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한국적인 영화 '미나리', 세계에 통한 이유 [리뷰]
[경향신문]
지극히 가족적인, 어쩌면 지극히 한국적인 영화.
영화 <미나리>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미나리>의 배경은 미국 아칸소 주, 한국인 이민자 가족이 중심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냥 ‘한국 가족 이야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각자 최선을 다해 살다보니 싸우게 되고, 반목하고, 그 과정 속에서 가족의 의미를 찾아가게 되는 보통의 우리 이야기다.
다음달 3일 국내 개봉하는 영화 <미나리> 시사회가 지난 18일 서울 용산CGV에서 열렸다. <미나리>는 해외 영화제에서 현재까지 61관왕에 올랐다. 오스카(아카데미)의 바로미터로 불리는 미국영화연구소(AFI)에서 올해의 영화상을 수상했으며, 골든글로브·아카데미 등 미국 유력 영화제 수상 가능성도 높게 점쳐지고 있다.
영화 배경은 1980년대, 미국 아칸소주다. 한국인 이민자인 제이콥(스티븐 연)과 모니카(한예리) 부부, 딸 앤(노엘 케이트 조)과 아들 데이빗(앨런 김)은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아칸소주의 시골 지역으로 이주한다. 제이콥은 이민자들이 주로 하는 병아리 암수 감별 같은 허드렛일보다 좀 더 큰 규모의 일로 돈을 벌어 가족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그는 자신만의 경작지를 개척하려 한다. 반면 모니카는 심장이 약한 아들이 걱정돼 큰 병원이 있는 도시에서 살고 싶어한다. 그는 제이콥이 그동안 모아놓은 돈을 까먹으며 성공 가능성이 적은 농장 개척을 시도하는 것이 못미덥다.
모니카의 엄마인 순자(윤여정)는 손주들을 돌보기 위해 한국에서 건너온다. 내성적인 데이빗은 선이라고는 지키지 않는 한국 스타일의 할머니와 투닥거린다. 할머니에게서 나는 ‘한국 냄새’, 할머니가 가져온 쓴 보약, 할머니가 내뱉는 ‘염병’같은 한국식 욕이 제이콥에게는 낯설고 어색하다. 데이빗은 “할머니는 할머니 같지 않아요” “할머니한테서 ‘한국 냄새’ 나요”라고 쉴새없이 투덜대지만, 어느새 순자와 사이좋게 화투를 친다.
영화 배경이 되는 시대와 장소는 현재와 좀 떨어져 있지만, 영화는 너무나 보편적이라 별다른 설명 없이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가부장적인 모습이 답답할 때도 많지만 가족의 생계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짠하게 느껴지는 아버지, 생업에 쫓겨 늘 지쳐있다가도 자식들 일이라면 눈에 결기가 어리는 어머니, 손주라면 덮어놓고 1등으로 여기는 할머니. 그 옛날 우리가 늘 보면서 자라왔던 가족들 모습이다.
특히 순자의 말씨와 몸짓은 우리네 할머니들 모습을 너무나 잘 재현해낸다. 마치 할머니 품에서 느껴지던 냄새가 스크린 밖으로 느껴지는 것만 같다. 순자는 몸이 약한 데이빗을 “스트롱 보이”라고 부르며 은근슬쩍 데이빗을 추켜세워준다. 어느날 데이빗이 서랍을 열다가 발을 다치자, 순자는 데이빗의 상처를 치료해준 후 서랍을 혼내준다. “누가 그랬어, 저 서랍이 잘못했어? 에이 떼끼”라며 혼낸다. 순자는 생계에 지쳐 자주 다투는 부모를 보며 긴장해있던 데이빗의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미나리>는 정이삭 감독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 정 감독의 부모님은 미국에 이민을 왔으며, 정 감독은 아칸소 시골 마을의 작은 농장에서 자랐다. 그는 자신의 딸이 볼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에 <미나리>의 초기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자신이 딸 나이였을 때 겪었던 일들 80여 장면 정도를 떠올리며 써내려갔다고 한다.
배우들과의 협업은 영화를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초기 대본은 대부분 한국어였으나, 정 감독은 미국에서만 살아왔기 때문에 대사 대부분이 문어체였다. 정 감독은 배우들 의견을 들으며 대본을 더욱 사실적으로 다듬었다. 영화 속에서 데이빗이 아버지에게 혼나면서 귀여운 잔꾀를 부리는 장면이 있는데, 감독은 윤여정에게 이 상황에서 할머니가 손자에게 어떤 말을 할 것 같은지 물었다. 순자는 “네가 이겼다”라고 껄껄 웃으며 데이빗을 쓰다듬고 잽싸게 자리를 뜨는데, 이 장면 대사와 애드리브는 윤여정이 제안한 것이다.
해외 평단에게도 <미나리>의 보편성이 통한 것 같다. 영국 가디언지는 <미나리> 리뷰에서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과 <페어웰>에서는 문화적 충돌과 정체성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가족을 소재로 뒀으나, <미나리>의 이야기는 이와는 정반대다”라고 적었다. “<미나리>는 가족의 분투를 첫 번째로, 정체성 이야기를 두 번째로 뒀다. 이 때문에 <미나리>는 매우 일상적이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이야기다”라는 것이다. 가디언지는 리뷰에서 “미나리가 문화 충돌에 대해서 완전히 다루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를 핵심 주제로 다루지 않았기에 아칸소에 가본 적도 없고 한국어를 모르지만 영화가 와 닿았다(the film still spoke to me)”고 했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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