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금리 오르지만, 증시 비관할 때 아니다
1월 하순까지 숨 가쁘게 오르던 국내 증시가 이후 한 달 가까이 정체 상태에 빠져 있다. 코스피는 지난 1월25일 3200포인트를 넘어선 후 그보다 낮은 3100포인트를 중심으로 오르내림을 반복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우리 증시가 정체된 후에도 한 달 가까이 계속 오르던 미국 등 주요국 증시 역시 조금은 힘을 잃은 모습이다.
글로벌 증시가 조정 국면에 들어선 데는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단 경기 회복과 기업 이익 증가에 대한 예상을 반영해 주가가 이미 크게 올랐다는 점 자체가 이유일 것이다. 작년 4분기 이후 고점까지 주가 상승률은 코스피가 37%, 다른 주요 증시도 20% 내외였다. 이미 주가가 오른 상황에서 지금 예상보다 더 빠르고 크게 기업 실적이 좋아지기 어렵다면 주식을 팔아 이익을 실현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근에는 시장금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빨리 오르고 있다는 점도 증시 조정의 주된 이유인 것 같다. 시장금리의 대표 격인 10년만기 미국 국채금리는 작년 말 0.9%에서 1.3%까지 올랐고, 30년만기 국채금리는 2%를 넘어섰다. 작년 코로나19 사태로 정책금리를 내리기 이전인 2월 수준으로 되돌아간 상태다. 이보다는 덜하지만 우리나라 10년만기 국고채금리도 작년 말 1.7%에서 1.85%로 올라가 있다.
금리 상승은 여러 경로를 통해 증시에 부담을 준다. 기업 입장에서 금리 상승은 타인 자본 비용의 증가를 의미하며, 투자자 입장에서 금리 상승은 무위험 자산의 수익이 높아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각종 서베이에 따르면 작년과 올해 주식 비중을 늘린 투자자 중 많은 이들이 저금리를 이유로 들고 있다. 실제로 배당수익률보다도 크게 낮은 예금금리를 견디긴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기업의 부담 증가와 자금 이동 가능성보다는 시장금리 상승이 정책금리 인상의 전조가 아닐까라는 우려가 증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들어 경기 회복 신호가 뚜렷해지는 가운데 원유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서, 미국 연준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의 초저금리와 유동성 공급정책 기조에 변화가 나타날 것이란 시각이 늘고 있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2008년과 2009년에는 워낙 크게 떨어졌던 주가가 제자리를 찾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금리 상승이 주가 오름세에 별 영향을 못 미쳤는데, 2010년과 2011년에는 높아진 금리와 함께 주가가 각각 16%, 19%나 하락했고, 떨어지기 이전 수준을 회복할 때까지 1~2분기나 걸렸던 것이다. 특히 2011년에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3.8%까지 치솟아 금리와 증시에 부담을 줬다. 지금 시장이 걱정하는 현상이 나타났던 것이다.
물론 이 당시 주가 하락은 물가와 금리 상승 압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외에 남유럽 재정위기와 미국 신용등급 강등이라는 큰 사건들이 동시에 영향을 줬었다. 하지만 지금도 시장금리 상승의 이면에 각국의 정부부채 증가가 숨어 있다고 보면, 그 당시만큼은 아니어도 생각보다 길고 큰 조정이 나타날 수 있다는 시장 일각의 우려는 자연스럽다.
다만 작용과 반작용, 즉 이러한 증시 조정은 이후 오히려 시장금리의 하락과 완화적 통화정책의 장기화로 이어졌다는 점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결국 높은 물가와 재정 부담에 따른 금리 상승이 경제와 증시에 단기적인 충격을 줬지만, 반대로 느리게 회복되는 경제 상황 하에서 충격을 견디기 어려운 정부와 중앙은행은 다시 완화적인 정책을 쓸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증시를 재차 끌어 올렸던 것이다. 특히 그 기간 중 소비와 생산 증가 속도는 느렸지만, 증시는 큰 폭으로 올랐다는 점도 중요하다.
당연히 2~3개월 동안 15% 넘는 주가 하락을 견디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개별 기업 주가는 그보다 더 떨어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높이 올랐던 성장주, 기술주의 주가는 금리 상승에 상대적으로 더 취약하기 때문에 시장보다 더 떨어질 수 있다. 그래서 지금은 주식보다는 현금 비중을 높여 놓는 것이 좋다. 하지만, 2010~2011년과 같은 큰 위험이 동반되지 않은 상황에서 주가 조정 폭과 기간이 그때보다 크고 길 것으로 판단되진 않는다. 금리 상승 추이를 주목하되 국내외 증시를 너무 부정적인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최석원 SK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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