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포레스트'가 되지 못한 '더블 패티'.. 섣부른 위로가 독이 될때 [리뷰]

심윤지 기자 2021. 2. 21.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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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영화 <더블패티>에서 우림(신승호)과 현지(아이린)는 햄버거 가게 손님과 아르바이트생으로 만나 밥 한끼를 나누며 서로를 위로한다. 백그림 제공



※스포일러가 포함돼있습니다.

섣부른 위로는 독이 된다. 청춘을 위한 ‘고열량 충전무비’를 자처했지만 청춘의 고생을 낭만화하는 기성세대의 시선을 벗어나지 못했다. 영화 <더블패티>의 패착이다.

영화는 ‘갑질 논란’으로 활동을 중단했던 아이린의 스크린 데뷔작으로 화제를 모았다. KT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인 ‘시즌’의 오리지널 콘텐츠로, 지난 17일 극장과 시즌에서 동시 개봉했다. 줄거리는 단순한 편이다. 동료 선수의 죽음으로 슬럼프에 빠진 씨름선수 우람(신승호)과 밤낮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꿈을 향해 달려가는 아나운서 지망생 현지(아이린). 두 사람은 햄버거 가게의 손님과 아르바이트생으로 만나 따뜻한 밥 한끼를 나누며 서로를 위로하는 사이가 된다.

‘고단한 청춘을 음식으로 위로한다’는 극의 의도는 여러모로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떠올리게 한다.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허기를 채운다는 것 이상이다. 시간과 정성을 들일수록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돌보는 행위가 된다. 별다른 서사가 없던 <리틀 포레스트>가 ‘힐링 영화’로 호평받았던 이유는 이점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무원 시험에 떨어진 주인공은 고향집에 내려가 제 손으로 음식을 해먹으며 ‘정서적 허기’를 채워나가고, 다른 사람 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관대해질 수 있는 여유를 회복한다.

하지만 <더블패티>의 배고픔엔 이유가 없다. 삼겹살부터 곱창전골, 홍어회, 햄버거까지 다양한 음식들이 침샘을 자극하지만 그뿐이다. 영화는 주인공의 서사나 감정선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대신, 어디에서 본듯한 청춘의 클리셰를 이곳저곳에서 가져온다. 우람이 씨름팀 감독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이유도, 현지가 ‘금수저’ 친구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된 이유도 명확하지 않다. 영화 중반까지 제대로 된 대화 한번 나누지 않은 두 사람이 갑자기 함께 술을 먹게되는 과정, 이를 통해 서로에게 위로받는다는 설정도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영화 <더블패티>의 한장면. 백그림 제공
영화 <더블패티>의 한장면. 백그림 제공

‘꿈을 향해 달려가는 청춘’을 낭만화하는 장면들은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낡은 조언을 떠올리게 한다. 우람은 취객과 건달을 상대해야 하는 술집 경호원 일에 환멸을 느낀다. 새벽 신문배달과 고깃집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후에는 힘들다기보다 뿌듯한 기색이다. 하지만 이 모든 고생이 ‘돌아갈 곳 있는 유망한 운동선수의 일탈’이라는 점은 기만적이다. 극중 현지의 롤모델로 나오는 ‘국민앵커’ 문희정(정영주)은 언론사의 공채 축소를 걱정하는 대학 후배 질문에 “나때는 경쟁률이 1200:1이었다. 못먹어도 고(GO)하라”라고 답한다. 현실에서라면 ‘꼰대 소리’ 듣기 딱 좋은 조언이다.

각각 유망한 씨름선수, 명문대생인 남녀주인공의 고민은 영화 후반부로 가면서 너무나 쉽게 해결되어버린다. 씨름을 그만둘 생각까지 했던 우람은 고향에 내려간지 하루만에 감독과의 오해를 풀고 팀으로 복귀한다. 현지는 그런 우람을 보며 자신감을 되찾고 취업에 성공한다. 그동안 ‘돈없고 빽없는 흙수저’로 비쳐졌던 현지가 최종면접장에서 아버지의 전 직장 동료이자 언론사 고위 간부에게 ‘아저씨’라 부르며 인사하는 장면에선 약간의 배신감마저 느껴진다. 모두가 원하는 꿈을 이룰수 없는 취업절벽의 현실. 영화는 어떤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 있는걸까.

영화 <더블패티>의 한장면. 백그림 제공

엘리트체육의 문제점부터 언론자유파업까지 다양한 사회 현안이 햄버거 재료들처럼 등장하지만, 앞뒤로 아무런 설명이 없다보니 좀처럼 섞이지 않는다. 전라도 출신인 우람이 홍어회를 먹고 돌아와 “화장실 냄새가 난다”고 놀림당하는 장면에선 감독의 진짜 의도(?)를 한참동안 고민하게 된다. 홍어 냄새가 난다는 것이 농담의 소재가 된걸까? 혹은 역으로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지역차별을 비판하려 한걸까? 전자라면 명백한 혐오고 후자라면 역량 부족이다. 예민한 주제를 다루는 창작자의 무신경함이 아쉽게 느껴진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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