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최소 100조원' 한일 해저터널 DJ·노무현도 추진했다?
[아이뉴스24 조석근 기자] 가덕도 신공항과 함께 '한일 해저터널'이 부산시장 보궐선거 국면을 달구고 있다. 지난 1일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번 보궐선거를 겨냥한 '뉴 부산 프로젝트' 핵심 공약으로 제시한 이후 논란이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친일 프레임'을 꺼내들며 국민의힘을 향한 비난을 쏟는 가운데 하태경 부산시당위원장, 성일종 비대위원 등 국민의힘 중진들이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때도 긍정적으로 검토했던 사안"이라며 논박하고 있다.
선거전이 한창인 부산은 더 뜨겁다. 여당과 시민단체들이 연일 한일 해저터널 관련 국민의힘과 소속 후보들을 비판하는 가운데 각종 여론조사는 한일 해저터널에 대한 부산시민의 여론도 찬반이 크게 엇갈린다고 짚고 있다. 지금 여당과 달리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말 해저터널에 찬성했을까. 지금 제1 야당의 선거 공약으로 문제는 없을까.
◆민주당 '뿌리' DJ, 노무현 긍정신호 보낸 건 맞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 민주당의 '정치적 뿌리'인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일 해저터널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낸 것은 사실이다. 우선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9월 일본을 방문해 모리 요시로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하면서 "한일간 해저터널이 생기면 훗카이도에서 유럽까지 연결되니 미래의 꿈으로 생각해볼 문제"라고 말했다.
모리 총리는 한 달 뒤 서울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기조연설에서 "한일 해저터널을 만들어 '아셈 철도'라고 이름을 붙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당시 ASEM 회의는 외환위기를 갓 극복한 김대중 정부가 각별히 공을 들인 외교무대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3년 2월 취임 직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와의 한일 정상회담에서 "한일간 해저터널을 만들어 일본과 한국, 러시아를 기차로 달릴 수 있게 된다면 경제적 의미뿐 아니라 한일이 더욱 가까워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바로 전년도 한일이 공동 개최한 월드컵을 거론하며 "양국간 하루 평균 1만명의 관광객이 오가는 등 경제교류 효과가 크다"며 노무현 대통룡의 해저터널 언급을 환영하기도 했다.
이들 두 대통령보다 한일 정상간 해저터널을 먼저 언급한 인물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다. 1990년 5월 방일 중 가이후 도시키 일본 총리에게 해저터널 건설을 제의했다. 이유는 뭘까. 노 전 대통령은 당시 남북 1차 고위급 회담을 앞두고 있었다.
이듬해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남북화해와 상호불가침, 대규모 경제협력이 수반된 남북교류 원칙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일 시점은 역사적인 남북 정상의 첫 만남, 6·15 정상회담 직후다. 남북기본합의서 이후 구체화된 한반도 종단철도, 중국 및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통해 유럽과 중앙아시아, 중국, 러시아, 한반도, 일본을 잇는 경제구상이 힘을 받던 시절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 이후는 개성공단 가동을 위한 남북간 논의가 본격화되던 시점이다. 한반도 평화와 경제협력을 위해 일본과의 관계개선 및 협조가 절실한 시기였다. 그렇다면 한일 해저터널은 실제로 이들 정부를 통해 추진됐을까.
◆실현되면 '인류사 최대' 토목공사, MB 정부도 고개 '절레'
그렇지 않다. 김대중 정부 집권 후반기인 2002년 6월부터 다음해 9월까지 교통개발연구원(현 교통연구원)과 철도기술연구원이 한일 해저터널 관련 연구를 수행한 결과 "사업 타당성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즉 막대한 비용에 비해 이익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가 해저터널을 언급한 지 불과 반년만이다.
이명박 정부도 한일 해저터널에 관심을 보인 것은 마찬가지다.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소속 허남식 부산시장은 부산 10대 과제로 한일 해저터널 건설을 포함시켰다. 경남 김해를 지역구로 둔 김정권 한나라당 의원은 2008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정정길 대통령 비서실장에 한일 해저터널 타당성 조사를 촉구해 긍정적 답변을 받아냈고 실제로 평가가 이뤄졌다. 그만큼 당시 부산지역 여권(국민의힘) 인사들의 숙원사업이었다.
그러나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가 교통연구원을 통해 검토한 결과 2011년 1월 "경제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결론을 내렸다. 비용대비편익비(B/C)가 당시 타당성 수준인 0.8에도 크게 못 미친다는 것이다. 안 하느니만 못한 사업이란 것이다.
그같은 결론에도 부산과 경남이 광역지자체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쏟았다. 성추행 사태로 이번 보궐선거의 계기를 제공한 오거돈 전 부산시장 재임 중이던 2019년 부산시의 연구용역 결과는 이전 정부들과 마찬가지로 드러났다. 당시 행정부시장을 역임했던 변성완 민주당 후보는 최근 경남 CBS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상황이나 경제성, 합리성 등 모든 부분에서 타당성이 없어 접은 사업"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노무현, 이명박, 현 부산시 모두 한일 해저터널에 "타당성이 없다"고 결론을 내린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천문학적인 비용 때문이다. 한일 해저터널은 부산을 포함한 동남권을 쓰시마섬, 이키섬을 거점으로 일본 남부 큐슈지역과 연결하자는 구상이다.
전체 길이 209~231km로 20세기 최대 토목공사로 불린 영국·프랑스간 유로터널(50.45km)의 4배가 넘는다. 부산 앞바다와 쓰시마섬 사이 대한해협 평균 수심은 230m다. 그 아래로 터널을 낸다는 것인데 유로터널의 평균 45m보다 압도적으로 깊다.
그 때문에 공사에 들어가는 비용이 최소 100조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부산시 보궐선거 최대 쟁점인 가덕도 신공항 예상비용의 10배가 넘는다는 얘기다. 해저터널 완공 예상기간은 15~20년이다. 지금처럼 한일 관계가 크게 악화될 경우 사업 자체가 표류할 수도 있다.
물론 이같은 비용과 예상기간도 정확한 추계가 아니다. 한일 해저터널 연구 및 조사는 1980년대 초부터 '한일(일한)터널연구회'라는 민간기구를 통해 이뤄졌다. 한일 양국이 공식적으로 추진한 사업이 아니다. 해저터널 노선과 건설공법, 터널 기능, 자금조달 방식 등에서 결정된 바가 없다.
주로 연구도 일본측 학자들 주도로 이뤄졌다. 현재까지 한국 동남권과 일본 큐슈를 잇는 해저터널 노선은 3가지다. 정작 일본측이 가장 선호하는 노선은 국내 연결 거점이 부산이 아닌 거제도다. 거제도를 통해 쓰시마섬 남부와 이키섬을 해저터널로 연결하고 이후 사가현 카라츠시까지 교량으로 연결하는 209km 노선이다. 부산과 카라츠를 연결하는 231km 노선보다 짧은 점이 장점인데 해저터널 구간은 더 길다.
전체 해저터널 구간 중 한국측의 쓰시마섬까지 대한해협 구간이 수심상 가장 난이도가 높은 공사로 꼽힌다. 바로 한국측이 담당할 공사 구간이다. 그 때문에 과거 노무현, 이명박 정부는 물론 부산시 차원의 타당성 조사 결과 비행기, 배를 이용한 물류 여객보다 효율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결론이 나왔다.
한일 해저터널을 주장하는 측은 한일 관계의 긴밀화, 유라시아 물류 허브를 겨냥한 대규모 인프라 투자 및 경제효과를 꼽는다. 경남발전연구원은 '한일해저터널 구상과 경남의 과제' 보고서를 통해 "일본측 주장대로 한국이 3분의 1을 부담해도 전체 100조~200조원의 공사비 중 약 30조~70조원을 부담해야 한다. 불확실한 해저터널 운영수익으로 막대한 재정부담을 만회하기 어렵고 항공, 항만, 물류 등 여러 국내 기간산업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반대측 논리를 정리했다.
조석근기자 mysun@inews24.com▶네이버 채널에서 '아이뉴스24'를 구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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