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 대통령의 개인기 / 이주희

한겨레 2021. 2. 22.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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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

이주희 ㅣ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나의 이전 칼럼에 대한 2월8일치 김용흠 교수의 기고를 보고 부족한 지식 탓에 가지게 된 조선시대 왕에 대한 선입견을 수정할 수 있었다. 단, 그 시대 지배계급의 엄청난 구조적 권력과 뿌리 깊은 부패의 관행이 선의를 가진 왕의 개인기로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떨칠 수는 없었다.

개인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노무현 전 대통령이 떠오른다. 그의 당선은 바라던 결과였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큰 기대만큼 불길한 그림자도 커갔다. 검사와의 대화가 끝났을 즈음 나의 기대도 일찍 접혔다. 검찰 개혁은 그가 노무현일지라도 대통령의 개인기로는 역부족이었다. 국가의 수반이 바뀐다고 국가가 곧바로 바뀌지는 않는다. 가족, 학교, 공장 등 하위 단위마다 내부 정치가 있고 불평등하게 분배된 권력이 작동한다. 국가란 바로 이런 통치의 단위 모두를 통치하는 가장 상위의 단위일 뿐이다. 대통령의 통치력은 민주적 권력 분립의 원칙 때문에 크게 제한되지만 바로 그 민주주의를 더 잘하겠다고 독재를 할 수도 없는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제1호 정책,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도 돌이켜보니 대통령의 개인기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어떤 훌륭한 정치적 이상도 관료제를 거치며 만신창이가 되어 현실의 공고한 틀에 다시 끼워 맞추어진다. 지금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위탁기관 노동자가 직고용을 요구하며 싸늘한 여론 속에 어려운 파업을 이어가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발생한 일이다.

먼저 제3단계 민간위탁기관의 정규직 전환은 각 기관에 자율적으로 맡겨졌다. 그래서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자율적으로 이 전환 요구를 묵살하였다. 공단에 임명된 리더십은 현 정권의 정규직 전환 원칙을 공유하지 않았고, 직고용을 요구한 위탁기관의 노동자와 대화를 하려 하지 않았다.

또한 위탁기관 고객센터 노동자는 국민의 건강권과 의료접근성을 제고하기 위한 필수적이면서도 힘든 노동을 제공하고 있는데도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낮은 임금과 비인간적으로 경쟁적인 업무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위탁기관 노동자의 절대다수가 여성이라는 점도 노동가치의 평가절하에 기여했으리라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 정규직 노조가 연대하지 않음은 물론, 그들의 반대 의견이 사쪽에 의해 직고용 거부 사유로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노동이 가질 수 있는 몫을 협소하게 더 협소하게 줄이며 네가 죽지 않으면 내가 살 수 없는 경쟁을 유도한 신자유주의 광풍이 반세기 가까이 휘몰아친 탓이다.

노동운동 내 연대감이 강력한 스웨덴 같은 국가도 이런 광풍을 피해 갈 수 없었다. 물론 우리와는 다른 차원으로 진행되었다. 1980년대 말, 스칸디나비아항공(SAS)은 12%의 임금인상을 제안하면서 그중 1%는 노동조합이 지정한 노동자에게, 다른 1%는 경영진이 지정한 사람들에게 주겠다고 했다. 스웨덴 노조는 보통 여성이 다수인 가장 임금이 낮은 직군에 더 많이 인상분을 배분한다. 반면 경영진은 그 1%를 총 직원 800명 중 단 20명을 지정하여 지급하였고 그들은 엄청난 임금인상의 혜택을 받았다.

2000년대 초반 스웨덴 노총(LO)의 사무실에서 나에게 이 이야기를 해준 하칸은 자신은 당시 11%만 받고 경영진의 그 1%는 포기하자고 했지만 항공사 노조가 거절했다고 씁쓸하게 웃었다. 나중에는 그들 자신도 수혜자가 될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노동자 간 격차만 더 커지며 노동운동의 연대감은 심하게 훼손되었다.

통합된 업무가 분리되는 비효율뿐 아니라 횡령이나 갑질이 발생하기도 하는 위탁경영의 비윤리성을 제거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파업이 성공적이었으면 좋겠다. 무분별한 외주화로 노동자를 분열시킨 그 핵심 정책에 반대하는 어려운 파업인 만큼 더더욱 공단 정규직 노조의 지원에 목마르다. 대통령의 개인기로는 안 되는 일이기에 더더욱 대통령의 개인기가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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