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말하기까지 20~30년"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10년이어선 안 되는 이유

김미향 2021. 2. 22.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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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족성폭력 생존자 국회 앞 1인 시위
22일 낮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는 푸른나비와 공폐단단 지지자들

“친족 성폭력은 역사상 계속 발생해왔지만 피해자 인생이 불쌍한 거로 끝나버립니다. 당장 해결할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을 안 하죠. ‘안 되겠다’ 싶어 제가 늘 하고 싶었던 법과의 투쟁을 이제 해보려 합니다. 봄이 오니 뭐라도 해야겠어요. 국회 앞으로 갑니다.”

봄이 온 듯 낮 기온이 10도를 웃돈 2월, 50대의 한 여성이 국회 앞에서 보랏빛 손팻말을 들었다. 친족 성폭력 생존자 푸른나비(50대, 활동명)다. 푸른나비는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위한 액션 공폐단단’과 연대하여 22일부터 26일까지 5일 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사람이 많이 오가는 점심에 1시간씩 1인 시위를 하기로 했다. 그의 옆에는 공폐단단 지지자 2명이 함께 했다. ‘친족 성범죄의 공소시효를 시급히 폐지하라’며 세상과의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피해 사실을 말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친족 성폭력의 공소시효가 짧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제 나이가 50대인데 (피해 사실) 기억이 30~40대 후반에 나요. 40대 후반 삶이 안정이 될 때에야, 원가족하고 멀어지고 나서야 기억이 나요. 계속 ‘가족을 지켜야 한다’, ‘집안의 수치가 된다’ 이러면서 입을 열지 못하게 하니까요.”

지난 1월 프랑스에서는 사회관계망서비스에 ‘#미투엥세스트'(엥세스트 : 친족에 의한 성적 학대) 해시태그 운동이 생겨나 친족간 성폭력 피해를 증언하는 글들이 미투운동이 일어났을 때처럼 번졌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자신의 트위터에 가해자 처벌을 강화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푸른나비는 “친족 성폭력 운동을 어떻게 미투운동처럼 연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안 되겠다, 내가 어떻게든 말을 해야겠다’ 생각하고 (1인 시위에) 나왔다”며 강조했다. 그는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는 피해자가 이 사회 안에서라도 살아갈 수 있도록 국가가 해줄 수 있는 가장 필요한 최소한의 안전망”이라고 말했다.

8살 때 이후 10년 동안 아버지에게 성폭력 피해를 겪은 생존자인 푸른나비는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운동과 공론화 작업을 몇 년째 계속 이어가는 중이다.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위한 액션 공폐단단’에서 활동하며 2019년 6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친족 성범죄 공소시효 폐지를 청원합니다’를 올려 4512명의 동의를 얻었다. 친족 성폭력 생존자 12명은 지난해 크라우드 펀딩으로 577명의 후원자로부터 1277만5천원을 모아 수기집 <아무도 알고 싶어하지 않는 이야기>를 펴냈다.

친족 성폭력은 해마다 수백건 발생하지만 피해자들이 피해를 알리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양정숙 의원(무소속)이 지난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최근 4년간 친족 성폭력은 3115건 발생해 평균 한 해 779건이었다. 또한, 2019년 한국성폭력상담소 상담통계 분석을 보면 그 해 87건의 친족 성폭력을 상담했는데 피해자들은 피해를 상담소에 알리기까지 피해 발생으로부터 10년 이상 걸린 경우가 55.2%였다.

친족 성폭력의 공소시효는 최장 10년이며, 디엔에이(DNA) 증거 등 죄를 증명할 수 있는 과학적 증거가 있을 때 10년 연장해 20년까지 늘어날 수 있다. 다만 특례조항으로 미성년자는 성년이 된 기점부터 공소시효가 적용되며, 피해자가 13살 미만인 경우 공소시효가 없다. 국회에는 피해자가 13살 미만이 아니라도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의 개정안들이 발의돼있다. 올해 1월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을 발의한 양정숙 의원(무소속)은 친족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범죄의 공소시효를 없애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지난 10일 이형석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친족 간 성폭력 사건을 알게 된 친족이 해당 사건을 은폐하거나 축소할 경우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성폭력방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피해자와 친족인 사람은 친족 성폭력 사건을 알게 된 즉시 수사기관에 신고하도록 의무화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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