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 김봉진 이끈 50년전 사회환원.. 90세 기업인이 지켜온 '유일한 정신'

김용식 2021. 2. 21.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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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간 '유일한 정신' 지킨 연만희 유한양행 고문 
1961년 평사원→사장·회장·이사장·고문 역임
재산 사회환원, '기업은 사회 소유' 인식 덕분
제약주 과장 공시 "사회와 약속 저버린 것"
유한양행 60년만에 퇴직하는 연만희 고문은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내용으로 공시한다면 이는 사회와의 약속을 저버린 것”이라며 “상장하는 순간부터 내 회사 아니고 대주주도 한 사람의 주주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배우한 기자

“기업에서 얻은 이익은 기업을 키워준 사회에 환원해야 합니다.”

고 유일한 박사의 정신을 지난 50년간 묵묵히 지켜온 연만희(91) 유한양행 고문이 다음달 19일 ‘60년 직장생활’을 마치고 퇴임한다. 그는 “기업의 주인은 사회”라고 강조한 ‘유일한 정신’을 몸소 지켜왔다.

1926년 유한양행을 설립해 한국의 기업가 정신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키운 유일한 박사는 69년 회사를 자녀에게 승계하는 대신 전문경영인에게 넘겼다. 71년 타계 뒤에는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

부의 편법 대물림이 빈번한 오늘날 유일한 정신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김범수 카카오 의장과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의 기부 약속이 화제를 일으킬 만큼 우리 사회에는 아직 기부문화가 뿌리내리지 못했다.

18일 서울 대방동 유한양행 본사에서 만난 연 고문은 유일한 박사의 마지막 10년 간을 지근거리에서 보필한 인물이다. 61년 유한양행에 경력직 사원으로 입사한 그는 입사 1년 6개월 만에 총무과장으로 승진했고, 이후 사장과 회장, 공익법인 유한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96년 회장에서 물러난 뒤에도 20여년 간 고문으로 회사 곁을 지켰다.


유일한의 신념 “모두가 이해할 제도 갖춰야”

국내 상장기업 가운데 경영권을 가족 아닌 전문경영인에게 승계한 사례는 유한양행 외에 찾아보기 어렵다. 일찍이 이를 실천한 배경을 묻자 연 고문은 “기업의 소유주는 사회이다. 단지 그 관리를 개인이 할 뿐”이라는 유일한 박사의 어록을 들려줬다.

"기업과 개인의 정실(情實)을 엄격히 구별하는 것이 기업을 키우는 지름길이자 지키는 길"이라고 한 유 박사의 신념이 선진 경영시스템의 토대가 됐다는 뜻이다. “일본 출장을 수행할 당시 유 박사는 ‘귀국하면 (재직 중인) 자제와 일가 친척을 모두 내보내겠다’고 하셨습니다. 능력이 있는데도 친지라는 이유로 구태여 내보낼 이유가 있냐고 물으니 ‘묵묵히 일하는 사람을 적극 활용하는 시스템을 갖추려면 불가피하다’며 뜻을 굽히지 않으셨습니다.”

유 박사는 줄곧 연 고문에게 ‘여기엔 남의 두뇌를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 묻혀 있다’고 쓰인 카네기의 묘비명을 자주 인용하며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제도를 갖춰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연만희 고문은 “유한양행도 이윤추구를 중요시하는 기업이지만, 공익적인 이윤배분이 가능한 지분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기업과 차별화된다”고 강조했다. 배우한 기자

국내 최초로 종업원 지주제를 실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1936년 개인회사를 주식회사로 전환한 유일한 박사는 39년 자신의 주식 52%를 직원에게 무상 배부했다. 62년 제약업계 최초로 기업공개를 했을 때는 주당 600원을 받을 수 있는데도 주당 100원에 공모를 시작했다.

“기업은 사회의 것이므로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기업 공개를 했다”는 게 이유였다. 연 고문은 “유한양행도 이윤추구를 중시하는 기업이지만, 공익적인 이윤배분이 가능한 지분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기업과 차별화된다”고 말했다. 그는 “최대주주인 유한재단, 유한학원 등에 유한양행의 이윤을 배당함으로써 사회에 환원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 직장에서 60년 '우여곡절'

60년의 직장 생활은 숱한 기억을 남겼다. 연 고문은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를 묻자 외환위기 시절을 먼저 떠올렸다. 당시 유한양행은 미국 킴벌리클라크와 4대 6으로 합작회사 유한킴벌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외환위기를 맞아 주식의 10%를 킴벌리클라크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지분 비율이 10% 줄어드는 것에 반발도 심했지만, 약국 도매상으로부터 받은 어음만으로 닥친 현금 부족을 이겨내기 어려웠다. 유한양행은 이 결정을 통해 400억원 상당의 미국 달러를 확보해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연 고문은 "당시 지분매각 결정과 이를 통한 현금 보유는 2000년대 유한양행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자부한다"고 회상했다.

유한양행이 1등 제약사로 자리매김한 데에는 ‘후버댐식 경영’과 같은 장기적 안목이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허버트 후버 제31대 대통령이 대공황 당시 후버댐 건설로 차기 선거에서 고배를 마셨으나, 이후 후버댐은 뉴딜정책의 상징이 됐다.

연 고문은 “전문경영인에게는 후버댐식 경영이 필요하다”며 “전문경영인은 단기 실적에 급급해 회사의 장기이익을 등한시하는 함정에 빠지기 쉬운데, 단기이익이나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말고 장기적 안목으로 미래상을 제시해야 올바른 경영인”이라고 말했다.

이런 철학을 지키기 위해 연 고문은 재임 시절 대표이사의 임기를 6년으로 설정하고, 대표직에서 물러나기 1년 전 다음 대표이사를 선임한다는 인사원칙을 확립했다. “유한양행 임원은 중임까지밖에 못합니다. 임원 임기가 3년인데 저는 부사장 1년, 사장을 연임해서 5년했습니다. 도합 6년이지요. 재단에서 한번 더 하라고 했지만 삼기 연임을 하면 무리가 오고 잡음이 생길까 봐 고사했습니다. 조직은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젊어야 합니다.”


제약ㆍ바이오주 과열... ‘오너’ 아닌 ‘주주 중 한 사람’ 인식 필요

코로나19로 근래 제약ㆍ바이오주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임상시험 결과를 왜곡해 주가를 띄우는 문제가 잦아지는 데 대해 그는 우려를 표했다.

‘정직과 신뢰’를 최우선 가치로 여겨온 연 고문은 “제약사들이 ‘고도의 전략’보다 ‘정도 경영’을 실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내용으로 공시한다면 이는 사회와의 약속을 저버린 것입니다. 상장하는 순간부터 내 회사가 아니고, 따라서 ‘오너’라는 말에도 어폐가 있습니다. 대주주도 한 사람의 주주일 뿐입니다.”

61년간 몸 담은 회사를 떠나는 소회를 묻자 연 고문은 “여기는 내 일생을 바친 곳이고, 유한이 있기에 오늘의 내가 있다”고 말했다. “내 삶이 유한양행 그 자체입니다. 한 회사에 60년 넘게 근무할 수 있었던 건 수많은 후배들의 도움 덕분입니다.”


◆연만희 고문은

1930년 황해도 연백 태생으로 55년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61년 유한양행에 입사했다. 88년 대표이사 사장을, 93년 회장(명예직)을 역임했고 같은 해 한국상장회사협의회 회장을 맡았다. 90년 국가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97년에는 숭실대에서 명예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담 김용식 경제산업부장 jawohl@hankookilbo.com
정리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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