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면허 박탈법은 이긴다" 1차전 체면 구긴 여당의 역습

김준영 입력 2021. 2. 22. 05:01 수정 2021. 2. 22.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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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법 개정안이 의결되면 전국 의사 총파업 등 전면적인 투쟁에 나서겠다.”(20일 대한의사협회)
“의협이 불법 집단행동을 현실화한다면 정부는 망설이지 않고 강력한 행정력을 발동하겠다.”(21일 정세균 국무총리)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 [뉴시스]


더불어민주당과 의사협회 간의 갈등이 재점화했다. 지난해 의대 정원 증원 문제와 공공의대 설립 문제 등을 놓고 갈등을 빚은 데 이어 이번엔 지난 1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통과된 이른바 ‘의사 면허 박탈법’(의료법 개정안)을 두고 전선이 형성됐다.

법안은 업무상 과실치사와 과실치상 등을 제외한 모든 범죄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의사의 면허를 박탈하고, 형 집행 후에도 최대 5년간 면허 재교부를 금지하는 내용이 골자다. 기존 의료법에는 의료법 위반으로 금고형 이상을 받을 때만 면허가 취소됐는데, 의료법뿐 아니라 다른 범죄와 관련해서도 면허가 취소되도록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통과된 개정안은 강병원·강선우·권칠승·고영인·박주민(이상 민주당) 의원과 곽상도(국민의힘)·최연숙(국민의당) 의원 등 7명이 각각 대표 발의한 8건의 의료법 개정안을 합한 법안이다.

의협은 복지위 통과 직후 “형평성에 반하는 과잉규제”라는 반발 논평을 내놨고, 최대집 의협 회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코로나19 치료·예방접종 등 아무 조건 없이 오직 국민을 위해 정부에 협력·지원한 대가가 의사 죽이기 보복 악법으로 돌아왔다”고 주장했다. 총파업뿐 아니라 “13만 의사 면허 반납 투쟁, 코로나19 백신 접종 대정부 협력 전면 잠정 중단”과 같은 고강도 투쟁 예고도 덧붙였다. 26일 국내 첫 백신 접종을 앞두고 다시 한 번 벌어진 양측의 기싸움이다.


1차 대전에서 체면 구긴 민주당의 역습
민주당의 법안 발의 취지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는 의사에게 우리 국민이 바라는 수준의 윤리의식을 갖추도록 하는 것”(박주민 의원)이다. 민주당은 이 논의 자체도 20대 국회부터 수년 간 이어온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의협은 ‘보복 입법’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지난해 초부터 이어진 여권과 의협의 갈등 국면에서 의협이 사실상 승리해 민주당이 체면을 구긴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번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양측의 갈등은 지난해 2월 의협이 “(정부가 중국발 입국 제한을 하지 않아) 코로나 1차 방역이 사실상 실패했다”고 비판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다 민주당이 지난해 4월 총선을 앞두고 ▶공공의대 설립 ▶의사 정원 확대 등을 공약으로 내놓으면서 갈등이 격화됐다. 민주당으로선 코로나19로 인한 의료진 확충이 필요하다는 명분도 있었고, 전국 광역단체 중 유일하게 의대가 없는 곳이자 지지기반인 전남에 의대를 설치한다는 실리도 챙길 수 있는 공약이었다.

지난해 8월 23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로비에서 환자와 보호자들이 전공의들이 벗어놓은 의사 가운 위로 붙은 입장문을 바라보고 있다.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등에 반대하는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이날 전국 수련병원에서 담화문을 발표하고 의사 가운을 벗는 퍼포먼스를 펼친 후 무기한 파업에 들어갔다. [뉴스1]


하지만 그해 8월 의협 등 의사 단체가 연이어 총파업에 나서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여권은 “(간호사들이) 파업하는 의사들의 짐까지 떠맡아야 하는 상황”(문재인 대통령)이라거나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볼모로 하는 파업”(이해찬 당시 민주당 대표)이라는 강한 비판 메시지를 내며 반전을 노렸다.

하지만 코로나 감염이 확산하는 상황에서 정부로선 진료 거부 카드를 꺼낸 의료계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온 게 9·4 합의였다. 당시 합의를 통해 여권은 의대 정원 확대 등 추진 사안을 ‘원점 재논의’하겠다고 밝혔고, 최 회장은 “전례 없는 소중한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했다.

당시 합의는 후폭풍을 불렀다. 민주노총 등 176개 시민단체 대표들은 “정부와 여당이 의사들의 환자 인질극에 결국 뒷걸음쳤다”고 비판했고, 당원 게시판에도 “180석 줬더니 이렇게밖에 못하냐”는 아우성이 들끓었다.

지난해 9월 4일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오른쪽)과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이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정책협약 이행 합의서에 사인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민주당과 의협 간 합의안에는 의료계에서 파업 철회 조건으로 내걸어 온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신설 추진 등을 원점에서 재검토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뉴스1]


“문제 최소화 시키려 논의 참여”…여론 주시하며 신중한 국민의힘

민주당 내부에선 이번 싸움에선 명분으로 보나 여론으로 보나 민주당이 승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먼저, 다른 전문직과의 형평성이다. 이미 변호사와 회계사 등 다른 전문직은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을 경우 자격을 잃게 돼 있다. 더군다나 이번 법안 논의 과정에서 환자를 치료하다 실수로 다치게 하거나 사망에 이르게 하는 업무상 과실치사와 과실치상은 면허 박탈 대상 범죄에서 뺐기 때문에 의협이 반발할 명분도 크지 않다는 게 여권 내부의 판단이다. 파산 선고를 받고 복권되지 않은 자를 의료인이 될 수 없도록 하는 내용도 빠졌다. “의사를 타 직종과 불합리하게 차별한다”는 의협 주장에 “변호사·국회의원 등 전문 직종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같은 규제가 적용됐다”(고민정 의원)고 민주당이 반박하는 이유다.

정부가 “강력한 행정력을 발동할 것”이라고 한 만큼 의사들이 이전처럼 단체 행동에 적극 참여할지도 미지수다.

국민의힘이 여론을 주시하고 있는 부분도 여권으로선 유리한 지점이다.

지난해 의료진 파업 당시 “정부의 일방적 밀어붙이기가 의사 파업을 초래했다”(주호영 원내대표)며 정부를 압박하던 국민의힘은 이번엔 난처한 눈치다. 21일 “의료계와 화풀이 일전을 벌이는 게 과연 코로나 극복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정부·여당은 신중히 판단하기 바란다”(배준영 대변인)는 구두 논평을 내긴 했지만, 속내는 복잡하다.

복지위 소속의 한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강간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의사의 면허를 박탈하자는 주장을 논리적으로 반대하긴 어렵다. 또 백신 접종 협력 거부를 외치는 의협과 자칫 같은 편이라는 이미지가 생기는 것도 우리에겐 좋지 않다. 법안을 결사반대할 방도와 의협을 지지할 명분이 달리 없다”고 말했다.

다만, 국민의힘은 굳이 지금 시점에서 의료법을 개정했어야 하는지에 대해선 여전히 정부와 여당에 비판적이다. 국민의힘 보건복지위 간사인 강기윤 의원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우리가 논의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업무상 과실치사상과 파산 부분이 모두 포함될 뻔 했다”며 “민주당이 법안 원안을 통과시킬 경우 생기는 문제점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참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안의 내용을 떠나 의료진이 코로나와 싸우는 지금 이 시점에 법안을 통과시키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의사 출신이자 복지위 소속인 신현영 민주당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면허 박탈 법안은 20대 국회때부터 논의됐던 일이다. 의사협회가 일찍부터 국회와 진지한 토론을 해서 의견을 조율할 기회가 많았는데, 통과되고 나서 총파업을 꺼내는 건 국민 신뢰를 받지 못할 일”이라며 “이제라도 강경한 대응보다는 국회와 함께 코로나 대응 방안에 힘을 합쳤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번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26일 본회의로 넘겨질 예정이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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