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언 시달려 사망한 캐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적용되지 않는 이유

김서영 기자 2021. 2. 21.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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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캐디 배모씨는 2019년 7월 경기 파주의 한 골프장에 입사한 이후 관리자 A씨의 지속적인 폭언과 모욕에 시달렸다. A씨는 “뚱뚱하다고 못 뛰는 거 아니잖아” “너 때문에 뒷사람들 전부 다 망쳤다” “그렇게 먹으니까 살 찌는 거야” 등의 언사를 이어갔고, 배씨는 이에 대해 항의하고 사실상 해고를 당했다. 이후 배씨는 여러 차례 자해를 했으며 결국 지난해 9월 27세의 나이로 숨졌다.

유족은 이 사건을 고용노동부에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했지만 “관련 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지난 9일 발표된 사건 처리 결과를 보면 노동부는 배씨 사건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볼 수 있지만, 캐디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아 (가해자 징계 등) 근로기준법의 직장 내 괴롭힘 관련 규정의 직접적인 적용은 곤란하다”고 판단했다.

전형적인 직장 내 괴롭힘의 형태를 띄고 있음에도 노동부가 이같이 결론낸 것은 배씨의 고용 형태가 법의 테두리 밖에 있기 때문이다. 배씨를 비롯한 캐디들은 손님에게 수고비를 받는다는 이유로 골프장 측과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특수고용직으로 일했다. 현행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가해자가 특수고용 노동자를 지휘·명령하는 사실상의 사용자인 경우 등 ‘특수관계인(제삼자)’일 때는 처벌 조항이 없다. 배씨의 피해가 엄연히 업무중 발생했음을 감안하면 법에 ‘사각지대’가 있는 것이다.

직장갑질119

노동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이처럼 특수관계인에게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는 특수고용·용역·하청 노동자들의 사례를 21일 공개했다. 이 단체가 지난해 12월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년간 직장 내 괴롭힘을 겪은 이들 중 9.3%는 원청업체 직원, 고객·민원인, 사용자 친인척 등 소위 ‘갑’의 지위에 있는 특수관계인에게 피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사례를 보면 이들은 “원청 회사의 갑질은 어디에 신고해야 하느냐” “대리점 소장이 인격모독성 발언을 하고 퇴사 후 다른 곳에 취업하지도 못하게 방해까지 하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 등 고충을 호소했다.

직장갑질119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직장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노동자를 지휘·명령하는 특수관계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며 “법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처벌조항을 신설해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현재 국회에 15건의 개정안이 상정됐으니 이달 26일 본회의에서 반드시 개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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