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유럽엔 빗장 걸고 홍콩엔 여는 英 이민정책
"홍콩인 英 들어와도 우리 세금 안 나간다"
英 정부, 5년 간 '홍콩인 효과' 4.5조원 전망
대중국 반감 속 '이민문제의 脫정치화' 확산
反中 여론 타고 홍콩인 이민에 초당적 협력
영국 정부가 홍콩인을 대상으로 이민 신청 문호를 확대한 지 2주 만에 신청자가 5000명을 넘어섰다. 과거 영국 식민지였던 홍콩에 대한 중국의 억압에 맞서 도움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는 명분이다. 다만 반(反)이민 기조를 내세워 유럽연합(EU) 탈퇴를 주도했던 영국 보수 정권이 홍콩에 이례적으로 문호를 대폭 개방한 데는 경제·정치적 셈법이 자리잡고 있다.
프리티 파텔 영국 내무장관은 이달 초 기자회견에서 "위대한 영국으로 홍콩인들의 이주를 환영하고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파텔은 지난 2016년 국재개발부 장관 재임 당시 이민을 '통제되지 않은 이주'라고 표현하며 반이민 캠페인을 벌였다. 지난해에는 영국으로 망명을 요청한 이들을 영국령 섬 두곳으로 보내는 방안을 검토한 사실이 드러나 빈축을 사기도 했다.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의 주역인 보리스 존슨 총리도 지난 2008년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앞두고 TV 토론에서 "EU의 이민 정책 때문에 영국이 중범죄를 저지른 이민자를 추방하지 못하고 있다"며 민심을 자극했다. 당시 브렉시트에 반대했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향해 "부분적으로 케냐인인 대통령"이라며 "모순되고 위선적"이라고도 했다.
그랬던 존슨은 최근 BNO(British National Overseas·재외 영국시민) 여권 소지자의 이민에 대해 "매우 자랑스럽다"고 치켜세웠다. 특별비자는 BNO 여권을 가진 홍콩인과 가족이 영국에서 5년간 거주한 뒤 1년 후에는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게 한 제도다. BNO 여권은 1997년 홍콩 반환 이전 출생한 홍콩인에게 영국 정부가 발급한 것이다.
21일(현지시각) CNN은 영국 정치권의 홍콩인 이민 확대 조치가 △연간 1조원의 경제 효과와 △대(對)중국 부정 여론 확대에 기반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과거 수 년 동안 지극히 정파적 이슈로만 여겨졌던 이민 문제가 중국에 대한 반발 여론을 타고 '도덕적 의제'로 탈바꿈하면서 여야 정치권이 이례적으로 결집해 초당적인 지지를 보내게 됐다는 것이다.
민심 변화에는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중국 책임론이 최대 원인으로 작용했다. 중국 정부가 코로나19 발생 초기에 이를 은폐해 영국 등 유럽 전체의 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는 여론이 거세기 때문이다. 2019년까지 중국은 영국 대외무역 전체의 8%를 차지할 정도로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영국 정부는 대중 무역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노선을 변경했다. 홍콩인에 대한 이민법 개정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고 CNN은 전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과 반중(反中) 시위 이후 홍콩의 자금이 해외로 대거 이동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홍콩 부호들 또는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중국 본토 접근성이 좋은 싱가포르 외에 영국과 캐나다, 호주 등으로 이주하거나 자금을 이동시키는 움직임이 대폭 늘었다는 것이다.
실제 영국 내무부는 올해 최대 15만3700명의 BNO 소지자가 입국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들이 5년 간 29억 파운드(약 4조5000억원)의 경제적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니엘 해넌 보수당 의원은 최근 보수 일간지 텔레그래프에 "영국에 들어온 홍콩인들에게 우리 납세자의 돈은 한 푼도 들지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그들은 스스로 부(富)를 가져올 것이며, 그들은 고향에서 그랬듯 주변 지역사회에 경제 활동을 활발히 일으킬 것"이라고 했다.
홍콩은 전 세계적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최상위 수준인 나라로 꼽힌다. 영국 이민규정에 따라 홍콩인 가족(4인 기준)이 지불해야 하는 이민 관련 수수료만 1만2000파운드(약 1860만원)에 달한다. 이주 후 6개월 간 생활비로 지출할 재정과 출처를 증명해야 하며 은행계좌에는 4인의 항공편 요금을 제외하고 적어도 3100파운드(약 500만원) 이상이 저축돼 있어야 한다.
다만 이주 홍콩인의 수가 급격히 늘어날 경우 영국 정부의 태도가 변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타냐 불트만 스트라스클라이드대학 이주·디아스포라학과 교수는 CNN에 "여론조사 결과 영국 유권자 대다수가 BNO 방식을 지지하지만 향후 5년 안에 30만여명이 영국에 대거로 들어온다면 태도가 바뀔 수 있다"며 "BNO 자체는 좋은 의도이지만 전망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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