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징벌배상, 포털도 포함해야 하는 이유..시장개혁에 해답[50雜s]
-'전여옥 외 1건' 불과한 포털 손해배상, 정보통신망법 언중법 보완 필요
-언론사 개혁이 아니라 언론 ‘시장’ 개혁 필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하면 1992년 미국의 ‘맥도널드 커피 사건’을 떠올린다. 하지만 징벌배상은 훨씬 이전인 1763년 영국의 ‘윌키스 사건’을 계기로 보통법(common law)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기업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는 과도한 입법이라는 비판과 ‘최적 억지’를 통한 사회적 비용 저감장치라는 법경제 이론이 팽팽하게 맞선다. 징벌배상의 '본고장'인 미국의 연방대법원이 2003년 제시한 징벌손배의 합헌 기준은 ‘손해액의 10배 미만’이다. 그럼에도 뉴욕주 등 16개 주는 상한이 없는 징벌배상을 인정하고 있다. 징벌배상을 인정하지 않는 주는 5개 밖에 안된다.
“언론장악 음모다, 언론이 가습기 살균제나 자동차 제조사하고 같느냐” 항변은 우리 업자(언론인)들끼리는 통하는 개탄이지만, 국민들이 공감해줄 지는 극히 의문이다.
잘못된 기사, 여기에 기사 댓글까지 더해져 갈등과 비용이 증폭되고 사람 목숨까지 오가는 상황을 감안하면 언론은 오히려 더 엄정한 징벌배상이 필요한 영역이라는데 공감할 국민들이 더 많을 것이다. 이달 초 실시된 언론 대상 징벌손배에 대한 찬반 설문에서 찬성 응답이 61.8%(오마이뉴스/리얼미터)로 반대(29.4%)의 두 배가 넘었다. 언론과 야당의 반발이 본격화하기 이전인 지난해 5월 미디어오늘/리서치뷰 조사에선 찬성이 무려 81%에 달했다.
언론인으로서 차마 꼿꼿이 머리 들고 “언론탄압”이라고 목청을 높이지 못하겠다.
물론, 단순히 징벌배상을 물린다고 해서 언론이 개혁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언론개혁은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기사를 쓰고 퍼뜨리는 뉴스 생산-유통의 메커니즘을 바꾸는 ‘시장형 개혁’이어야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독자들은 과점 공급자인 포털을 통해 뉴스를 소비한다. 판매자인 포털에 기사를 제공하는 언론은 납품업자다. 포털은 트래픽은 곧 수익이다. 포털에는 온갖 저질 제품들까지 납품된다. 불량제품으로 피해가 발생해도 책임을 질 위험이 없는 포털은 품질관리(퀄리티컨트롤. QC)를 해야 할 동기가 별로 없다.
뉴스를 어디서 봤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네이버, 다음” 이렇게 대답한다. 언론진흥재단의 2020 언론수용자 조사에 따르면 포털을 통한 뉴스 이용률은 75.8%에 달한다.
소비자가 기사를 클릭하면 언론사 사이트에서 기사를 소비하는게 아니라 포털사이트 내에서 소비되는 인링크(In-Link)시스템이 국내 포털의 기본구조이다. 언론사의 뉴스컨텐츠는 포털의 데이터베이스(DB)에 저장돼 반복적으로 소비되고 활용된다.
단순한 '인식'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포털에서 소비되는 건 단지 뉴스 뿐이 아니라 거기 붙은 댓글들까지 포함된다. 다시 말해 소비자들은 포털에서 ‘2차 가공된’ 제품을 소비하는 것이다. 기사로 인한 피해와 확산, 기사 댓글을 통한 2차 피해와 가중피해가 포털에서 일어난다. 실제로 기사가 읽히고 유포된 비율에 따라 언론과 포털이 징벌적 손해배상 금액을 나눠 내게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포털로서는 안 물던 돈을 내라니 억울하단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포털은 20여년간 우리 사회의 토양에서 성장해 온 국민의 하루를 책임지는 ‘공공인프라’가 됐다. 이 정도 규모가 됐으면 시대의 화두인 ESG경영의 S(Social:사회적 책임)를 생각하는 대인의 면모를 보여줄 때 국민과 언론으로부터 진심으로 존경받는 '위대한 기업'으로 지속가능하지 않겠냐고 간곡히 이야기하고 싶다.
언론사 입장에서는, 포털과 징벌배상을 분담하면 배상액의 일부만 내도 될 것이니 반대할 이유가 없다. 민주당 법안에서 제시한 '손해액의 3배'가 아니라 그 보다 더 높게 손배액이 입법화해도 겁내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내가 언론계에 몸담고 있다고 해서 우리 주머니 부담을 줄여보자는 얄팍한 잔머리를 굴리는 게 ‘절대’ 아니다. 배상액보다 중요한 핵심은 '책임에 따른 배상분담과 이를 통한 시장정상화'이다.
기자들로서도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대한 무리한 베끼기 기사, 클릭만을 위한 부풀리기 기사,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기사를 쓰지 않을 '방어막'으로 징벌배상 제도가 기여할 수 있다.
뉴욕타임즈처럼 수준높은 컨텐츠로 유료 구독모델을 만들고, 자정노력을 통해 셀프 개혁해야 한다고 말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지금과 같은 세계 유일의 포털생태계 하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심지어 그런 주장을 하는 미디어 비평 사이트들도 사이트의 정체성과 무관한 네트워크 광고로 도배돼 있다.
하지만 포털이 생긴 이래 20여년 동안 언중위 중재에 의해 포털이 언론기사 유통에 대해 책임을 지고 손해배상을 한 경우는 딱 한 건이다. 사진초상권 침해와 관련된 2010년 사건의 피해 산정액은 단 15만원이었다.
재판까지 가서 포털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받아낸 경우는?
2006년 전여옥 전 의원이 언론사와 포털을 상대로 500만원을 받아낸 사건과, 일반인의 명예훼손 관련 사건(2009년) 등 단 두 건 밖에 없다. 이 외에는 포털이 언론기사로 인한 피해의 ‘피고’로 법정에 선 경우 자체도 기록에 없다.
참고로 전여옥 사건 당시 포털책임을 인정한 판결문의 핵심 대목은 이렇다. “송고된 기사 내용 그 자체에 대하여 (포털이) 수정·변경을 가할 수 없는 대신 그 기사 내용으로 인한 손해에 대하여는 해당 언론사가 전적으로 책임지기로 하는 내용의 뉴스 콘텐츠 공급계약을 체결해 두고 있다 하더라도, 이는 피고들과 위 언론사들 사이의 내부적인 책임 분담 약정에 불과하다 할 것이다” 뉴스를 배치하고 제공하는 행위 자체가 책임이 따르는 행위라고 본 것이다(인공지능 AI 편집이라고 해도, 알고리즘을 사람이 짜는 한 본질이 달라질 건 없다).
책임정도를 규명하기 위한 소비(트래픽)자료 제출도 의무화해야 한다. 어느 기사가 포털에서 몇 클릭, 언론 클릭이 읽혔는지 데이터는 포털과 언론사에서 간단히 제출받을 수 있다. 오프라인 신문을 발행하는 언론의 경우는 여기에 ABC(발행부수공사제도)에서 공인된 신문 발행부수를 '피해규모'에 산정하면 된다(이렇게 되면 신문사가 발행부수를 부풀리고 과장하는게 손해배상액을 높이는 자해행위가 될 것이다).
물론, 징벌배상의 가장 중요한 조건인 ‘비난가능성’을 비롯, 가해자의 재산상태와 이득, 소송비용 등이 엄격히 법적 근거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전제 하에 하는 말이다.
네이버 다음 등 포털의 모바일사이트 첫화면, ‘헤드라인 뉴스’, '많이 본 뉴스' 등은 제목에 여전히 어느 언론사 기사인지가 노출돼 있지 않다. 업계 선두 네이버의 등 뒤에서 맞바람을 피해 온 다음 포털은 '깜깜이 클릭'문제가 상대적으로 더 심하고, 네이버가 폐지한 '많이 본 뉴스'도 없애지 않고 있다.
일반 상품은 구매하기에 앞서 제조업체, 원산지 등을 보고 소비한다. 하지만 포털 기사는 제목을 누르는 순간 소비가 일어난다. 어느 언론사 기사인지 선택해서 볼 권리가 없다. 매우 의도적인 익명화이다. 기사에 들어가 보고 나서야 “에이 씨~”하고 창을 닫아도 이미 소비는 이뤄지고, 클릭은 포털과 언론사의 수입으로 이어진다.
그러니 더더욱 제목은 최대한 섹시하게 달게 되고, 베껴 쓴 기사일수록 원래 기사보다 더욱 공격적이 된다.
30년 가까이 언론사에 몸 담으며 온갖 오물을 몸에 묻히고 살아온 주제에 이런 언론개혁 화두를 입에 담는 건 면구한 일이다. 포털에 징벌배상을 같이 물리고, 기사 원산지 증명제를 하는 것만으로 언론시장 정상화가 이뤄질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자정노력'만을 이야기하는 건 아무 것도 하지 말자는 말이다.
기자들이 유독성 환경에서 병들어 가고, 독자들이 맹독성 기사에 중독돼 가는 걸 방조하지 않으려면 우리 사회와 언론이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부터 우선 실행해야 한다.
이런 시장 개혁에 여·야 보수·진보 내편·네편이 있을 이유가 없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우디 앨런, 양녀 성추행 다큐…또 다른 양녀였던 아내 순이 반응은 - 머니투데이
- 최광남, 아내에 "난 혈기왕성한 20대, 밥 해줄 테니 관계 해줘" - 머니투데이
- 유튜버 신사임당, 존리 인터뷰 후 주식 매매…"1억원 벌었다" - 머니투데이
- 서장훈, 역대급 뻔뻔한 채무자에 "당장 돈 갚아" 분노 - 머니투데이
- 김동성, 전처 '밑 빠진 독'이라 칭하며 문자 공개…"상간녀 기사 낸다" - 머니투데이
- 술은 안 마셨다는 김호중…국과수 "사고 전 음주 판단" - 머니투데이
- 김호중 간 유흥주점은 '텐프로'…대리운전은 '의전 서비스' - 머니투데이
- 김호중, 인사차 들렀다더니…텐프로서 '3시간' 넘게 있었다 - 머니투데이
- MS, 자체개발 'AI칩' 내주 출시…엔비디아 라이벌과 클라우드 동맹 - 머니투데이
- '생애 첫 차' K3도 생산 중단…한국서 사라지는 '작은 차' - 머니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