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과 정의, 젊은 세대 '연대'는 왜 필요한가

박찬수 2021. 2. 22.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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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수의 진보를 찾아서]박찬수의 '진보를 찾아서' _17
2019년 8월28일 저녁 서울 관악구 서울대에서 열린 ‘제2차 조국 교수 스톱(STOP)! 서울대인 촛불집회’ 모습. 조국 당시 장관 후보자 자녀의 스펙쌓기 논란에 대한 분노는 대학가의 항의 집회·시위로 나타났지만 규모는 제한적이었다.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한국 사회에서 정의를 둘러싼 갈등은 사회 전체의 공정성과 정의감이 높아져서가 아니다. 불공정과 부정의에 대한 포용성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20여년간 지속된 경쟁적 사회 구조는 개인의 포용 수준을 크게 낮췄다. 젊은 세대는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내 삶을 바꾸는 게 더 중요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지 않고 내 삶을 바꾸기란 매우 어렵다. 젊은 세대의 ‘연대’가 중요한 건 이 때문이다.

‘‘평등’ 사라진 ‘공정과 정의’, 전통 진보를 할퀴다’라는 지난번 글에서 현 시기 공정 담론의 바탕엔 능력주의가 깔려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능력주의는 보수의 전유물이 아니다. 엘리트 중심의 진보운동과 진보(또는 리버럴) 정치세력의 집권은 ‘진보 역시 사회의 기득권층’이란 인식을 불러일으켰다. 미국과 유럽도 비슷하다. 2016년 일어난 두개의 세계적 사건,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을 꺾은 것과 영국이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를 결정한 것은 ‘능력주의 엘리트에 대한 포퓰리즘적 반발의 의미가 있다’고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말했다. 샌델 교수는 “능력주의에 대한 불만은 두가지다. 하나는 체제가 능력주의적 약속을 충족하지 못해 일어나는 불만이다. 또다른 불만은 능력주의적 약속은 이미 지켜졌고 자신들은 볼 장 다 봤다는 절망에서 우러나온다”며 후자가 훨씬 강렬하다고 말했다. 전자의 경우엔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과감하게 확장함으로써 어느 정도 수렴이 가능하다. 그러나 후자와 같은 절망감을 해소하기란 쉽지 않다. 트럼프 당선과 브렉시트 결정은 대표적 사례다. 2020년 11월 대선 패배 직후 트럼프 지지자들이 의사당을 점거하는 초유의 일을 벌인 건 좌절감의 또다른 표현으로 읽힌다.

미국 민주당이나 영국 노동당이 보수주의 정당보다 개방적이고 소수자와 약자를 위한 정책에 훨씬 적극적이란 점은 분명하다.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 가보면, 다양한 인종과 계층의 사람들이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참여하는 ‘연대의 장’ 그 자체다. 반면 공화당 전당대회는 연미복과 드레스를 입은 백인들로 넘쳐나는, 정치 행사가 아니라 마치 고급 사교장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바로 그 민주당이 주창해온 게 사회적 상승 또는 계층의 사다리였다. ‘계층 이동을 제약하는 구조를 바꾸겠다. 계층의 사다리를 확대하겠다’고 민주당의 빌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은 약속했다. 포용과 개방의 확대는 의미가 있지만, 충분하진 않았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민주당의 그런 말이 결국은 엘리트 중심의 기존 체제를 강화할 거라 생각했다고 샌델 교수는 말했다.

이는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를 내세운 문재인 정부가 왜 젊은 세대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는지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특목고를 폐지하고 다양한 계층·집단의 대학입학 기회를 확대하려 애쓰는 현 정부의 정책이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지역 공공의대 설립 논란 때 “시민단체 인사 자녀들을 위한 제도”라는 가짜뉴스가 급속하게 퍼진 건 불신의 고리를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그 밑바닥엔, 진보적 가치에 따른 정책들이 기존의 기득권 구조를 바꾸지 못할 것이라는 좌절과 회의감이 깔려 있다.

이런 정서가 2019년 하반기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을 계기로 폭발했다. ‘기회의 평등’을 약속했던 정부에서 오히려 기회의 불평등과 과정의 불공정이 드러났다고 젊은 세대는 여겼다. 김윤태 고려대 교수(공공사회학)는 “논란의 핵심은 애초 검찰개혁 문제였다. 그런데 자녀의 입시 스펙을 만드는 과정에서 ‘기회의 평등’에 어긋난 요소가 있었음을 부인하긴 어렵다. 젊은 세대에겐 이게 더 중요했다. 촛불을 거친 문재인 정부는 좀더 공정하리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이게 허물어진 데 따른 분노의 표출이었다”고 말했다.

방아쇠는 조국 전 장관이 당겼을지 모르나, 공정과 정의에 관한 우리 사회 갈등의 골은 이미 깊어질 대로 깊어져 있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선 그게 두 보수 대통령의 탓이라 생각했을 뿐이다. 갈등의 본질을 정확하게 깨닫지 못한 건 보수 정치세력만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진보정당을 포함한 진보 진영도 비슷했다.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에서 핵심 직책을 맡았던 한 인사는 익명을 전제로 이런 얘기를 했다. “1980~90년대의 사회운동·진보운동이 이야기했던 건, 뭔가를 하지 말라는 거였다. 예를 들면 고문하지 말라, 그래서 육체적 고문은 지금 거의 사라졌다. 이제 그다음 단계에선 어떻게 가자는 거냐에 대한 방법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공기업 들어가기가 얼마나 힘든데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느냐’라는 (취준생) 주장에 답할 수 있는 내용이 마땅치가 않다. 그들은 정말 막막한 상황이고, 내가 젊었을 때보다 몇십 배는 더 고통스러울 텐데, 적극적인 취업 보장이나 생활·주거의 안정 이런 게 최소한이라도 갖춰져 있으면 그렇게까지 목소리 높여 반대하진 않을 것이다.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노동자가 16% 정도인데, 그 상당수가 청년층이다. 점점 더 불안해지는 젊은 세대의 삶의 모습, 경제적 위기, 그 속에서 불안한 마음의 상태, 이런 것에 (진보정당이) 더 빨리 주목했어야 했다. 20대, 30대에게 세상을 어떻게 바꿨으면 좋겠냐고 물어보면 ‘자살을 막았으면 좋겠어요’ ‘혐오 표현을 막았으면 좋겠어요’ 이런 이야기를 꽤 한다. 이른바 86세대는 세상을 바꿨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젊은 세대에겐 그런 경험이나 자부심이 없다. 사는 것의 어려움이 자신의 문제로 너무 일찍 다가와버린 세대인데, 그런 절박함에 덜 주목했다는 후회가 든다.”

조국 전 장관 논란이 벌어지기 훨씬 전인 2018년 2월 한국리서치가 실시한 ‘한국 사회의 공정성 인식 여론조사’를 보면 흥미로운 대목이 적지 않다. “우리나라는 계층 상승의 기회가 열려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전체의 73%로, 압도적이었다. 그런데 세대별로 유의미한 차이가 드러났다. 60대 이상에선 66%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한 반면, 20대에선 80%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젊을수록 성공의 기회가 닫혀 있다는 절망감이 크다는 뜻이다.

눈여겨볼 지점은 또 있다. ‘공익을 위해 개인 재산권을 제한해도 좋은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개인 재산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응답이 20대 34%, 30대 36%, 40대 39%, 50대 46%, 60대 이상 45%로 나타났다. 젊을수록 ‘공익’보다 ‘개인 권리’를 우선했다. 이념 성향으로 보면, 진보 성향 응답자의 51%가 ‘개인 재산권을 제한할 수 있다’고 답한 반면 보수 성향 응답자 중엔 40%만 같은 대답을 했다. 오랫동안 진보의 중요한 가치로 여겼던 공동체주의는 젊은 세대에게선 약화되는 경향이 뚜렷한 것이다. 개인과 공동체의 이익이 충돌할 때 젊은 세대는 언제든지 진보 정치세력 지지를 철회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숱한 논란들, 비정규직과 정규직, 공공의대 설립, 사법시험 부활, 정시·수시 대입 논란 등은 큰 틀에서 보면 공동체와 개인의 충돌 양상을 반영하고 있다.

여론조사를 진행한 이관후 경남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 사회에서 정의를 둘러싼 갈등은 사회 전체의 공정성과 정의감이 높아져서가 아니라, 불공정과 부정의에 대한 사적 포용성이 낮아졌기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1970~80년대의 고도성장기엔 타인의 부정의가 어느 정도 용납 가능했지만, 외환위기 이후 20여년간 지속된 경쟁적 사회 구조는 불공정·부정의에 대한 개인의 포용 수준을 크게 낮췄다”고 해석했다. 이관후 연구위원은 “세대에 따라 공정을 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정책을 펴도 논란은 불가피하다. 먼저 사회적 합의를 이루려는 노력을 부단히 해나가지 않으면 아무리 진보 가치를 담은 정책이라도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을 (현 정부가)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누군가의 ‘갑질’에 격한 분노를 쏟아내는 인터넷 여론이 이주노동자와 난민 문제에 냉담한 건 이와 관련이 있다. 젊은 세대는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내 삶을 바꾸는 게 더 중요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지 않고 내 삶을 바꾸기란 매우 어렵다.

젊은 세대의 ‘연대’가 중요한 건 이 때문이다. 지난해 9월 의사 파업 때 전공의들의 강경 투쟁을 이끌었던 박지현 전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은 기자회견에서 “망가져가는 부동산 정책,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공정성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정부에 맞서 이 땅의 청년들과 함께 연대하겠다”고 말했다. 지금은 회장직을 그만두고 병원으로 돌아온 박지현씨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연대를 모색했는지 물었다. 박씨는 “간호사들과 생각을 공유했고, 여성 문제에 관해 이공계 대학원생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이런 대화의 확산은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공정 담론의 성격과 파장에 비춰보면 제한적이고, 일시적이다.

연대와 단결의 방식이 과거처럼 집회, 시위나 성명 발표와 같은 형식으로 이뤄질 필요는 없다.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는 영웅 서사를 담은 게임처럼 신명 나게 놀면서, 힘을 합치면 어떤 난제도 극복할 수 있는 신나는 저항의 서사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어떤 방식이든 스스로 찾아야 한다. ‘낡은 진보’를 비판하면서 손쉽게 ‘낡은 보수’에 손을 내미는 태도로는 젊은 세대가 생각하는 ‘내 삶을 바꾸는 행동’을 지속해나가기 어렵다.

박찬수ㅣ선임논설위원. <한겨레신문>에서 정치부와 사회부·국제부 기자로 일했다. 국회와 청와대를 취재하며 ‘정치란 결국 권력 행사를 통해 사회를 바꾸는 것’이란 생각을 갖게 됐고, 그 점에서 어떻게 하면 권력을 제대로 올바르게 행사할 수 있을까에 관심이 많다. 청와대와 백악관의 작동 방식을 비교한 <청와대 vs 백악관>(2009년)과 1986년 태동한 민족해방(NL) 사조를 다룬 <엔엘(NL) 현대사>(2017년)를 펴냈다.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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