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금 폭로' 두바이 공주.. 7년 탈출계획, 자유 50km 앞에서 붙잡혔다
“아버지가 날 감금했다”고 폭로하는 동영상이 최근 공개된 두바이 최고권력자의 딸 사건이 국제 인권 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유엔 인권사무소가 3년 전 해외 탈출을 시도했다가 다시 체포돼 감금된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 왕족 셰이카 라티파 알막툼(36) 공주의 생존 여부를 UAE 측에 공식 문의했고, 미국도 이 사건에 대한 조사를 검토하고 있다. 두바이 왕실은 라티파가 “집에서 잘 보호받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지만 생존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증거는 공개하지 않았다.
앞서 BBC는 지난 16일(이하 현지 시각) 라티파가 아버지에 의해 감금돼 목숨을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동영상을 공개했다. 라티파는 “나는 감옥으로 개조된 대저택에 갇혀 있다”고 했다. 그녀는 UAE 부통령이며 두바이를 통치하는 최고권력자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72)의 딸이다.
◇ 왕실 “잘 지낸다”며 증거는 공개 안해… UN·美·인권단체도 조사
엘리자베스 트로셀 유엔 인권사무소 대변인은 19일화상 언론 브리핑에서 “라티파의 상황을 고려할 때 (UAE) 정부 반응이 먼저 나와야 한다고 요구했다”며 “우리는 (라티파의) 생존에 대한 증거 자료를 요구했다”고 했다.
앤서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BBC에 이 사건에 대해 조사할 방침을 밝혔다. 블링컨 장관은 “우리는 인권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며 “이 상황에 대해 면밀하게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
국제 인권단체들도 라티파 공주의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케네스 로스 휴먼라이츠워치 사무총장도 두바이 왕실의 성명에 대해 “변명”이라며 “라티파 공주에게 스스로 말할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누구도 왕실을 믿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라티파 공주 구명에 나선 프리라티파 운동(The FreeLatifa campaign)도 두바이 왕실의 입장을 신뢰할 수 없다며 두바이 당국이 라티파 공주에게 고문과 약물을 사용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프리라티파는 성명에서 “가장 긴급한 것은 유엔의 독립적인 조사팀이 두바이로 가 즉시 라티파를 만나야 한다는 것”이라며 “라티파는 즉시 그녀가 원하는 나라로 보내져 안전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했다.
두바이 왕실 측은 앞서 주영국 UAE 대사관을 통해 낸 성명에서 “언론에 보도된 내용이 실제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면서도 “라티파 공주의 안전을 걱정하는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대사관 측은 “그녀의 가족은 공주가 가족과 전문 의료진의 지원을 받으며 집에 잘 있다고 확인했다”며 “상태가 좋아지고 있으며 적절한 시기에 공적인 삶으로 복귀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라티파 공주는 지난 2018년 2월 탈출을 시도하다 붙잡혀 UAE로 송환됐다. 이 사건은 그녀가 2019년 감금 상황에서 화장실에서 몰래 촬영해 보낸 동영상을 최근 공개하면서 3년 만에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이 영상에서 라티파는 “나는 지금 감옥으로 개조된 대저택에 갇혀 있다”며 도움을 호소했다. 또 3년 전 탈출을 시도했다 붙잡혔을 당시 진정제를 맞고 의식을 잃었다고 밝혔다.
◇ 7년 계획 탈출, 제트스키까지 동원… 50km 앞두고 특수부대에 막혀
이번 공개된 영상은 라티파가 두바이로 송환된 지 약 1년여 만인 2019년 4월 촬영된 것으로, 라티파의 탈출을 도왔던 개인 무술 강사 티아나 자우하이넨의 제보로 공개됐다. 이 영상과 자우하이넨의 2019년 인터뷰를 종합하면 라티파의 탈출 시도는 첩보영화를 방불케 했다.
라티파는 2018년 2월 “아버지가 내 자유를 억압한다. 차라리 햄버거 패티를 굽는 삶을 살겠다”며 미국으로 탈출을 감행했다. 하지만 인도양에서 두바이 특수부대원들에게 붙잡혀 본국 송환됐다. 이후 3개월간 알-아위르 중앙 교도소에 수감됐다가 한 별장으로 옮겨져 감금생활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라티파가 처음 탈출을 시도한 건 16살이던 2002년이었다. 하지만 오만과의 국경에서 붙잡혀 3년 6개월간 수감돼 구타와 고문을 당했다. 당시 구타하던 남성들은 ‘널 죽을 때까지 때리라고 네 아버지가 시켰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후 2011년 한 프랑스 사업가와 접촉한 후, 자우하이넨의 도움을 받아 7년간 탈출을 계획했다.
라티파와 자우하이넨은 9개월 정도 탈출 준비를 한 뒤 2018년 2월 24일 두바이를 떠났다. 추적을 뿌리치기 위해 일부러 자주 가던 카페에서 아침 식사를 한 뒤 휴대전화를 놓고 나왔다. 라티파는 ‘아바야’(얼굴과 손발을 제외한 전신을 가리는 이슬람권의 여성 복식)도 벗었다. 둘은 오만까지 자동차를 타고 가는 길에 라티파가 자동차 조수석에 처음 앉아본 것을 기념하면서 ‘셀피’도 찍었다.
오만의 수도인 무스카트의 해안으로부터 26km 떨어진 곳에서 작은 보트를 탔다. 그곳에서 탈출을 돕기로 한 프랑스 사업가를 만났고, 그가 모는 제트스키로 갈아타 필리핀 선원들이 대기하고 있는 요트까지 24km를 더 갔다. 자우하이넨은 당시 둘 다 조급하고 흥분한 상태인 데다, 2m에 이르는 거친 파도가 치는 바람에 제트스키에서 자꾸만 바다로 떨어졌다고 회상했다.
그로부터 8일이 지난 3월 4일, 인도 서부 해안에서 특수부대가 요트에 난입했다. 인도 해안에서 불과 30마일(48km) 떨어진 곳이었다. 당시 요트 객실에서 비명과 총소리가 나자, 라티파와 자우하이넨은 화장실에 틀어박혀 서로를 껴안았다. 자우하이넨은 그때 라티파가 ‘오 신이시여, 그들이 저를 잡으러 왔군요’라고 반복해서 말했다고 했다. 화장실이 연막탄의 연기로 가득 차는 바람에 둘은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갑판 위에는 총구를 겨눈 특수부대원들이 있었다고 한다.
라티파는 그들에게 끌려가면서 비명을 지르고 발길질을 했다. 자우하이넨이 기억하는 라티파의 마지막 말은 “두바이로 다시 데려갈 바에 여기서 쏴라”라는 것이었다.
라티파는 이후 인도 군함으로 옮겨졌다고 했다. 그는 “특수부대원들이 복도를 지나 4~5명의 장군들이 있는 큰 방으로 데려갔다”고 했다. 라티파는 “나는 반복해서 아랍어로 ‘내 이름은 라티파 알 막툼’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들에게 “두바이는 가고싶지 않아요. 망명을 하고 싶어요. 공해상에 있었으니 보내줘야죠”라고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한 특공대원이 자신을 끌고갔다고 했다.
라티파는 “그 남자가 나를 잡고 일으켰다”며 “난 발로 차고 저항했다”고 했다. 이어 “그는 나보다 훨씬 컸다. 그가 소매를 걷어올리는 게 보이자 나는 힘을 쥐어짜 그를 깨물었고 머리를 흔들었다. 그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고 했다.
라티파는 그러고선 제트기에 실려가던 중 갑자기 진정제를 맞은듯 몽롱해졌고, 기절했다가 깨어보니 두바이로 돌아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 순간 정말 슬펐다”며 “자유를 얻기 위해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해온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라티파는 영상에서 “이후로 나는 여기 독방에 혼자 갇혀 있다”며 “의학적인 도움도 받지 못하고, 혐의도 재판도 없이 감금됐다”고 했다.
자우하이넨은 요트 선원들과 UAE로 잡혀가 2주 동안 억류됐다가 석방된 후 라티파 구명 운동을 시작했다.
◇ 두바이 변신의 주역이지만 여성엔 억압적… “여행도 공부도 못해”
아버지 알막툼은 석유 자원이 거의 없는 어촌 마을 두바이를 중동의 금융·관광 허브로 탈바꿈한 주역이다. 그러나 인권운동가들은 그가 정치적 반대를 용인하지 않고, 여성을 억압·차별하며 가족들, 특히 부인들과 딸들을 탄압한다고 지적한다.
지난 2019년 그의 여섯 번째 부인인 하야 빈트 알 후세인 왕비가 두 자녀와 영국으로 탈출해 잉글랜드 고등법원에 신변보호를 요청한 일도 있었다. 법원은 알막툼이 “두 젊은 여성(라티파와 하야 왕비)의 자유를 빼앗았다”고 판단했다.
라티파가 탈출을 결심한 이유도 억압적인 환경 때문이다. 그는 2018년 탈출 시도 직전 녹화한 영상에서 “나는 운전을 할 수도 없고, 여행하거나 두바이를 떠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2000년 이후로 출국한 적이 없다”며 “이동하는 시간, 장소, 먹는 것까지 기록되는 ‘감시받는 삶’을 살았다”고 했다. 또 “여자라는 이유로 중학생 수준 이상 교육은 받지 못했다”며 “여행이든 공부든 뭐든 평범하게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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