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숙의 강화일기] 아니 귀한 생명은 없다

한겨레 2021. 2. 22.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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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숙의 강화일기]

김금숙 그래픽노블 작가감자를 잃어버렸다.

일정이 있어 아침 일찍 서울에 갔다가 돌아온 건 오후 4시가 다 되어서였다. 부엌 창밖으로 남편이 강아지들 산책에서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표정이 밝지는 않았지만 평소 웃는 얼굴은 아니어서 나는 그냥 그러려니 했다.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제일 먼저 하는 말이 감자를 잃어버렸단다. 순간 아찔했다. “어디서?” “어떻게?” 떨리는 목소리로 내가 물었다. “산책하다가. 쵸코가 천천히 걷잖아. 어느 순간 봤더니 당근이는 근처에서 노는데 감자가 없더라고.” 나는 남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벗었던 점퍼를 다시 걸치고 밖으로 뛰었다. 점퍼에는 아직 나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 남편이 뒤에서 나를 불렀다. “차 타고 가자.”

진강산에 조금 오른 후 차를 세웠다. 나는 “감자야” 하고 부르기 시작했다. 남편이 말했다. “여기가 아니야. 산중턱이야.”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혹시 애가 이 근처에 있을지도 모르잖아.” 내가 부르면 달려왔던 감자였다. “감자야 어딨어? 감자, 이리 와. 감자야.”

웰시코기 당근이와는 다르게 감자는 여러 번 내 속을 태웠다. 당근이는 사람을 좋아한다. 오히려 개를 무서워하고 경계한다. 지가 사람인 줄 아는가 보다. 무엇이든 금방 배운다. 단어도 꽤 많이 안다. 강아지들이 부엌에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달았다. 들어오면 안 된다고 가르쳤다. 당근이는 안 들어오는데 감자는 어느새 들어와서는 내 눈치를 살핀다. 그때마다 귀여워서 봐주곤 했다. 어쩌면 녀석은 나의 그런 마음을 알았을 것이다. 무거운 창으로 된 문을 코로 간신히 밀고 현관으로 나가는 녀석을 볼 때마다 웃음이 났다. 마당에서만 놀라고 울타리를 쳐놓았건만 그 울타리를 뛰어넘어 고양이를 미친 듯이 쫓아 나의 애간장을 태우던 감자였다.

사람들은 감자는 똥개니까 버리고 당근이만 키우라고 했다. 똥개를 집 안에서 키운다고 뭐라고 했다. 매일 보는 사람을 또 봐도 짖는다고 미워라 했다. 감자는 체격은 작고 어리지만 산책 중에 사나운 개가 나에게 달려들었을 때 털을 빳빳이 세우며 나를 지켜주려고 맞서 짖었다. 자주 보았는데도 감자가 짖는 건 그 사람의 냄새를 맡지 못했기 때문이다. 감자가 짖은 덕에 유기견에게 물려 죽을 뻔한 닭들을 살릴 수 있었다.

감자를 잃은 것이 우연이 아닌 것만 같았다. 최근에 새로운 개를 입양했다. 태어난 후부터 철창에 갇혀 있던 보더콜리였다. 많은 고민 끝에 어렵게 데리고 왔다. 이름은 쵸코라고 지었다. 쵸코 때문에 감자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눈치였다. 하필 내가 없던 날 감자가 사라졌다. 남편이 쵸코를 아끼는 모습을 보고 사라진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날은 곧 어두워지는데 감자의 목에 달린 방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결국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왜 내려왔어? 왜 감자만 두고 그냥 내려왔냐고?” 목줄까지 매여 있는 채로 사라졌으니 어디라도 걸려서 꼼짝 못 하면 영락없이 죽는다. 산짐승에게 공격을 당할 수도 있다. 개 도살자가 데리고 갈 수도 있다.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조여왔다. 감자가 어디선가 내가 저를 찾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릴 것만 같았다. 남편이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자기는 다른 쪽을 찾아보겠노라고 산 정상을 향해 갔다. 나는 가릉 쪽을 향하며 감자를 불렀다. 그때 갑자기 “이쪽에는 없어요” 하며 엘리의 주인 부부가 나타났다. 엘리는 이웃집 개다. 엘리의 주인은 나와 함께 감자를 찾았다.

가릉 쪽에는 없다 하니 감자가 사라졌다는 산중턱으로 다시 갔다. 나는 감자의 이름을 산이 떠나가라 목이 찢어져라 부르고 있었다. 거의 비명에 가까웠으리라. 순간 남편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찾았어. 감자 여기 있어.” 나는 남편이 있는 산의 정상을 향해 달려가며 감자를 불렀다. “감자야.” 감자의 방울 소리가 들렸다. 감자가 번개같이 달려와 내 품에 안겼다. “이눔의 새끼.” 나는 그 자리에서 통곡을 해버렸다.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이 있다. 그중 하나가 우는 모습일 것이다. 이웃은 나의 우는 모습에 당황하고 황당스러웠을 것이다. 나도 내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감자를 다시 찾은 기쁨에 멈출 수가 없었다. 무사히 살아 있음에 안도하고 감사했다.

그날 밤 감자는 얼굴을 내 쪽으로 향한 채 잠이 들었다. 나는 자다가 깨어 종종 감자를 쳐다보았다. 다음날 아침에 감자는 방 안에 들어와 내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 평소에는 그런 적이 없었다.

어느 날 우리 집 테라스에 버려졌던 아기 감자. 똥개건 아니건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은 귀하고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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