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보지 않아도 스스로 피어 세상을 이롭게 하는 진달래꽃" [책에서 만난 문장]

김용출 2021. 2. 22. 07:31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사람들은 진달래꽃을 따 먹기도 하고 화전을 부치기도 하고 또 술을 담그거나 약재로 쓰기도 하지요. 이렇게 널리 쓰이면서도 어디 진달래꽃을 정성들여 가꾸는 사람 있습니까. 진달래꽃은 우리나라 어디에나 퍼져 살아가고 있는 일반 백성들과 다를 바 없어요. 그래요. 아무도 돌보지 않아도 진달래꽃은 산에서 스스로 피어나 세상을 이롭게 하지요. 일반 백성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나는 진달래꽃을 좋아한답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아도 진달래꽃은 산에서 스스로 피어나 세상을 이롭게" 하는 존재로, 병산은 진달래꽃에서 민중의 모습을 본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진달래꽃을 따 먹기도 하고 화전을 부치기도 하고 또 술을 담그거나 약재로 쓰기도 하지요. 이렇게 널리 쓰이면서도 어디 진달래꽃을 정성들여 가꾸는 사람 있습니까. 진달래꽃은 우리나라 어디에나 퍼져 살아가고 있는 일반 백성들과 다를 바 없어요. 그래요. 아무도 돌보지 않아도 진달래꽃은 산에서 스스로 피어나 세상을 이롭게 하지요. 일반 백성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나는 진달래꽃을 좋아한답니다.”

--유익서, 2021, 『소설 진달래꽃』, 서울: 나무옆의자, 18쪽

격동의 해방 공간을 배경으로 지식인들의 좌절과 이념의 허구를 파헤친 유익서의 장편 『소설 진달래꽃』에서 주인공인 지식인 혁명가 김병산은 마치 민중의 모습 같다며 진달래꽃을 좋아했다. “아무도 돌보지 않아도 진달래꽃은 산에서 스스로 피어나 세상을 이롭게” 하는 존재로, 병산은 진달래꽃에서 민중의 모습을 본다. “혁명만이 조선의 위대한 미래”라고 믿는 병산은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 지식인으로, 집안의 전 재산까지 털어 넣고 오직 백성을 위한 혁명운동에 매진하는 혁명가다. 진달래꽃은 소설에서 혁명가의 꽃이었다.

‘혁명의 꽃 또는 상징’으로서의 진달래꽃 이미지는 시인 김소월의 대표시 「진달래꽃」과는 사뭇 다른 이미지이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바로 변함없는 임과의 사랑을 강조하는 매개체로, 사랑의 순정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소설에서 병산은 남로당이 불법화한 뒤에도 지하활동에 매진하다가 체포되고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처형된다. 병산의 대의에 매료돼 남로당에 입당하고 결혼까지 한 진주부청 공무원 은희는 그의 시신이 매장된 곳을 찾아 진달래나무를 심어준 뒤 인민군에 자원입대해 북으로 향한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는 건 병산이 꿈꾼 ‘지상낙원’이 아니라 가난과 인간의 존엄이 무너진 사회였다.

한산도에서 집필 활동 중인 원로 작가 유익서에게 ‘독자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느냐’고 묻자, 그는 조금 길게 답했다. “해방 직후 북에는 소련이 진주하고 남쪽에는 미군이 진주했는데, 두 나라가 이 땅에 세우고자 하는 정부 형태에 따라 혼란을 거듭했어요. 이쪽이나 저쪽이냐,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에서 거의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사회주의를, 혁명을 부르짖었어요. 이 땅의 백성들을 평등하고 잘 살게 하겠다는 이상을 품었지만, 시대에 희생됐던 것이죠. 해방 공간에서 지식인들의 좌절과 고민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나에게 진달래꽃은 무엇이었을까. 나에게 진달래꽃은 사랑스런 존재라거나 혁명의 꽃 모두 아니었다. 기억을 소환해보면, 어릴 적 산이나 길에서 만난 진달래꽃은 배고플 때 그냥 따먹는 존재였고, 친구들과 놀다가 손톱에 꽃물을 들이는 놀이의 대상이었던 것 같다. 커서는 봄의 전령사라거나 봄의 향연의 한 주역 정도로 지위를 키워갔다. 겨울 내내 추위에 지쳐 있을 때 산수유라든가 개나리 등과 함께 진달래꽃이 피면 봄을 확연히 깨닫고 몸도 마음이 마구 들떴으니까. 그런 점에서 진달래꽃은 다 같지만 때마다 사람마다 또 다 다른 존재. 그럼에도 코로나19 시대, 진달래꽃은 다시 피어날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여, 힘을 내자.(2021.2.22)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