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행정부는 한국에 '쿼드 참여'를 요구할까요?

길윤형 2021. 2. 22.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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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BAR_길윤형의 알고 싶어

미국 당장 요구하진 않겠지만
한-미 동맹에 '양날의 칼' 될 듯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의 이스트룸에서 뮌헨안보회의(MSC)에 화상으로 참여해 발언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대서양 동맹 복귀를 선언하면서 독재 정치에 맞선 민주주의 국가들의 협력을 강조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2년 전 내가 뮌헨에서 연설했을 때 나는 일반 시민이자 교수였고, 선출된 공직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때 ‘우리는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미국은 돌아왔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지 딱 한달 만인 19일 이뤄진 ‘뮌헨 안보회의’ 화상 연설은 여러모로 세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이 돌아왔다”는 선언과 함께 전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웠던 ‘미국 우선주의’를 폐기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내세운 것은 ‘민주주의’란 신념을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연대, 즉 동맹을 강화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현재 전 인류가 독재와 민주주의라는 두 선택지 중 무엇을 택해야 할지에 대한 “근본적 논쟁의 한가운데 있다”면서, 미국과 동맹국들이 “중국과 장기적이고 전략적 경쟁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즉, “미국, 유럽, 아시아가 태평양 지역에서 어떻게 함께 자유를 지키고, 우리의 공통된 가치를 방어하며, 번영을 증진해 갈지”, 다른 말로 바꾸면 미국과 동맹국들이 어떻게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에서 이겨낼 방법을 찾아낼지가 “우리가 (앞으로) 수행해야 할 가장 결정적인 노력일 것”이라고 밝힌 것입니다.

실제, 미국은 이날 바이든 대통령이 연설에서 강조한대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 훼손된 미국의 소중한 두 동반자인 유럽과 인도·태평양 동맹을 재건하려는 움직임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17~18일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재건하기 위한 미국-나토 국방장관 회의를 열었고, 18일엔 나토의 핵심 동맹국인 영국·프랑스·독일과 함께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8년 5월 일방적으로 탈퇴했던 ‘이란 핵협정’에 복귀하기 위한 협상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인도·태평양 쪽으로 눈을 돌리면 19일 미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호주)·인도 등 4개국이 모인 ‘쿼드’ 외교장관 회의를 열어 이 모임을 정례화하기로 합의했고, 19일에는 한-미-일 3개국의 북핵 담당자들이 첫 회의를 열었습니다.

그렇다면 ‘미-중 간 전략적 경쟁’이 노골화된 인도·태평양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한국에 구체적으로 뭘 요구하게 될까요? 바이든 대통령 등 미국 주요 인사들이 지난 한달 동안 쏟아낸 여러 말과 글을 토대로 해답에 접근해보겠습니다. 이를 위해 먼저 지난 한달 동안 미국이 한국에 ‘구체적으로 요구한 것’과 ‘아직 명시적으로 요구하지 않은 것’을 구분해 보겠습니다.

먼저 미국이 구체적으로 요구한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 간의 4일 전화 회담,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블링컨 국무장관 사이의 12일 통화, 블링컨 국무장관의 여러 발언,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의 브리핑 내용 등을 종합해보면, 미국은 다음 두 가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첫째, ‘대북 정책’ 재검토에 대한 협력입니다. 블링컨 국무장관은 1월19일 열린 상원 외교위 인준 청문회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한·일 등과 협의하며 “북한에 대한 전반적인 접근법과 정책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프라이스 대변인도 이후 수차례에 걸친 정례 브리핑에서 이런 방침을 거듭 확인했습니다. 현재 이와 관련해 한-미 당국 사이에 활발한 의사소통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미-일 3국이 북핵 담당 외교 당국자 회의가 19일 화상으로 열렸다. 회의에 참석 중인 성 김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대행의 모습. 외교부 제공

두번째 요구사항은 현재 최악의 상태로 방치돼 있는 한-일 관계 개선입니다. 프라이스 대변인은 9일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의 (핵)무기 실험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한국, 일본과 긴밀히 조율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고, 블링컨 국무장관은 12일 정의용 장관과 통화에서 “지속적인 미-한-일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냉담한 입장 탓에 정 장관은 취임한 지 2주가 지나도록 여전히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과 상견례를 겸한 첫 통화를 못 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중재하는 모습으로 19일 한-미-일 3개국 북핵 담당자 협의가 이뤄지긴 했지만, 일본 외무성은 이날 회의가 ‘실무협의’임을 애써 강조하는 등 여전히 냉랭한 입장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이젠 미국이 아직 명시적으로 요구하지 않은 것을 살펴볼 차례입니다. 한국 입장에서 가장 신경이 쓰이는 지점은 미국이 ‘중국 포위’와 관련해 한국에 얼마나 적극적인 협력을 요구할지에 관한 부분입니다. 이는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한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협의체인 ‘쿼드’에 참가할 것을 한국에 요구할 것인지’라는 물음으로 바꿔볼 수 있습니다.

현 시점에서 ‘명확한 답변’을 내리는 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미국의 생각을 추정할 수 있는 ‘힌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주목하는 것은 바이든 대통령이 쿼드에 속한 3개국인 일본·오스트레일리아·인도 정상 간 통화를 한 뒤 공개한 자료와 문재인 대통령과 통과한 뒤 공개한 자료에서 드러나는 ‘미세한 차이’입니다.

먼저, 일본의 자료를 볼까요.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스가 요시히데 총리와 첫 정상 간 통화를 끝낸 뒤 짤막한 보도자료를 내어, 미-일 동맹을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의 자유와 번영을 위한 초석(cornerstone)”이라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이어 두 정상이 “중국과 북한을 포함한 지역 안보 이슈에 대해 논의했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중국 포위를 함의하는 인도·태평양이란 용어와 중국의 국명을 구체적으로 명시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 정상과 통화한 자료의 기조도 비슷했습니다. 백악관은 미국-오스트레일리아 동맹을 “인도·태평양과 세계의 안정을 위한 닻(anchor)”이란 용어로 설명한 뒤, 두 정상이 “중국을 포함해 전 세계적이고 지역적인 도전에 어떻게 함께 대응할 수 있을지 논의했다”고 밝혔습니다. 역시 인도·태평양이란 용어와 중국이란 국명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도에 대해선 두 지도자가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을 진흥하기 위해 밀접한 협력을 계속하기로 했다”면서, 이를 위한 구체적인 협력 이슈로 “항행의 자유, 영토의 순수성, 쿼드를 통한 더 강한 지역 협력 구조(architecture)” 등을 언급했습니다. 인도는 미국의 동맹이 아니기 때문에 일본과 오스트레일리아 때 사용된 ‘초석’이나 ‘닻’ 같은 표현이 없고, 복잡미묘한 중국-인도 관계를 배려했기 때문인지 중국이란 국명을 직접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항행의 자유’, ‘영토의 순수성’ 등은 누가 봐도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를 담은 표현입니다. 즉, 인도·태평양이란 용어를 사용하면서, 중국을 간접적으로 언급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에겐 어떤 표현을 사용했을까요? 백악관은 양국 정상회담이 끝난 뒤 한-미 동맹을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핵심축(linchpin)”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인도·태평양이란 용어 대신 동북아시아란 표현을 사용한 것이 확인됩니다. 나아가 중국을 직접 언급하거나 암시하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전화 회담 소식을 전하는 지난 4일 브리핑에서 양국 정상이 “가치를 공유하는 책임 동맹으로서 한반도와 인도·태평양 지역 협력을 넘어 민주주의, 인권, 다자주의 증진에 기여하는 포괄적 전략 동맹으로 한-미 동맹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지만, 정작 미국 자료에선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인도·태평양이나 중국은 물론, 두 나라가 ‘공통의 가치를 공유한다’는 표현도 넣지 않았습니다. 미국이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을 쿼드 3개국과 다르게 보는 게 아닌가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물론 12일 이뤄진 ‘정의용-블링컨 장관’의 통화 결과를 전하는 미 국무성 자료를 보면, “한-미 동맹은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핵심축”이라는 표현이 부활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도·태평양이란 용어는 1차적으로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언급한 뒤 따라 붙는 식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두루 살펴 볼 때, 미국이 한국에 기대하는 것은 다른 쿼드 3국과 같은 ‘중국 견제’ 등 국제적 역할이라기 보다 ‘북핵 대응’과 같은 지역적 역할이라고 조심스레 결론내릴 수 있습니다. 섣부른 예단은 금물이지만, 미국이 당장 ‘가까운 미래’에 쿼드에 참여해 달라고 한국에 요구하진 않을 것이라 예측됩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19일 연설에서도 “동맹은 짜내는 게 아니다”(They are not extractive.)라고 말했습니다. 동맹에게 안 되는 것을 무리하게 요구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한국 입장에서 볼 때 치열한 미-중 갈등 속에서 잠시 숨을 돌릴 수 는 ‘전략적 빈틈’이 생겨난 셈입니다.

그러나 이는 한국에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기대하는 역할이 크지 않다는 것은 전략적 중요성이 낮아진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당장 비교 대상이 되는 것은 일본입니다. 미-일 양국은 2015년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을 개정한 뒤 미-일 동맹을 명실상부한 ‘글로벌 동맹’으로 위상과 역할을 확대했습니다. 결국 미국이 ‘대북 정책’ 등 동아시아의 미래와 관련해 중요한 판단을 내릴 때 한국보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일본의 목소리에 더 귀기울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런 엄중한 현실 속에서 우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지금 이대로가 좋을까요, 아님 보수 세력의 주장대로 쿼드 등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 움직임에 적극 동참해야 할까요? 똑 부러진 답을 내리긴 힘든 ‘난제’지만, 분명한 사실은 하나입니다. 세계는 지금 바이든 대통령도 언급했듯 국제 질서가 요동치는 변곡점(inflection ponit) 위에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내리는 선택의 결과는 앞으로 우리 공동체 전체가 몇대에 걸쳐 나눠 짊어질 수도 있을 만큼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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