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 금은보화는 찾는 이가 임자..현실에선 대학도서관이 횡재
입수 경위 못 밝히자 몰수하고 소장자 찾아
내전으로 혼란한 아프가니스탄에서 불법 반출 추정
"우리가 잘 보관하겠다"며 손 든 워싱턴대 도서관에 전달하기로
1980년대를 대표하는 할리우드 모험 환타지 영화 ‘구니스’의 마지막 장면은 깜찍한 반전으로 끝난다. 바닷가 마을 아이들은 천신만고끝에 금은보화가 가득한 해적선을 찾아냈지만, 정작 한푼도 수중에 넣지 못한 채 배를 망망대해로 떠나보낸다. 이제 개발업자의 손에 정든 마을을 넘겨야 하는 신세. 하지만 가사도우미가 극적으로 보석 몇점을 찾아낸다. 철거 위기에 닥친 마을을 지키고도 남을 만한 충분한 값어치였다. 해피엔딩과 함께 보여진 선명한 주제는 ‘찾는 사람이 임자’였던 셈. 구니스 같은 상황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찾는 사람이 임자 같은 단순한 법칙은 통하지 않는다. 대신 이해관계에도 없는 제3자가 뜻밖의 횡재를 맞는 어부지리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실제 그런 상황이 벌어졌다. 2017년 미국과 캐나다의 접경도시인 블레인의 국경검문소에서 한 여행객이 미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의 검문에 걸렸다. 소지품에서 은색과 구릿빛 동전들이 쉰 한 개가 쏟아져나왔다. 빛이 바래긴 했어도 선명한 동전의 조각의 무늬와 문자들은 그리스 헬레니즘 시대와 초기 이슬람 제국 시대에 주조된 동전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구니스’에 등장하는 17세기 해적선과 금은보화보다 오히려 더 값어치가 높았던 것이다.
ICE 요원들은 동전을 가져온 여행객을 강도 높게 추궁했다. 여행객은 고대 동전을 어떤 과정을 거쳐서 소유하게 됐는지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고, 자신이 적법한 소유자인지도 확실하게 입증하지 못했다. 더구나 동전에 감도는 빛깔은 땅에 묻혀있다 불법 도굴된 금속이 나타나는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ICE는 동전의 몰수를 결정했고, 여행객은 포기 각서를 썼다. 이 동전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전문가들의 분석 결과 아프가니스탄에서 흘러들어왔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아프가니스탄은 예로부터 유럽·아시아·중동의 물자와 문화가 교류했던 문명의 십자로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소련 침공, 탈레반 극단주의 세력 집권, 미국 주도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외세 개입이 잇따르면서 국토 곳곳이 파괴됐고 오랜 세월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는 혼란기를 거쳤다.
이 과정에서 국가 곳곳에 있던 귀중한 문화유산들이 불법으로 반출됐고 이들의 목록은 ‘아프가니스탄 레드 리스트’라는 이름으로 작성돼있다. 동전 일부가 아프가니스탄 레드 리스트 동전과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포함해 어느 누구도 동전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나서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 세관국경보호국(CPB) 규정에 따르면 문화유산이나 공예품의 경우 원 소장자에게 돌려주는 것이 우선 순위이나, 소장자를 찾지 못할 경우 가장 잘 보관할 수 있는 기관에게 소장을 위탁하도록 돼있다. 이 절묘한 시점에 워싱턴대 도서관이 보물의 수호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2019년 “우리가 잘 보관할 테니 맡겨달라”고 CPB에 직접 요청한 것이다. 워싱턴대는 동전이 몰수된 미국·캐나다 국경에서 177㎞ 가량 떨어진 대도시 시애틀에 있는 대규모 종합대학이다. 이후 보물의 인수 인계 절차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지난 18일 워싱턴대 도서관에서 보물의 공식 전달식이 열렸다. 미 국토안보조사국(HIS)의 로버트 해머 수석 특수요원은 “전달된 동전들은 워싱턴대의 학생과 연구자들에게 어디에서도 좀처럼 경험하기 어려운 학습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문화재의 불법 밀수는 희생자가 없는 범죄가 아니다”라며 “불법 반출된 문화재들이 개인 소장자들의 커피테이블 따위의 용도로 쓰일 때 도둑맞은 나라 전체가 희생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산드라 크로파 워싱턴대 도서관 특별소장품 및 희귀서적 담당 큐레이터는 “금전적인 가치를 떠나 이 동전들은 초창기 통신교환과 서적제조가 시작됐을 때의 문화와 정치적 상황을 이해하는데 소중한 정보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학교 측은 이 동전을 고대사 연구 뿐 아니라 불법 도굴과 문화재 밀거래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자료로도 활용할 계획이다. 확실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당사자가 나오지 않는다면 박물관이 사실상 소유자가 되는만큼 어부지리 이상의 횡재를 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의외로 빨리 고국을 찾아갈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실제로 미 연방검찰은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던 태국 전통 건축 장식물 2점이 1960년대 본국에서 불법 반출됐다는 것을 확인하고 반환 소송을 통해 태국으로 돌려보냈다고 최근 발표했다.
이번 헬레니즘·초기 이슬람 시대 동전 51점의 몰수·위탁 과정은 HIS와 국무부 문화유산센터, 스미소니언 연구소가 함께 진행하는 불법 반출·밀수 문화재 반환 프로그램에 따라 진행됐다. 2007년부터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문화재 범죄 논란도 해결하고, 동시에 문화재 원 소유국과는 우호관계를 강화하는 일석이조효과를 꾀한다. 지금까지 1만2500여점의 유물이 30여개 국가로 반환됐다. 이 중에는 6·25 전쟁 당시 미군에 의해 반출됐다가 샌디에이고에서 몰수된 조선 고종·순종 시대 왕실 인장 등 한국 유물 9점도 포함돼있다. 이 유물들은 2014년 한국을 공식 방문한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을 통해 반환됐다. 그 외에도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의 그림, 중국과 캄보디아의 공예품, 몽골에서 파낸 공룡화석, 이탈리아에서 건너온 중세 필사본, 고대 페루 도자기, 고대 이집트의 황금관 등이 고향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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