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눌렀다 '아차!'..유튜브·카톡·알약 초기화면 "무례하다"

김재섭 2021. 2. 21. 20: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자동으로 뜨는 업데이트 창
'확인'만 있고 '취소'는 없어
무료 끝나면 자동 유료 전환
강요하는 것같아 불쾌하지만
안 쓸 수도 없는 도구라 참아
자기결정권 침해 소지 높은데
업체들 "공짜로 쓰면서" 당당
생활 서비스다운 관행 세워야
생활의 필수 도구가 된 소셜미디어들의 마케팅 수법에 불쾌감을 느끼는 이용자들이 많다.

“카카오톡 업데이트 때마다 무례하다는 느낌이 든다.”

누리꾼 김아무개(47·서울 영등포구 국제금융로)씨의 하소연이다. 최근 카카오가 ‘버그 수정 및 안정성 개선’을 이유로 카카오톡을 업데이트할 때도 그랬단다. 개인용컴퓨터(PC)를 켜자 카카오톡이 자동으로 업데이트되기 시작하더니 ‘다음을 시작 페이지로 설정’ 난을 담은 ‘업데이트 내용’ 창이 뜨는데, 이미 클릭 표시가 돼 있다. 그는 “클릭 표시 옆에는 노란색으로 강조된 ‘확인’ 버튼만 있을 뿐 ‘거부’나 ‘업데이트 취소’ 등 다른 선택 버튼은 없었다. 다음을 시작 페이지로 설정하라고 강요받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고 했다.

한겨레 사람과디지털연구소가 노트북에 카카오톡 프로그램을 깔아 업데이트 과정을 경험해봤다. 김씨 말대로 ‘다음을 시작 페이지로 설정’에 클릭 표시가 돼 있으면서 ‘확인’ 버튼만 달린 난이 담긴 창이 뜬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짙은 회색으로 돼 있는 창의 머리띠 속에 희미하게 ‘X’ 모양의 버튼이 들어 있다. 이 부분을 클릭하자 창이 사라진다.

카카오톡의 업데이트 화면. 취소 버튼이 없다.

“카카오가 카카오톡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넷 접속 초기 화면 ‘낚시질’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카카오톡 이용자들의 경험을 들어보면, ‘미끼를 무는’(무심코 확인 버튼을 클릭하는) 순간 이용자가 인터넷 접속 초기 화면을 다음 포털로 변경하는 것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된다. 이후 인터넷에 접속하면 다음 포털 첫 화면이 뜬다.

또 다른 누리꾼 이아무개(53·서울 강동구 암사동)씨는 백신 프로그램 ‘알약’을 깔 때 비슷한 경험을 했다. 노트북에 알약 프로그램을 설치한 뒤부터 인터넷 접속 초기 화면이 ‘줌’으로 바뀌었다. 프로그램 설치 과정에 ‘줌을 시작 페이지로 설정’ 코너가 있었는데, 그냥 확인 버튼을 클릭한 결과였다. 더욱이 윈도 운영체제 설정 난에서 초기 화면 주소를 바꿔도 이전 상태로 돌려지지 않았다. 컴퓨터를 잘 다룬다는 지인에게 도움을 청해도 소용없었다. 인터넷에 접속할 때마다 줌을 거쳐 원하는 누리집으로 가야 하는 불편함은 노트북을 새것으로 교체할 때까지 1년 넘게 이어졌다.

누리꾼들은 유튜브 이용 과정에서도 ‘낚시질을 당하는’ 경험을 하고 있다고 호소한다. 유튜브에 접속하면 ‘나중에’와 ‘1개월 무료체험’ 가운데 한쪽을 선택하라고 하는 창이 뜨는데, 유독 ‘1개월 무료체험’ 버튼이 강조돼 있다. 프리미엄 유튜브는 광고를 보지 않는 대신 월정액요금을 내는 서비스다. ‘나중에’를 선택하면 다음 이용 때 같은 창이 또 뜬다.

이용자 쪽에서는 사실상 1개월 무료체험을 선택할 때까지 선택을 강요받는 셈이다. 창이 자꾸 뜨는 게 ‘귀찮아서’ 또는 ‘얼떨결에’ 1개월 무료체험을 선택하는 순간 사실상 유료 가입자가 된다. 요금은 무료체험 기간이 끝나는 시점부터 부과된다. 이를 막으려면 따로 해지 신청을 해야 한다. 인터넷 게시판 등에는 ‘무료체험이라고 해서 클릭했는데 요금이 나왔다’는 내용의 이용자 불만과 함께 무료체험 해지를 안내하는 글이 잇따르고 있다.

해당 사업자들은 이를 “마케팅 행위”로 포장한다. 실제로 ‘낚시질’과 ‘눈속임’ 성과만큼 사업자들은 수익과 이용자 데이터 수집 기회가 많아진다. 한 포털업체 관계자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이용자를 늘리기 위해 애쓰는 모습으로 봐 달라”고 말했다. 다른 인터넷 회사 홍보임원은 “몰랐는데, 회사에서 시켰을 리는 없고, 해당 아이디어를 낸 직원을 찾아 상 줘야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체 직원은 “프로그램이나 서비스를 공짜로 쓰게 해주는데, 그 정도(낚시질)는 감수해주는 게 예의 아니냐”고 일축했다.

유튜브 프리미엄 화면. ‘거절’ 버튼이 없다.

이용자가 인터넷 게시판 등에 올린 불만 호소 글이나 이를 전하는 기사에 ‘서비스를 공짜로 이용하는데 그 정도 마케팅은 감수해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내용의 댓글이 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대다수 누리꾼은 ‘눈속임이어서는 곤란하다’ ‘이용자를 우습게 보는 행태다’ 등의 반응을 보인다. 한 누리꾼은 인터넷 게시판 댓글에서 “이용자가 아닌 ‘눈먼 물고기’가 된 기분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차라리 서비스를 공짜로 쓰게 해드리는 대신 인터넷 접속 초기 화면을 내 달라고 공손하게 요청하면 ‘옜다!’ 하고 기꺼이 인심 한번 쓸 용의가 있다”라고 썼다.

‘낚시질’ 행위를 두고는 법적으로 ‘사기’ 내지 ‘끼워팔기’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네이버는 온라인쇼핑몰에 간편결제 기능을 도입하면서 자사 서비스를 먼저 노출했다가 끼워팔기와 경쟁업체 차별·배제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는데, 낚시질은 이보다도 질이 나쁘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정부출연연구기관 연구원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아이티(IT) 서비스가 산업 및 사업자 육성에 무게를 두고 발전하다 보니 이용자를 무례하게 대하는 관행이 쌓여 왔고, 사회적으로도 이를 관대하게 보는 경향이 생겼다. 유튜브와 카카오톡 등이 국민 생활 속 서비스로 자리 잡은 뒤에도 이런 관행을 버리지 못해 이용자 불만을 키우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누리꾼들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개인정보 수집·활용·제공에 대한 동의를 ‘옵트아웃’(‘동의’를 클릭한 상태로 설정해두고 동의하지 않으면 설정을 바꾸게 하는) 방식으로 받는 것도 눈속임 행위로 간주한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는 “이용자들의 프라이버시 리터러시(이해력)이 떨어지는 점을 노리는 것이다. 이용자들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재섭 선임기자 겸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jskim@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