父가 바랐던 '딸의 출생신고'..법은 그를 돕지 못했다

“50만원 넣어놨으니 출생신고 내일 가서 하고 와!”
“오는 중에 출생신고 바로 가능한지 물어봐, 그리고 결과 알려줘!”
“내일까지 출생신고 됐는지 확인할 수 있는 거 보내, 출생신고 한다고 받아간 돈이 3번째였어. 그럼 출생신고는 하고서 돈을 달라든가 해야지….”
출생신고도 되지 않은 채 친모에게 살해돼 서류상에도 ‘무명(無名)’으로 남았던 인천 8세 여아의 안타까운 사연 이면에는 사랑하는 딸의 ‘출생신고’를 간절히 원했던, 이미 고인이 된 친아버지 A씨의 외침이 있었다. 딸의 사망 소식을 접한 뒤 극단적인 선택을 내린 그의 문자메시지는 지난 22일 JTBC ‘뉴스룸’에서 공개됐다.
B(44·구속 기소)씨는 전 남편과 이혼하지 않은 채 A씨와 딸을 낳았고, ‘혼외 자식’이라는 이유로 A씨는 친딸의 출생신고를 할 수 없었다.
검찰이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가족관계등록법)’에 따라 검사가 직접 사망한 아동의 출생신고를 하는 방안을 검토해왔지만 요건에 해당하지 않아 B씨에게 딸의 출생신고를 직접 하도록 설득하면서, 늦게나마 B씨와 그의 가족이 출생신고 관련 서류를 준비 중으로 알려졌다.
서류는 B씨가 직접 제출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대리 제출’ 등의 방법이 동원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검찰은 법무부와 대검찰청에 검사나 지자체가 출생신고에 개입할 수 있는 요건을 확대해 달라며 관련 법 개정도 건의했다.
세상에 태어나 주민등록도 없이 여덟 해를 살다가 져버린 ‘꽃’이 늦게나마 정식으로 이름을 얻게 된 셈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출생신고’ 제도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A씨처럼 자신의 의지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미혼부’가 자녀의 출생신고를 직접 할 수 있게 법이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008년 제정·시행된 ‘가족관계등록법’ 제46조는 ‘혼인 외 출생자’일 경우 “출생자 신고는 모가 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혼인 중 출생자’였다면 A씨가 딸의 출생신고를 할 수 있었겠지만, 전적으로 B씨에게 아이의 운명이 달려있었던 셈이다. 동거하는 친족이나 분만에 관여한 의사, 조산사 등이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고 되어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1순위인 부나 모가 신고를 할 수 없는 경우로 한정한다.
친모가 사라져 미혼부로서 아이를 키우는 여러 사례가 알려진 뒤, 이른바 ‘사랑이법’으로 불리는 같은 법 57조(친생자출생의 신고에 의한 인지) 상세 조항이 2015년 5월 신설됐지만, 이는 모의 성명·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을 때 미혼부가 출생신고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어서, A씨에게는 해당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들어 출생신고의 구조적 문제를 짚어 이를 개선하자는 내용의 관련 개정안이 20여건 발의되었지만, 아직 본회의 문턱도 밟지 못했다.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6월 대표로 발의한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그나마 이번 사건과 가장 가까운 의미로 풀이된다. 이 개정안은 모가 출생신고와 관련된 협조를 하지 않거나 소재불명인 경우에도 미혼부의 출생신고를 인정하는 규정을 명문화한다고 밝힌다.
이 외에 분만에 관여한 의료기관이 직접 출생통보를 하도록 규정, 아동의 ‘출생신고가 될 권리’를 공적 체계에서 보호한다는 내용 등을 여러 개정안은 담고 있다.
한편, 김정식 인천 미추홀구청장은 지난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번 사연을 공유한 뒤, “축복 속에 피어났어야 하는 한 생명이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우리 곁을 떠나갔다”며 “이름 없는 별이 된 소중한 생명을 위해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신속히 처리하겠다”고 적었다.
제46조(신고의무자)
① 혼인 중 출생자의 출생의 신고는 부 또는 모가 하여야 한다.
② 혼인 외 출생자의 신고는 모가 하여야 한다.
③ 제1항 및 제2항에 따라 신고를 하여야 할 사람이 신고를 할 수 없는 경우에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이 각 호의 순위에 따라 신고를 하여야 한다.
1. 동거하는 친족
2. 분만에 관여한 의사·조산사 또는 그 밖의 사람
④ 신고의무자가 제44조제1항에 따른 기간 내에 신고를 하지 아니하여 자녀의 복리가 위태롭게 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검사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출생의 신고를 할 수 있다.
* 제44조1항에 따른 기간은 ‘출생 후 1개월 이내’를 의미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칸방서 불판 닦던 ‘가장’ 주지훈, 100억원대 자산가 만든 ‘집념의 품격’
- “월급 400인데 이자만 200”…7% 금리, ‘버티기 한계’ 왔다
- "먼저 떠올린 건 매니저" 정해인 외제차 선물… 연예계 뒤집은 '통 큰 미담'
- 길 잃고 산 '금호동' 집 10배 대박…조현아의 남다른 '은행 3시간' 재테크
- 7남매 집 사주고, 아내 간병까지…태진아가 350억 건물을 매각하는 이유
- 당뇨 전단계 1400만 시대… 췌장 망가뜨리는 '아침 공복 음료' 피하는 법
- “5만원의 비참함이 1000만원으로” 유재석이 세운 ‘봉투의 품격’
- 가구 공장 임영웅, 간장 판매왕 이정은…수억 몸값 만든 ‘월급 30만원’
- “내가 입열면 한국 뒤집어져”…참치 팔던 박왕열, 어떻게 ‘마약왕’ 됐나 [사건 속으로]
- “법대·의대·사진작가·교수…” 박성훈·구교환·미미, 계급장 뗀 ‘이름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