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디 극단선택 다섯달만에, 노동부 '직장 괴롭힘' 인정했지만..

홍용덕 2021. 2. 21.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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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쪘다고 못 뛰는 것은 아니잖아요."

건국대가 운영하는 파주 스마트 케이유(KU) 파빌리온 골프장에서 경기보조원으로 일했던 배아무개(27)의 동료 경기보조원은 배씨가 수시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9일 "골프장의 캡틴(경기보조원 관리자) 성아무개씨가 배씨에게 행한 일부 행위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볼 수 있다"며 골프장 쪽에 시정 권고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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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골프장 20대 경기보조원
폭언 시달리다 작년 9월 목숨 끊어
"캐디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아니어서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대상서 제외"
노동부, 강제성 없는 '시정권고' 그쳐
배아무개씨가 경기 파주의 스마트 케이유(KU) 파빌리온 골프장 앞에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죽음에 이른 동생 죽음의 진상을 밝혀달라며 시위를 벌이는 모습. 직장갑질119 제공

“살쪘다고 못 뛰는 것은 아니잖아요.”

건국대가 운영하는 파주 스마트 케이유(KU) 파빌리온 골프장에서 경기보조원으로 일했던 배아무개(27)의 동료 경기보조원은 배씨가 수시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고 말했다. 고통을 겪던 배씨는 지난해 9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9일 “골프장의 캡틴(경기보조원 관리자) 성아무개씨가 배씨에게 행한 일부 행위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볼 수 있다”며 골프장 쪽에 시정 권고를 내렸다. 배씨가 숨진 지 넉달여 만이었다. (캡틴인) 성아무개씨가 직장 내 괴롭힘 등으로 볼 수 있는 행위를 하는 등 직장 내 괴롭힘으로 배씨가 고통을 받아 사망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졌다고 판단한 것이다. 배씨는 골프장 쪽에서 “(골프장) 고객님들은 화장실 가도 캐디들은 가지 마세요”라는 지시를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노동부의 권고는 강제성이 없는 ‘권고’다. 배씨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닌 까닭에 직장 내 괴롭힘 적용을 받을 수도 없다.

부산 출신인 배씨가 이 골프장에 입사한 것은 2019년 7월20일이었다. 이곳에서 1년3개월을 일했던 배씨에게 무슨 일이 있던 것일까.

배씨는 성격이 밝았다. 그러나 경기 진행이 느리다는 이유로 골프장 쪽 관계자로부터 ‘네가 코스 다 말아먹었다’, ‘느리다, 뛰어라’, ‘뚱뚱하다고 못 뛰는 거 아니잖아’ 등 외모 비하가 담긴 공개 질책을 들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배씨는 인격적 모욕감을 느끼고 자괴감에 빠졌다.

숨진 배아무개씨가 지난해 사망 전 자신의 친어머니와 나눈 카톡의 내용. 직장갑질119 제공

배씨는 괴로움을 일기에 담았다. 지난해 8월16일 일기에서 그는 “또다시 주눅이 들었다. 자존감이라는 게 존재하는 걸까. 나를 너무 괴롭히는 것 같아 괴롭다”고 적었다.

하지만 담아만 두기엔 괴로움이 컸다. 결국 그는 지난해 8월29일 동료들과 골프장 관리자가 있는 다음 카페에 “제발요. 사람들 다 감정 있구요. 출근해서 제발 사람들 괴롭히지 마세요…”라고 글을 올렸다. 이 글은 20분 만에 삭제됐고 그는 카페에서 강제로 퇴출됐다. 매일 경기보조원이 맡을 팀 배정을 통보하는 카페에서의 퇴출은 사실상의 해고였다.

배씨는 그해 9월8일 친언니에게 “회사에서 사람 취급 못 받고 일이 있어서 멘탈 다 나가서… 나중에 다 얘기해줄게. 걱정 마 언니”라는 마지막 문자를 남겼다. 일주일 뒤인 14일 그는 한 모텔에서 목숨을 끊었다. 배씨의 언니는 지난해 9~10월 홀로 시위를 벌이고 노동부에 이 사건을 신고했다.

4개월 조사 끝에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한 중부지방고용노동청 고양지청은 그러나 “경기보조원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어서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의 직접 적용이 곤란하다”고 밝혔다. 손님에게 수고료를 받는 경기보조원은 골프장과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는 특수고용직이지 특정 업체에 속한 노동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산재신청도 어렵다.

배씨의 언니는 21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1인시위 때 골프장 사장이 ‘경찰과 노동부에 고발해라. 그래서 갑질이 밝혀지면 인정하겠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다”고 분노했다.

배씨가 지난해 9월 숨지기 6일 전 언니에게 남긴 마지막 문자. 유족 제공

박점규 직장갑질119 상임위원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사망에 이른 배씨 같은 억울함이 더는 없도록 적용 범위를 넓히고 처벌조항 신설 등의 법 개정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의 보호에 관한 법률안 등 15건의 법률안이 상임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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