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고 약초 먹으면 백신 불필요? 탄자니아 '주체 방역'에 우려

정지섭 기자 2021. 2. 21.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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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배급 거부하고 국민들에게 전통의약품 복용 독려
작년 5월 이후 코로나 집계 중단
현지 미 대사관 "코로나 확진자 급증으로 의료위기 가능성"

동물의 왕국 세렝게티 평원과 킬리만자로산으로 유명한 동아프리카 탄자니아가 요즘 지구촌 코로나 퇴치작전의 고민거리로 떠올랐다. 대통령이 “신께 기도 열심히 기도하고, 약초를 열심히 먹으면 백신 없이도 코로나를 퇴치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독자노선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탄자니아의 이 같은 ‘주체방역’이 코로나 확산의 새로운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존 폼베 마구풀리 탄자니아 대통령이 지난해 7월 수도 도도마의 집권 CCM 당 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테워드로스 아드하눔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이례적으로 탄자니아를 콕 찝어 공개 비판했다. 그가 20일(현지 시각) 낸 성명은 최근 별세한 탄자니아 고위 인사에 대한 애도 메시지로 시작하지만, 곧이어 탄자니아의 코로나 무대응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지난 달 말 코로나 방역 가용 수단을 측정하고, 백신 접종에 대비하라고 탄자니아 당국에 촉구했고, 또 출입국자에 대한 코로나 확진 정보에 대한 공유도 독려했지만, 탄자니아의 코로나 방역 대책과 관련해 어떤 정보도 얻은게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은 매우 걱정스럽다”며 “거듭 요구하건대 탄자니아 당국은 코로나 정보를 공유해달라”고 했다. 그는 이어 “접경 국가를 방문하고 있는 일부 탄자니아인들 사이에서 확진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며 ”지금과 같은 치명적인 감염병이 창궐할 때에는 국가 기관은 어디에서든 국민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야 하고 WHO는 이들을 돕는다”고 했다. 탄자니아 정부가 이런 의무를 등한시하고 있다고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탄자니아의 보건정책 비협조를 공개적으로 비난한 테드로워스 아드하눔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 /AFP 연합뉴스

영국 BBC·독일 도이체벨레·미국의 소리(VOA) 등 서방국가들의 공영방송도 최근 탄자니아 정부가 코로나 확진정보를 제공하지 않거나, 백신접종에 대해 거부입장을 밝히면서 자국 국민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WHO집계에 따르면 탄자니아의 코로나 누적 확진자는 509명이고 사망자는 21명이다. 국경을 맞댄 케냐(10만 3841명 확진·1813명 사망)나 모잠비크(5만4204명 확진·583명 사망), 콩고민주공화국(2만4963명 확진·694명 사망)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수치다. 하지만 여기엔 함정이 있다. 탄자니아 정부가 지난해 5월 이후 코로나 확진정보 발표를 중단했기 때문에 10개월째 업데이트되지 않은 수치인 것이다.

이처럼 국제사회와 거리를 둔 탄자니아의 고립 노선의 중심에 존 폼베 마구풀리 대통령의 ‘주체방역정책’이 있다. 핵심 키워드는 ‘신앙’과 ‘약초’다. 마구풀리 대통령은 지난 11일 전통시장 현대화 사업 완료 행사 연설에서 “신께서 항상 탄자니아 사람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에 어떤 난관에 맞닥뜨려도 우리는 언제나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며 “공포심을 갖는게 죄”라고 했다. 마구풀리 대통령은 그러면서 전통 약초 제조법을 통해 질병과의 싸움에서 이겨나가자”고 말했다. 마구풀리 대통령은 앞서 이달 초 수도 도도마에서 열린 한 공식 행사에서도 코로나 치료의 최선 방책으로 전통 약초를 제시했다.

지난 7일 탄자니아 최대도시 다르에스살람의 한 교회에 참석한 신도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밀집해 앉은 채 예배를 보고 있다. /AFP 연합뉴스

그는 “바이러스·박테리아 퇴치 치료효과가 99.9%로 나타난 전통약품”이라며 ‘코비돌(Covidol)’, ‘부비지(Bubiji)’등의 구체적인 제품명도 소개했다. 정부도 국민들에게 전통 약초 치료법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도로시 그와지마 탄자니아 보건부 장관은 “우리 탄자니아인들은 개인 위생을 개선하고 코로나를 비롯한 각종 질병 치료에 전통 약초를 이용함으로써 이웃 국가의 모범이 돼야 한다”며 “전통 약초 코로나 치료법에 대한 공식 인증 절차도 진행 중”이라고 했다.

반면 마구풀리 대통령은 코로나 백신에 대한 도입의사가 없음을 잇따라 밝혔다. 그는 “충분한 검사 없이 성급하게 서방이 개발한 코로나 백신을 도입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최근 수 차례 표명했다. “서방이 과거 제국주의 시절부터 경제적 이득을 취하려고 우리 전통 의약품 사용을 금지시켰다”며 “탄자니아인들이 서방 제약사들의 무료 신약 실험 대상이 되는 것은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탄자니아 보건부는 백신 도입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탄자니아 세렝게티 평원에서 사파리 관광을 즐기는 모습. 탄자니아는 세렝게티와 킬리만자로 산 등 세계적인 관광지가 많이 코로나 창궐 전까지 매년 수많은 관광객이 입국했다. /연합뉴스

그러나 탄자니아 정부와 마구풀리 대통령의 강력한 ‘주체 방역’ 노선 고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올들어 탄자니아에서 코로나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는데도 정부가 이를 속이고 있다는 비판이 야권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탄자니아의 야권 지도자인 제임스 음바티아 국가 건설개조위원회 의장은 “주변에서 코로나 확진판정을 받고 죽어가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다. 우리는 왜 우리 자신을 속이려 드는가”라고 마구풀리 정권을 비판했다.

탄자니아 주재 미국 대사관도 지난 10일 긴급 공지를 발표하고 “1월 이후 코로나가 심각한 확산세를 보이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며 “탄자니아 내 의료시설의 부족으로 목숨을 위협하는 치료 지연 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탄자니아의 확산세가 진정되지 않을 경우 아프리카 감염병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탄자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콩고민주공화국과 서아프리카 국가 기니에서는 최근 에볼라 바이러스 확진자가 속출해 WHO가 긴급 대응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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