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축제, 도시 외곽서 열린다"는 안철수 발언은 틀렸다
'샌프란시스코 프라이드' 중심가서 열려
토론토·타이베이 등 주요 도시도 마찬가지
지난 18일 열린 제3지대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를 위한 텔레비전 토론의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안철수 국민의당 예비 후보가 퀴어 축제에 참여할 의향이 있는지 묻는 금태섭 예비 후보의 질문에 “퀴어 축제를 광화문에서 하게 되면, 거긴 자원해서 보려고 오는 분도 계시겠지만, 그런 것들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답하면서다. 안 후보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퀴어 축제가 도시 외곽에서 열린다면서 “카스트로 스트리트라는 곳에서 하는데,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샌프란시스코 남부 쪽에 있다”고 설명했다. 안 후보는 논란이 커지자 다음날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저 역시 소수자 차별에 반대하고 이들을 배제하거나 거부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재차 “미국 사례를 들어 축제 장소를 도심 이외로 옮기는 것이 적절하겠다고 말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샌프란시스코 프라이드’는 시 중심가 ‘시청 광장’서 열려
사실일까. ‘세계 성소수자의 수도’, ‘성소수자의 아지트’로 불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매년 6월 마지막 주말에 ’샌프란시스코 프라이드’가 열린다. 이맘때쯤 샌프란시스코 시 청사를 비롯한 도시 곳곳에는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색 깃발이 내걸리고, 최대 100만명의 방문객이 모인다. 축제는 주로 샌프란시스코 시의 행정 중심 구역인 샌프란시스코 시청 광장(Civic Center Plaza)에서 열린다. 샌프란시스코 시청 광장은 샌프란시스코 시 청사뿐만 아니라, 현대 미술관, 중앙도서관, 전쟁기념 오페라하우스 등 주요 기관들이 모여있는 샌프란시스코의 중심이다.
샌프란시스코 프라이드의 핵심 행사인 퍼레이드 역시 시 중심을 관통하면서 진행된다. 6월 마지막 일요일 아침 10시30분께 시작돼 대개 다섯 시간 넘게 이어지는 퍼레이드의 행진 경로는 빌 스트리트에서 시작해 샌프란시스코의 번화가인 ‘마켓 스트리트’를 거쳐 도시 중심가를 관통한 후 시청 광장 근처에서 마무리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퀴어 축제가 ‘도시 외곽’에서 열린다는 안 후보의 주장은 틀린 주장인 셈이다.
다만 안 후보는 샌프란시스코의 최대 퀴어 축제인 ‘샌프란시스코 프라이드’가 아닌 그보다 규모가 작은 ‘카스트로 스트리트 페어(Castro Street Fair)’를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매년 10월 열리는 ‘카스트로 스트리트 페어’는 이름처럼 시 중심가에서 약간 벗어난 카스트로 거리(시청 광장에서 남쪽으로 차로 13분 소요)에서 열린다. 하지만 카스트로 거리를 단순히 시 외곽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카스트로 구역은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힌 첫 선출직 공직자였던 하비 밀크 샌프란시스코 시 의원의 선거구였다. 하비 밀크는 당선 1년만인 1978년 시 청사에서 다른 시 의원에 의해 살해되었지만, 카스트로 거리는 여전히 샌프란시스코 성소수자 문화를 상징하는 거리로 남아있다. 안 의원의 주장처럼 세간의 시선을 피해 외곽에서 열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소수자 역사의 가장 상징적인 장소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열리는 축제인 셈이다.
북미 최대 축제 ‘프라이드 토론토’도 시 중심가 관통
샌프란시스코뿐만 아니라 세계 유수의 도시들의 퀴어 축제는 모두 도시 중심에서 열린다. 북미 지역 최대 퀴어 축제는 ‘프라이드 토론토’도 마찬가지다. 매년 6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리는 ‘프라이드 토론토’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성소수자 축제 중 하나로, 토론토의 대표적인 관광상품이기도 하다. 2017년에는 현직 총리 중 처음으로 쥐스탱 트뤼도 총리가 프라이드 행진에 참여했다. 이 퍼레이드는 토론토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중심가인 ‘용 스트리트(Yonge Street)’에서 벌어진다.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2019년 5월 동성혼을 합법화한 대만 타이베이의 퀴어 퍼레이드도 시 중심부를 관통한다. 매년 10월 마지막 토요일에 열리는 퍼레이드는 타이베이 시청에서 시작된다. 행진 대열은 시청 앞 광장에서 출발해 타이베이의 ‘강남’인 중샤오둥루, 런아이루 등을 거쳐 대만 총통부 앞 거리인 카이다거란 대로 근처에서 끝난다. 동성혼이 합법화된 2019년에는 20만명이 운집해 퍼레이드에 동참했고, 코로나 팬더믹이 한참이던 지난해에도 13만명이 축제에 참여했다.
이외에도 뉴욕·런던·베를린·마드리드 등에서 열리는 주요 퀴어 축제나 퍼레이드는 모두 도시 중심에서 열리고 중심가를 관통하면서 행진한다. 안 의원이 주장하는 ‘도시 외곽’에서 열리는 퀴어 축제는 적어도 샌프란시스코를 포함한 주요 도시의 사례 중에서는 찾기 힘들다.
대학로 70명에서 시작해 시청광장 15만명으로
21년 전 70여명의 참가자로 시작해 15만여명(2019년 주최 쪽 추산)이 참여하는 축제로 성장한 ‘서울퀴어문화축제’가 한국의 중심인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리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2000년 서울 종로구 대학로를 행진하며 시작된 ’퀴어축제’는 이후 14년간 종로, 청계천, 홍대 등지를 돌아가며 열렸다. 하지만 2013년 홍대에서 열린 퀴어 퍼레이드의 흥행을 계기로, 보수적인 기독교 단체들의 방해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2014년 신촌에서 열린 행진을 기독교 단체 관계자들이 막아섰고, 2015년에는 동성애 반대단체들이 축제를 막기 위해 대학로에 집회신고를 했다. 마땅한 장소를 찾을 수 없었던 퀴어축제 조직위원회는 기대 없이 서울광장에 신청서를 냈고, 서울시는 덜컥 승인을 냈다. 성소수자들의 행진을 주변부로 밀어내려 했던 시도가 오히려 축제가 서울 중심으로 진출하는 계기가 된 셈이다.
이후 퀴어축제는 참가 부스만 수십 개에 이르고 참가자는 1만명을 넘어서는 등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다. 서울퀴어문화축제 기획단장을 맡았던 한채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는 지난 2019년 <한겨레> 인터뷰에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퀴어축제가 열리는 것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시청 앞에서 성소수자가 다 함께 모인다는 것은 시민으로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한국에서 받아들여졌다는 뜻이었다. 축제가 상징성이 있는 서울의 가장 중심부 공간으로 나오면서 참가자들 스스로도 더 당당해졌다.” 안 후보의 바람과 달리 퀴어축제가 서울 중심부를 지키고 있는 이유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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