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레아노의 꿈, 쿠바 이민 100주년 '쿠바의 한인들'

정지윤 기자 2021. 2. 22.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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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쿠바 한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2017년 KBS 광주 광복절특집 <꼬레아노의 꿈 , 쿠바 한인 후손의 이야기> 방송캡처. 사진 속 주인공들은 쿠바 한인 1세대인 독립유공자 고 주한옥 선생의 자녀들이다.


올해는 한인들이 쿠바에 정착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다. 조갑동 전 콜롬비아 대사가 라울 루이스와 마르타 림 김 부부가 쿠바 이민 백주년을 계기로 쓴 <쿠바의 한인들>이라는 책을 우리말로 번역해서 출간했다. 쿠바는 세계에서 몇 남지 않은 사회주의 국가이며, 정식 국명은 쿠바 공화국(Republic of Cuba)이다. 쿠바는 한국의 몇 안 되는 미수교 국가다. <쿠바의 한인들>은 어려운 여건을 뚫고 긴 세월을 버텨온 한인들의 발자국이 쿠바의 산과 들녘에서 숨쉬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쿠바 이민 역사가 우리민족 수난의 역사라고 말하고 있다.

쿠바 모국어 학교 모습/자유미디어 제공


쿠바 한인들은 구한말인 1905년 멕시코의 에네켄 농장으로 이민을 떠나 혹독한 노동으로 노예 취급을 받았던 1천여명의 한인들 중 1921년 쿠바의 사탕수수밭 취업을 위해 재이주했던 노동자 300여명의 후손들이다. 현재는 거의 대부분 쿠바인과 결혼하고 현지에 동화돼 모국어을 잊은 채 지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

2011년 8월 15일. 멕시코 남부 메리다에서 멕시코와 쿠바 한인후손들이 66주년 광복절 기념식을 갖고 한인이민100주년 기념탑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주멕시코 한국대사관 사진제공>>


1921년 3월 25일, 멕시코에서 300명의 한인들이 배를 타고 쿠바 마나티항에 도착했다. 이미 16년 전인 1905년 제물포항에서 멕시코 유카탄 반도를 향해 고국을 떠난 1,033명의 ‘애니깽 한인’들 중의 일부가 새로운 기회를 찾고자 쿠바로 재이민을 간 것이었다. 이 이민자들은 대부분 한반도에서 태어났으나 그 중에는 멕시코인들의 자손이나 혼혈아도 있었다. 당시 한인들이 타고간 타마울리파스호는 증기선이었고 이들은 멕시코 비자로 쿠바 항구에 첫 발을 디뎠다. 이것이 쿠바 한인의 시초다.

쿠바 한인 사회의 지도자인 고 임천택(1903~1985) 선생이 쿠바 한인들의 이민역사를 정리하여 후세에 남기려는 바람으로 쿠바 한인 이민자의 삶과 민족운동 상황 등을 최초로 정리한 『쿠바이민사』라는 작은 책이다. (자료 한국이민사박물관)
쿠바 마탄사스의 에네켄 사업 회사인 하르시아 회사의 한인회 건물 사진. 인천 한국이민사박물관 제공


이들은 멕시코의 열악한 에네켄 농장을 벗어나 조금이라도 형편이 나은 쿠바 수탕수수 농장에서 일자리를 찾으려 기대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한인들이 도착할 무렵, 1차 세계대전 후 설탕의 수출가격이 폭락해 쿠바 경제가 침체되고 있는 시기였다. 에네켄 선인장의 억센 가시를 피해 떠났던 그들은 또다시 쿠바 수도인 아바나 부근의 에네켄 농장에서 일해야만 했다.

초기 쿠바 이민자들의 숙소로 사용된 집/자유미디어 제공
쿠바 엘 볼로 농장에서 에네켄을 자르는 로렌소 리의 모습. 1950/자유미디어 제공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이들이 겪어야 할 갈등은 살아남기 위한 적응과 무의식중에 지키고자 했던 정체성이었다. 더욱이 1910년부터 일제 강점기를 맞으며 우러난 모국 독립에 대한 열정은 쿠바에 흩어져 살던 한인들을 한 데 뭉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1940년 쿠바 헌법은 한인들과 특히 쿠바에서 태어난 한인들의 현지 적응화 과정에 속도를 가하게 하였다. 세월이 지나면서 혼혈로 부득이 한민족의 피는 흐려지고 고국을 생각하는 마음도 엷어졌지만 여전히 한국인의 피가 살아 흐른다는 자부심만은 유지하고 있다.

쿠바 엘 볼로 농장에서 물을 뜨고 있는 쿠바 한인인 테레사 리의 모습/자유미디어 제공


1세대 이민자들이 쿠바에 첫 발을 디딘 후 5세대에 이르렀다. 10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쿠바에는 한인들의 발자국은 지금도 곳곳에 숨어 있다. 당시 300명의 한인들은 10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면서 800여명으로 늘어났다.

1938년 쿠바 마탄사스에서 결성된 독립운동단체 대한여자애국단 마탄사스 지부의 결성식 당시 사진. 독립운동가 임천택 선생(맨 오른쪽)은 이 단체의 고문을 맡았다. 앞줄 맨 오른쪽이 부인 김귀희 여사. 인천 한국이민사박물관 제공/자유미디어 제공
쿠바 한인 가정의 환갑잔치 모습. 1952/자유미디어 제공


저자인 마르타 림 김은 쿠바 마탄사스에서 1938년 한인 부모에서 태어났다.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인문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초등학교와 대학에서 33년간 교편을 잡았다. 저자의 아버지 고 임천택씨는 대한인국민회의 쿠바지회 회장을 역임했다. 또한 독립자금을 모아 백범 김구 선생 등에게 전달했으며 쿠바 한인들이 겪었던 고난과 역경, 이를 극복해 나간 모습들을 생생히 묘사한 <쿠바이민사>를 집필했다.

2014년 글로벌코리안 마탄사스의 아리랑에 출연할 당시의 마르타 림 김/YTN화면 캡처


자칫 묻혀버릴 뻔한 쿠바의 한인 이민사가 복원된 것은 이민 1세 임천택 부녀의 2대에 걸친 노고 덕분이었다. 그가 남긴 32쪽짜리 ‘쿠바 이민사’는 초기 한인사회의 유일한 기록이었다. 미완성의 쿠바 이민사를 완성한 사람은 둘째딸 마르타 림 김이다. 1997년 광복절에 부친에게 추서된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남편인 라울 R 루이스와 함께 2000년 1월 출간한 ‘쿠바의 한인들(Coreanos en Cuba.)’을 공동집필했다. 12년 동안의 현지 조사 및 자료정리와 3년 집필의 결실이었다. 2000년 쿠바 문화부로부터 최고 학술출판상을 받은 이 책은 아쉽게도 그동안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고 있었다. 올해 초 20년 만에 한·중남미협회와 외교부으 지원을 받아 한국어 번역본이 출판되었다. 쿠바 이민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쿠바의 한인들> 한국어 번역본
이 책을 번역한 조갑동 전 콜롬비아 대사/조갑동 대사 제공


이 책을 번역한 조갑동 전 콜롬비아 대사(85)는 한국외대 스페인어과를 졸업했다. 1968년에는 스페인 마드리드 국립 저널리즘 학교를 졸업했다. 이어 마드리드 대학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75년에 당시 외무부에 들어가 주 볼리비아 대사, 주 바르셀로나 총영사, 주 콜롬비아 대사직을 역임했다. 한서대학교 교수와 한-쿠바 친선협회 회장을 역임하고 중남미협회 이사로 재직하면서 활발한 번역활동을 하고 있다. 윤흥길의 <장마>,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 이승우의 <식물들의 사생활>, 이문열의 <그 해 겨울>, 보각국사 일연의 <삼국유사>, 쿠바의 시인이자 정치가인 호세 마르티의 <나는 태양에서 와서 태양으로 간다>, 니카라과의 시인인 루벤 다리이의 <푸름> 등을 번역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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