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노동자 눈물과 꿈이 교차하는 옛 방직공장..공공성 담보 중요"

정대하 2021. 2. 22.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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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기를 생산하던 발전시설이 남아 있는 게 놀랍네요."

지난 20일 오전 광주시 북구 임동 전남방직·일신방직 공장을 방문한 50여명의 시민들은 근대산업 문화유산이 남아 있는 게 신기하다고 입을 모았다.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공간을 순례중인 사단법인 '광주마당'은 열여덟 번째 방문지로 전방·일신방직 공장 터를 선택했다.

전방과 일신방직 광주 공장 터는 임동 100-1번지 29만1801㎡(8만8270평)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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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광주마당 전방·일신방직 탐방
지난 20일 시민들이 광주시 북구 임동 전남방직과 일신방직 공장을 찾아 근대산업시설 등을 살피고 있다. 조계현씨 제공

“증기를 생산하던 발전시설이 남아 있는 게 놀랍네요.”

지난 20일 오전 광주시 북구 임동 전남방직·일신방직 공장을 방문한 50여명의 시민들은 근대산업 문화유산이 남아 있는 게 신기하다고 입을 모았다.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공간을 순례중인 사단법인 ‘광주마당’은 열여덟 번째 방문지로 전방·일신방직 공장 터를 선택했다. 전방·일신방직 공장 터는 “일제 수탈과 도시의 산업화라는 양면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1935년 철골 구조 형태로 지어진 발전시설과 고가 수조 등은 6·25 폭격 때 유일하게 살아남은 시설이었다. 회사 관계자는 “공장에서 생산된 실이 적정 수분을 유지하게 하려고 수증기 발전시설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전방과 일신방직 광주 공장 터는 임동 100-1번지 29만1801㎡(8만8270평)에 자리하고 있다. 원면에서 실을 생산하던 두 공장은 2년전께부터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두 업체는 지난해 4월 광주시에 공장 터의 용도변경을 요청했고, 지난해 7월 한 부동산 개발업체에 터를 팔기고 계약을 체결한 상태다. 지난해 4월 시에 제출한 두 업체의 개발 계획은 초고층 상가아파트 단지와 호텔, 쇼핑복학시설 등을 짓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광주지역 시민·사회단체에선 “공공성에 담보 또는 장래성 없이 공장용지를 상업용지로 상향 해주는 것은 명백한 특혜”라고 지적하고 있다.

사단법인 광주마당은 지난 20일 시민들과 함께 광주시 북구 임동 전남방직과 일신방직 공장을 탐방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조계현씨 제공

민간기업인 두 공장의 터를 두고 공공성을 주장하는 것은 두 공장이 1935년 지은 일본 기업 종연방적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종연방적이 공장을 지을 때 당시 임동 일대 농민들이 가혹한 토지수용령에 따라 문전옥답을 강제로 내줬다고 한다. 종연방적은 해방 이후 미군정에 귀속됐다가 전남방직공사로 바뀌었고, 전남방직공사는 1951년 전남방직으로 민영화됐다. 전남방직은 1961년 전남방직과 일신방직으로 분할됐다. 박민희(50)씨는 “전방·일신방직의 연원을 들어보니 시민들이 두 공장의 터에 대해 공공개발을 주장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광주 전남방직 공장 옛 여성 노동자들의 머물렀던 옛 기숙사 방 사물함엔 여성 노동자들이 붙여 놓은 것으로 보이는 사진이 남아 있다. 정대하 기자

임동 방적공장은 “눈물과 아픔, 꿈과 희망이 교차하던 공간”(김광란 광주시의회 의원)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3천여명의 노동자가 일하는 국내 최대 규모 공장이었다. 특히 1944년 8월 ‘여자 정신근로령’을 통해 강제동원된 10대 여성 노동자들이 이곳에서 하루 12시간 혹독한 노동에 시달렸다. 1970~80년대 전국 각지의 농촌에서 온 3천여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일했다. 여성 노동자들의 머물렀던 옛 기숙사 방 사물함엔 여성 노동자들이 붙여 놓은 것으로 보이는 여성 연예인들의 사진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인 1945년 지어진 고가수조. 조계현씨 제공

광주시는 일단 공익적 가치를 담은 개발계획없인 용도변경은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11월 임동 방적공장 터의 역사 문화적 가치판단을 위해 공장건축물 조사용역을 의뢰했다. 이국언 근로정신대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 대표는 “근대산업시설이라는 점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일제수탈의 아픔이 배어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고 그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남방직 관계자는 “ 발전시설이나 고가수조 등 중요한 시설은 보존하고 근대산업박물관 등을 조성하는 계획도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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