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이 만든 2040 '스고모리 증시'.. 버블일까 축제일까 [글로벌 리포트]
증권투자 '도박'이라는 이미지 강하고
절반 넘는 계좌가 60대 이상이던 日증시
재택근무 늘어나면서 젊은층 뛰어들어
최근 닛케이 평균주가 3만엔 돌파
온라인 증권사 신규계좌 70%가 초심자
시장은 "버블이다" "적절하다" 엇갈려
【파이낸셜뉴스 도쿄=조은효 특파원】 도쿄 인근 요코하마시에 살고 있는 40대 남성 가장 하시모토씨(43, 회사원)는 최근 일본 증시가 급등하면서 약 10% 수익을 얻었다고 했다. 사실상 제로 금리인 일본에서 수익률 10%는 꽤 고수익이다. 그의 권유로, 서른 살인 남동생(회사원)도 지난해 주식 시장에 처음 뛰어들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확산) 선언에 일본의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 평균주가가 1만6000엔선(일본 주가지수 단위는 '엔')까지 급락했을 때 운좋게 저점을 찾아들어간 것이다. 하시모토씨는 "남동생 역시 약 1년만에 그 역시 10%대 수익률을 올렸다"고 귀띔해 줬다. 주식 투자 초심자 치고는 재미를 본 셈이다. 형제 모두 아직은 미국 주식 등 해외 주식 투자나 일본 국내주식이라도 단기투자 매매에는 신중한 편이다. 다만, 최근 닛케이 평균주가가 3만엔선을 돌파한 뒤로는 다소 불안한 기색이다. 그는 "버블(거품) 기미가 느껴진다"로 토로했다.
■코로나 시대가 만든 '스고모리 증시'
"버블 붕괴 순간이 왔다. 그리고 시장의 주역은 개인이다."
이 같은 날 선 경고가 속출하는 가운데 일본의 개인 투자자 시장에 최근 세대교체 바람이 불고 있다.
닛케이 평균주가 3만엔 시대(지난 2월 15일 돌파)가 열리며, 전체 개인 증권 계좌의 절반 이상이 60대 이상인 '초고령 일본 개미들' 사이로 일본의 2040대가 새로 유입되고 있는 것이다. 증권사들은 젊은 개미의 신규 계좌 개설에 쾌재를 지르고 있다. 외국인들의 놀이터가 된 도쿄증시를 개선할 기회라는 기대감도 엿보이고 있으나, 우려의 목소리 역시 만만치 않다. 1991년 버블 붕괴 이후 사실상 30년간 지속된 일본 개인 투자시장의 암흑기가 끝났다는 시각과 시장이 30년 만에 새로운 먹잇감을 찾고 있다는 경고가 교차하고 있는 상황이다.
"예금, 적금만 한다"만 한다고 할 정도로 보수적 투자로 소문난 일본의 개인들에게 지난 1년간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일본의 개인 투자자 집단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조용한 초고령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 투자자 자체는 1358만명(일본증권업협회, 2019년 기준)으로 결코 적지 않았으나, 이 가운데 연령이 확인되지 않은 240만명을 제외하면 60세 이상 비중이 절반인 53.9%나 된다. 1991년 거품 붕괴 당시 4050대였던 이들이 해를 거듭할수록, 60대에서 70대로, 70대에서 80대로 넘어가면서 '움직이지 않는 초고령 계좌'가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한 반면, 주식시장에 활력이 될 2040대 증권계좌 증가율은 매년 마이너스였다.
기본적으로 주식 투자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일본 사회의 시선 역시, 일본 개미들의 존재감을 한층 약화시켰다. 금융권에 종사하는 한 일본인(남성)은 "과거에는 증권회사 자체를 쇼켄야(증권가게)라고 얕잡아 부를 정도였다"며 "현재도 증권 투자라고 하면 갬블(도박)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대개는 주변 사람들에게 주식한다는 얘기는 잘 하지 않는 경향이 짙다"고 말했다. 인터뷰에 응한 하시모토씨 역시, "주식 투자 얘기는 회사 사람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거의 하지 않는다"고 했다.
'조용한 집단'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촉발된 재택근무 열풍이 일본 2040대의 주식 열풍으로 이어진 것이다. 일본 회사의 경우, 근무 중 주식투자 및 개인 스마트폰 사용 등을 엄격히 금지하는 곳들이 많은데, "재택근무 덕에 직장인들이 집 안에 틀어박혀 회사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주식에 열을 올렸다"는 것이다. 집안에 틀어박혀 소비한다는 뜻의 일본어 '스고모리'가 도쿄증시 변화의 한 축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증권업협회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여론조사(5000명 대상)에 따르면 2030대의 39%가 코로나 감염 확대 이후, "이 기회에 처음으로 주식에 투자했다"(7.1%) "주식투자액을 늘렸다"(32.0%)고 답했다.
■日온라인 증권사 신규계좌 70%는 '초심자'
이런 분위기는 다시 일본 증권업계 판도를 흔들었다. 스마트폰 기반 비대면 온라인 증권사들의 신규 증권계좌가 급증한 것이다.
온라인 기반 라쿠텐 증권은 이달 2일 발표한 결산자료에서 지난 1년간 신규 계좌가 전년 대비 35%증가한 133만개를 기록, 총 500만 계좌를 돌파했다고 밝혔다. 신규 계좌의 70%가 주식 초보자였으며, 30대 이하가 전체의 65%를 차지했다. 계좌잔고는 전년 대비 45%급증한 10조엔(약 105조원)이다. 122조엔(1280조원)인 일본 최대 증권사 노무라 증권에는 비할 바는 아니나, 이 같은 실적 자체가 최근 1~2년간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가히 폭발적 성장세라고 할 수 있다. 라쿠텐 측은 자사 유튜브 채널인 '토우시루'가 개설 3년 만인 지난해 말 2100만 페이지뷰(PV)를 기록했으며, 일본의 코로나 1차 확산기 때인 지난해 3월부터 가속페달을 밟았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온라인 증권사인 SBI역시 전년도에 약 40만건이었던 신규 계좌 개설 건수가 지난해 80만건으로 배로 급증했다. 스마트폰 기반 라인(LINE)증권도 서비스개시 1년 반 만에 50만 계좌를 돌파했다. 주된 고객층은 단연 2040세대였다. au카부콤 증권의 사이토 마사카쓰 사장은 최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개인 투자 확대가 닛케이 평균 주가지수 3만엔대 회복의 지지대가 됐다"고 설명했다.
■"버블인데…시장은 아직 파티 중"
개인의 유입세에도 일본 증권시장의 수혜자는 현재까지는 단연 기관과 외국인들이다. 도쿄증권거래소 자료에 따르면 일본 증시 외국인 비중은 1991년에는 불과 4.7%(4위)였으나 2019년 29.6%로 금융기관(29.5%, 2위)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반면 과거 20.4%였던 개인은 2019년 말 집계상 16.5%로 축소됐다. 지난해 개인 투자자들이 크게 유입됐다고는 하나, 외국인에 비하면 세력이 여전히 취약한 게 사실이다. 일본정부와 일본은행(BOJ)의 인위적 부양정책의 산물, 이른바 '관제증시'라는 비아냥 속에 닛케이 지수를 30년 만에 3만엔대로 겨우 회복시켜놓고 보니, 외국인들의 주머니만 채울 뿐 일본 국민들은 주가 상승 잔치에서 소외됐다는 자조적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기형적 구조에 개인 투자자들이 유입되고 있는 것은 반색할 일이나 문제는 '타이밍'이다. 지난 15일 닛케이 평균주가가 3만엔을 돌파한 날, 일본 IT기업의 한 대표는 당일 결산 설명회에서 "주가가 고가를 갱신하는 것은 이상적인 일이지만, 시장 변동이 심하다. 장기적으로 접근해 달라"고 투자자들에게 '이례적' 주문을 내놨다. 교쿠토증권의 키쿠치 히로유키 회장은 닛케이에 "개인이 저축에서 투자로 눈을 뜨고 있다"고 언급하며, "거품의 한 중간에서는 아무도 그것이 거품이라고 눈치채지 못한다"고 경고했다.
우려의 목소리에도 시장은 여전히 축배를 더 즐길 수 있을 것이란 분위기다. 닛케이는 최근 시장 관계자 대상 긴급 설문 결과 현 주가 수준을 "거품이다"라고 보는 시각과 "적절하다"는 응답이 팽팽이 맞섰다며, 흥미로운 점은 '버블'이라고 답한 응답자들조차도 올해 주가 최고 전망치에 대해 3만엔~3만4000엔대에 베팅했다고 전했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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