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 지키며 '조국과 민족' 뜨겁게 사랑하며 멋지게 사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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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선친 문익환 목사님과 고 정경모 선생님은, 널리 알려진 대로 1989년 이른바 '방북 사건'의 주역이었습니다.
해방 직전 게이오 의대 유학 시절 인연을 맺은 하숙집의 딸이 5년이 넘도록, 기약없이 자신을 기다려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감동했지만, 일본인이란 이유로 결혼을 주저하는 정 선생님에게 문 목사는 용기를 주고 직접 결혼식 주례를 해주며 새 가정을 축복해주셨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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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친 문익환 목사와 ‘운명적인 역사의 동지’
“통역·주례·방북…하느님 예비한 섭리”
문 목사·유원호 선생과 남북 활보 하시길
저의 선친 문익환 목사님과 고 정경모 선생님은, 널리 알려진 대로 1989년 이른바 ‘방북 사건’의 주역이었습니다. 더불어 ‘운명적인 역사의 동지’였습니다.
두 분이 처음 만난 것은 1950년 한국전쟁 와중이었습니다. 미국 유학을 하고 있던 두 사람은 조국의 전쟁 소식에 유엔군에 지원하여 일본 도쿄에 있던 맥아더 사령부에서 함께 일하게 되었습니다. 판문점을 오가며 정전회담 통역을 하고, 문서들을 번역했으며 미군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쳤습니다. 해방 직전 게이오 의대 유학 시절 인연을 맺은 하숙집의 딸이 5년이 넘도록, 기약없이 자신을 기다려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감동했지만, 일본인이란 이유로 결혼을 주저하는 정 선생님에게 문 목사는 용기를 주고 직접 결혼식 주례를 해주며 새 가정을 축복해주셨다지요. 정 선생님이 한국에 머물던 1960년대 문 목사님이 그 동생분의 결혼식도 주례를 섰으니 ‘각별한 인연’이 아닐 수 없습니다.
1970년 정 선생님이 ‘정치적 망명’을 한 이후, 문 목사님은 한국에서 신학자이자 재야의 민주인사로 살아갈 동안 정 선생님은 일본에서 문필가로 자유분방하고 날카로운 필체로 한국의 문제를 파고들었으며 <씨알의 힘> 간행물을 출간했습니다.
긴 세월 각자의 삶을 살았음에도, 두 분이 서로를 믿고 역사적인 과업을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활동과 글을 통해서 지속적인 소통을 해온 덕분이었습니다. 정 선생님은 문 목사의 ‘옥중서신집’을 번역해 일본에서 출판하고 제자들에게 한글 교재로 소개했습니다. 문 목사는 정 선생님의 <찢겨진 산하>를 읽으며 ‘민족주의자 정경모’의 참모습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문 목사님은 1988년부터 ‘방북’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정 선생님으로부터 방북 의사를 타진하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정 선생님은 남과 북 어느 쪽에서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여운형 선생 추모 모임’을 도쿄에서 해마다 열어왔고, 이에 북한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을 지낸 몽양의 둘째딸 여연구 선생이 ‘감사 편지’를 보내면서 서로 교분을 나누게 되었다고 합니다. 정 선생님은 김일성 주석과 면담을 비롯한 방북 과정의 모든 준비를 진행했고, 이듬해 3월말 평양 도착 성명, ‘4·2 공동선언’의 초안도 작성했습니다.
훗날 정 선생님은 문 목사님을 두고 ‘한국전쟁 중에 만나 민족의 아픔을 함께하고 가정을 꾸미게 해주었으며, 김 주석을 만나 민족통일을 논의하게 된 것은 모두 하느님이 예비하신 섭리’라고 감회를 나눈곤 했습니다.
정 선생님은 그 흔한 ‘반성문’ 한 장 때문에 그렇게도 그리던 고국 땅을 끝내 밟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구름 위에 계신 여운형·김구·장준하 선생님은 만나셨겠지요? 평양에서 나란히 ‘선구자’를 불렀던 문 목사님과, 재작년 먼저 세상을 뜨신 유원호 선생님과도 만나 옛 생각 추억하며 평양거리, 서울거리를 활보하고 계시겠지요?
정 선생님은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키며 뜨겁게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며 멋있게 살다 가셨습니다. 선생님은 남기신 글들을 통해 저희 안에 살아 계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모님과 자손들께 위로를 드립니다. 하늘에서 편히 쉬십시오.
문영금/문익환통일의집 관장·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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