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나와 캔버스·물감의 한바탕 레슬링"
그림이 이끄는 대로 솔직하게
내면세계 화면에 밀어내듯 그려
2018년 서울 PKM갤리리 개인전 '추상본능'에서 만난 그는 실크스크린 도구 스퀴지를 들고 화면에 돌진해 분노와 고통을 표출한 연작 'Uncertain Emptiness(불확실한 공허)'를 펼쳤다. 검은색과 흰색, 갈색 아크릴 물감이 거칠고 어지럽게 휘몰아쳐진 그림들이었다.
3년이 흘러 같은 갤러리에서 펼친 개인전 '活氣(활기), vigor'에는 밝고 부드러운 추상화가 걸려 있다. '불확정적 여백(Uncertain Emptiness)'이란 제목을 붙인 작품들에서 붉은색과 노란색, 초록색이 활기찬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그동안 갱년기를 겪었다. 호르몬이 바뀌니까 마냥 저돌적으로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물감을 쳐바르고 마르기 전에 마음에 드는지 두고보다가 설득되면 멈춘다"고 말했다.
색에 대한 욕구도 차 올랐다. 그는 "색은 천의 자원인데 안 쓸 이유가 없다. 색이 주는 감흥들을 무작위로 쓰면서 모험하는게 즐겁다"고 털어놨다.
"물감을 바를 때 느낌이 매번 달라요. 그 과정 속에서 상상할 수 없었던 장면이 펼쳐지죠. 결과물을 예측하지 못해 묘미를 느낍니다."
일단 열린 자세로 붓을 들면 그림이 그를 이끈다고 믿는다. 멈출 때도 알려준다.
"작업을 하다보면 그림이 저를 리드한다고 생각되는 지점이 있어요. 무엇이든지 수용할 태세가 되어 있으면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멈추는 지점도 그림이 알려줘요. 추상이 막막할 수 있는데 어디서 끝을 내느냐 종료 시점이 중요하죠. 그림을 그리다 보면 감으로 알게 되는 지점이 있어요."
그는 결과물이 어떻게 될 지 조바심을 내지 않고 정면돌파 한다. 물감이 흘러내리는 오류도 다 수용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작품 제목이 왜 '불확정적 여백'인지 수긍할 수 있다. 그는 "불확정적 여백이 주는 상상력, 무엇인가 아직 오지 않은 것, 미래에 내가 보고 싶은 어떤 풍경이나 장면 의미로 제목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서울 연희동 작업실과 집을 오가는 평범한 일상이지만 그림에 감정을 쏟아붓는게 좋다. 하루하루가 선물 같다고 한다.
"사회적 큰 이슈를 고민하지만 정작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할 때 열패감이 느껴져요. 하지만 모든 감각을 열어놓고 내 자신에 집중해서 감정의 밀도를 올리는 그림 작업을 할 때 행복해요. 그림은 저를 살리는 행위에요."
박경미 PKM갤러리 대표는 "해설적 작업이 아니고 회화의 근원인 붓질을 가지고 작업을 일으켜나가며 좋은 에너지를 전달하는 작가"라며 "가장 기본 요소만 갖고 추구하는 결과물들이 어떤 공감을 줄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시는 3월 20일까지.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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