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맥주 살때도 "지문 찍으세요".. 하긴 했지만 아 찝찝해

허유진 기자 2021. 2. 21.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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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이모(20)씨는 지난달 서울 강남구의 한 술집을 방문했다가 지문 인식을 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미성년 손님들이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증을 도용하는 경우가 많아지자, 아예 민간 업체가 만든 신분증 감별기와 지문인식기를 갖다 놓은 것이다. 이 기기에 지문을 찍으면 신분증 뒷면에 있는 지문과 일치 여부를 확인해준다. 이씨는 “어려 보이는 손님이나 20대 초반은 대부분 종업원 요구에 따라 지문을 찍어야만 출입이 가능했다”며 “술집에서 왜 지문까지 검사하는지 의문이었지만, 함께 술 마시러 온 친구들도 다 하기에 나도 같이했다”고 했다. 술집뿐 아니라 편의점도 이 같은 방식으로 지문을 요구하는 곳이 점차 늘고 있다. 해당 지문인식기를 판매하는 업체는 홈페이지에 ‘전국 6대 편의점’에 납품하고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주민등록이나 출입국 절차 등을 위해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제한적으로 요구해왔던 지문·지정맥(指靜脈) 등 생체정보를 영리 활동을 하는 민간 사업장에서 반강제적으로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생체정보는 복제가 어렵기 때문에 신원 확인에 유리하지만, 한 번 유출될 경우 변경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치명적인 개인 정보 유출 피해를 낳을 수 있다. 하지만 술집·편의점·스키장 등 각종 상업시설에서 ‘편리하다’는 이유로 이런 정보를 무분별하게 수집·저장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들은 대체 인증 수단은 전혀 제시하지 않고 “응하지 않을 거면 이용하지 마라”는 식으로 나온다.

강원도 홍천군에 있는 비발디파크 스키장은 작년 12월 회원 개개인의 손가락 혈관을 통해 신원을 확인하는 지정맥 방식을 새롭게 도입했다. 통상 12월부터 다음 해 2~3월까지 겨울 스키 시즌 동안 자유롭게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시즌권’ 구매자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인증 기기에 손바닥을 갖다대면, 적외선이 개개인마다 고유한 손가락 내부의 혈관 패턴을 읽어 회원 본인 여부를 확인한다. 이를 위해 올해 시즌권 구매자 전원은 자신의 손가락 생체정보를 스키장에 제공했다. 스키장 관계자는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으로 신원 확인을 하기 위한 것으로 필수 항목”이라고 했다.

이곳뿐만 아니라 하이원리조트, 용평리조트, 곤지암리조트 등 강원·경기 일대 다수의 스키장도 회원들에게 지정맥 인증을 요구하고 있다. 용평리조트 스키 시즌권을 이용하는 박모(29)씨는 “3년 전부터 시즌권을 살 때마다 매년 손가락 정보를 등록하고 있다”며 “스키장에 와서 매번 손 혈관을 인증해야만 리프트를 이용할 수 있게 시즌권 사용 방식이 바뀌었다”고 했다.

지문·지정맥 등 생체정보는 작년 8월부터 현행법상 엄격한 관리가 필요한 ‘민감 정보’로 분류돼 있다. 개인의 동의를 받거나 법적 근거가 있어야만 수집이 가능하다. 문제는 많은 상업시설이 개인 동의를 받기는 하지만, 이에 응하지 않으면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반강제’ 식으로 운영한다는 점이다. 대학 기숙사, 아파트 등 입주시설에서도 이런 식으로 생체정보를 요구하는 곳이 많다.

서울대 기숙사에 거주하는 대학생 김모(21)씨도 3년째 손등 혈관 인식을 통해 기숙사에 출입하고 있다. 김씨는 “입주 시 혈관 등록을 해야 기숙사 출입이 가능하다고 해 별생각 없이 동의했다”며 “출입 카드를 잃어버릴 일이 없어 편리한 점도 있지만 날이 추울 때나 음주 시에는 인증이 안 되는 등 불편한 점도 있다”고 했다. 전라남도, 광주광역시가 서울에서 운영 중인 지역 학사 ‘남도학숙’도 출입을 위해 지문 등록을 요구한다. 서울 중구 회현동에 있는 한 주상복합아파트도 신규 입주자에게 지문 정보를 요구하고 있다. 이 아파트에 거주하는 직장인 A(37)씨는 “출입을 해야 하니 지문을 등록하긴 했지만, 대체 어디서 어떻게 지문을 보관하고 관리하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민간 시설에서 관리하는 만큼 정보 유출 우려도 크다. 보안 전문가인 임종인 고려대 정보대학원 교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생체정보 활용을 멈출 수는 없겠지만, 기업은 생체정보의 과도한 수집을 자제하고 소비자가 선택권을 가질 수 있도록 여러 식별 수단을 제공하는 동시에 자발적 동의를 받아야 한다”며 “소비자들도 무분별한 생체정보 제공에 경각심을 갖고 자신의 정보에 대한 ‘1차 통제권’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생체인식 기술과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의 몸이 비밀번호인 시대가 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개인 정보를 지키기 더 어려운 시대가 왔다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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