는 해당 연구에 특정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일고있다. 앞서 비달 장관은 14일 프랑스 방송매체 세뉴스(Cnews)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슬람 좌파주의가 사회 전체를 타락시킨다고 생각한다”며 “대학도 사회의 한 부분으로서 이를 막지 못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일부 대학생 조직들이 학생이라는 자신들의 신분을 악용해 대학 사회 내에 극단주의적 사상을 전파하고 있다는 우려를 표하면서 이에 대한 장관의 부정적 인식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고등교육연구혁신 장관의 연구 의뢰와 관련해 프랑스 정치권은 양분됐다. 마린 르 펜이 대표로 있는 극우정당 ‘국민연합(RN)’의 로랑 자코벨리 대변인은 18일 프랑스앵포(Franceinfo)와의 인터뷰에서 “이슬람 좌파주의가 대학을 타락시키고 있다”고 강조하며 해당 연구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대표적인 좌파 정치인이자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당(LFI)’의 대표 장-뤽 멜랑숑은 지난 17일 본인 유투브 계정에 올린 영상에서 “우리는 더 이상 프랑스에 있지 않다”며 현 정권을 “사상경찰”이라 부르며 강도 높은 비판을 가했다. 



◆프레데리크 비달 프랑스 고등교육연구혁신 장관 ©AFP연합뉴스

‘이슬람 좌파주의’를 둘러싼 논쟁은 이 용어가 주로 정치적 수사어로 쓰이면서 불거지고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극단 ‘이슬람주의’와 ‘좌파주의’의 합성어다. 지난 19일 세뉴스와 수드 라디오(Sud Radio)에서 프랑스 여론조사기구 ‘프랑스 여론연구소(Ifop)’와 ‘피뒤시알(Fiducial)’에 의뢰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용어는 ‘무슬림에 가해지는 사회적 낙인에 대한 우려로 이슬람 극단주의에 대한 비판을 거부하거나, 프랑스 사회 내에서 이슬람 극단주의로 표방되는 위협을 최소화 하려는 좌파 및 극좌 성향의 단체 또는 개인’으로 정의된다. 하지만 이를 합의된 정의로 보기는 어려우며 학계 내에서도 이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주장이 전개되고 있다.

다만 지난해 10월 16일 토론 수업 중 ‘샤를리 앱도’의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 풍자 캐리터쳐를 보여줬다는 이유로 이슬람 극단주의자에 의해 살해된 사뮤엘 파티 참수 사건과 이어 10월 29일 일어난 니스 노트르담 성당 참수 사건 등으로 우파진영과 정부 관료 중심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와 더불어 ‘이슬람 좌파주의’를 사회 분열의 주요한 요소로 문제제기했다. 지난해 10월 22일 장-미셸 블랑케 프랑스 교육부 장관은 유럽 1(Europe 1)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이슬람 좌파주의’라고 부르는 것이 큰 피해를 일으키고 있다”며 “대학에서도 이런 폐해를 일으키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슬람 좌파주의’라는 용어 자체가 특정 대상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정치적 전략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슬람 학자 라시드 벵진은 지난 2017년 2월 17일 ‘프랑스 퀼투르(France Cultre)’ 인터뷰에서 “’이슬람 좌파주의’라는 용어는 타인을 실추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며 “이는 좌파 운동가와 무슬림 모두를 낙인 찍는 것”이라고 말했다. 언어학자 알반 바그너 렌 2 대학 연구교원은 2010년 10월 23일 프랑스앵포를 통해 “극우진영에서 이 용어를 좌파의 가치나, 똘레랑스, 개방성, 다양성 존중 등의 가치를 지닌 사람들을 묘사하기 위한 무기처럼 사용한다”고 지적했다.

대학사회와 학계에서 비달 장관이 공식화한 프랑스 대학 내 ‘이슬람 좌파주의’에 대한 연구에 대해 비판과 우려를 나타내는 것은 이와 같은 사회적 맥락에서 기인한다. 

파리 8대학의 연구교원이자 사회학자인 에릭 파생은 지난 18일 프랑스앵포에서 “이는 마녀사냥과도 같은 것”이라며 “이슬람 좌파주의는 어떤 과학적 의미도 담고 있지 않은 극우진영의 논쟁적 슬로건일 뿐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앙스포의 교수이자 역사학자인 팝 은디아예는 19일 ‘프랑스 앵테르(France Inter)’와의 인터뷰에서 “’이슬람 좌파주의’는 대학 내의 어떠한 현실도 가르키지 않는다”며 “여러 어려움과 문제점을 드러낼 수 있는 일련의 연구에 오히려 낙인을 찍을 뿐이다”라고 우려를 드러냈다. 

실제 연구용역을 받은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는 해당 연구에 참여는 하나 17일 공식 보도문을 통해 “’이슬람 좌파주의’는 어떤 과학적 진실에도 부합하지 않는, 공적 논쟁에서 사용되는 정치적 슬로건”이라며 “특정 지식 공동체를 낙인찍거나 학문의 자유를 문제시하기 위해 이를 활용하는 것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프랑스 파리 = 이두형 글로벌리포터 mcdjrp@gmail.com

■ 필자 소개

파리 소르본대학(파리 4) 사회학 석사 과정

전 서울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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