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스포츠 덮친 '학폭 미투' 후폭풍

하경헌 기자 2021. 2. 21.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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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남 배구 이어 야구로 번져
한화 "구단의 자체 판단 유보"
지도자·선수 과거 사건 소환
축구 등 시즌 준비 종목 긴장감

[경향신문]

지난해 대한민국 프로스포츠는 ‘코로나19’라는 뜻밖의 변수로 홍역을 앓았다. 각 종목의 리그 정상화까지 아직 시간이 필요한 가운데 ‘학교폭력’이 또 다른 문제로 불거졌다.

지난 8일 프로배구 여자부 흥국생명의 이다영·재영 쌍둥이 자매에 대한 폭로로 시작된 사태는 불과 2주도 되지 않아 프로배구 여자부는 물론 남자부로도 ‘학교폭력 미투(나도 고발한다)’의 형태로 퍼져갔다.

이다영·재영에게는 무기한 리그 출장정지는 물론 국가대표 출전자격도 박탈됐다. 남자부에서는 OK금융그룹 주력 선수 송명근과 심경섭이 학교폭력 혐의를 인정하고 남은 시즌 출장을 포기했다.

하지만 이른바 ‘학폭 미투’의 기세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여자부 한 구단 선수와 남자부 삼성화재 박상하에 대한 폭로에 이어 프로야구에까지 번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난 19일 자신이 KBO리그 한화의 한 선수로부터 집단구타를 당했다고 주장한 피해자가 나왔다. 배구 선수들에 대한 폭로가 이어졌던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올린 그는 초등학교 시절 A선수에게 집단구타를 당했다며 그의 실명까지 올려 피해를 주장했다.

한화 구단은 21일 공식입장을 내고 구단 자체 판단을 유보한다고 밝혔다. 한화는 “선수가 결백을 증명하고 싶다는 일관된 입장과 함께 ‘최종적으로는 법적대응까지 염두에 두고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전해왔다”고 알렸다. 해당 선수는 관련 폭로 글이 나온 이후 “기억이 나지 않고 모르는 이름”이라며 의혹을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선수는 21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스프링캠프 훈련에 정상 참가한 것으로 파악됐다.

연이은 학폭 관련 폭로로 높아진 경각심은 과거 폭행사건을 소환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프로배구 남자부 KB손해보험 이상열 감독은 지난 20일 잔여 시즌 출장 포기를 밝혔다. 12년 전인 2009년 국가대표 코치시절 박철우(현 한국전력)에게 했던 폭행사건이 최근 이 감독의 인터뷰로 인해 재조명되면서 피해자 박철우를 격분하게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폭 미투’의 양상은 선수끼리의 폭행을 비롯해 과거 지도자와 선수 사이에 있었던 폭행사건 등 전방위로 그 범위를 넓힐 가능성이 커졌다. 프로야구뿐 아니라 다른 종목에서도 연이은 폭로가 나올 수 있음을 예감하게 하고 있다.

현재 전지훈련 중인 프로야구와 프로축구 각 구단들은 추후 있을지 모르는 학폭 관련 폭로를 예의주시하며 지켜보고 있다.

2018년부터 공론화되기 시작한 성추행, 성폭력과 관련한 ‘미투’ 사태에서 보듯 관련 폭로는 한 번 나오기 시작하면 계속해서 뒤이은 폭로자를 부르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시즌이 진행 중인 농구와 배구뿐 아니라 개막을 앞두고 있는 야구와 축구에서 폭로가 나오고 이 범위가 이다영·재영의 사례에서 보듯 리그 인기를 이끌고 있는 유명선수로까지 확대된다면 해당 리그의 분위기 역시 장담할 수 없다.

익명을 요구한 한 배구단 관계자는 기자에게 “지금 시즌을 치르는 선수들뿐 아니라 시즌을 준비 중인 종목의 선수들도 훈련을 하고 있겠지만, 속으로는 자신의 과거를 계속 떠올리며 불안해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어디까지 양상이 퍼져나갈지 알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걱정”이라고 밝혔다. 한 야구단의 관계자는 “지난해는 코로나19에 의한 감염공포가 리그를 위협했다면 올해는 학교폭력 폭로에 의한 후폭풍이 리그의 가장 큰 걱정거리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하경헌 기자 azima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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