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진의 햇빛] 밤에도 날씨는 쉬지 않는다

한겨레 2021. 2. 21.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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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전선에 안전지대는 없다.

낮이라면 잠깐 짬을 내서 구름의 모습이나 대기의 색깔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겠건만, 밤이 되면 엘이디(LED) 스크린에 찍혀 나온 관측 수치나 위성·레이더 영상을 통해 날씨 상황을 추정해볼 수밖에 없다.

낮에는 햇빛이 건네준 온기로 살아 움직이던 세상도 밤이 되면 차갑게 식어간다.

밤이 깊은 곳에서 태어나서 그런지, 눈구름도 밤이나 새벽 시간에 더 활발해지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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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진의 햇빛]

지난 16일 부산 해운대구 센텀시티에서 매화가 꽃망울을 활짝 터뜨려 봄소식을 전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우진 | 차세대수치예보모델개발사업단장

날씨 전선에 안전지대는 없다. 남서쪽 해상에서 들어온 비구름이 물러나나 싶으면, 북서쪽에서 찬 공기가 밀려오며 눈이 온다. 한파가 누그러진다 싶으면 황사가 날아들고 먼지 농도가 높아진다. 밤낮 구분 없이 아무 때고 찾아오는 불청객을 맞이하느라, 예보 본부에는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다. 낮이라면 잠깐 짬을 내서 구름의 모습이나 대기의 색깔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겠건만, 밤이 되면 엘이디(LED) 스크린에 찍혀 나온 관측 수치나 위성·레이더 영상을 통해 날씨 상황을 추정해볼 수밖에 없다.

밤은 블랙홀처럼 대지로부터 에너지를 빨아들인다. 대지도 태양처럼 빛을 방출한다. 다만 태양만큼 뜨겁지 않아 방출량이 적고, 주로 적외선이라서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을 뿐이다. 낮에는 햇빛이 건네준 온기로 살아 움직이던 세상도 밤이 되면 차갑게 식어간다. 겨울밤은 길다. 북극에 가까운 시베리아의 밤은 더욱 길다. 그나마 잠깐 낮에 들어온 햇빛도 눈이나 얼음에 반사되어 대부분 되돌아가 버린다. 몇달 동안 밤이 계속되는 만큼 에너지를 많이 빼앗겨 극저온의 한기가 만들어진다. 동토의 찬 공기가 세력을 키우면서 남하하는 곳마다 따뜻한 공기와 부딪히며 강한 눈구름이 일어난다. 밤이 깊은 곳에서 태어나서 그런지, 눈구름도 밤이나 새벽 시간에 더 활발해지는 경향이 있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찬 기운이 강할수록 기상 상황은 급변하고, 눈과 바람과 한파가 종합세트로 몰려온다. 눈보라가 몰아칠 것 같으면 평소보다 서둘러 야간 근무지로 향한다. 낮 동안 잠깐 선잠에 들었다 깨어서인지 머리는 둔기로 얻어맞은 듯 여전히 멍하다. 밤새 자료와 씨름하며 여기저기 기상특보를 발표하고 새벽 5시에 맞춰 정규 일기예보를 내보내고 나면 무거워진 눈꺼풀 사이로 졸음을 참느라 또 한차례 전쟁을 치른다.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애써 태연하게 일근 조와 교대하면서도, 속으로는 다음번 야근에는 어떤 날씨가 괴롭힐지 걱정이 앞선다.

생텍쥐페리가 <야간비행>에서 그려낸 우편배달 비행사도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험준한 산악을 건너 컴컴한 밤하늘을 날다가 폭풍우에 갇힌 비행사는 가려진 시야에 전전긍긍하면서도 발광하는 계기판에 매달리며 예정된 시각에 맞춰 기항지에 도달하고자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교차된다. 경비행기는 저고도로 이동하므로 기류 변화가 심한 하층 대기와 지형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상업 항공이 태동하던 1930년대만 하더라도 야간비행은 어려운 임무였지만, 빠르고 정확하게 우편물을 실어 나르기 위해 비행사는 위험을 무릅썼던 것이다.

야간근무는 전깃불이 등장하고 밤낮의 경계가 희미해지면서 점차 늘어났을 것이다. 우주정거장에서 보내온 지구의 야경은 화려하다. 도심에서 도심으로 이어진 불빛이 한데 어울려 거미줄처럼 뻗어 나와 은하수처럼 반짝인다. 개중에는 병원 응급실처럼 비상근무하거나, 편의점이나 경비실처럼 철야근무하거나, 시차를 넘나들며 외국 파트너와 협업하는 곳에서 새어 나온 불빛도 있을 것이다.

밤은 치유와 회복의 시간이다. 자는 동안 신체는 독성 물질을 제거하고, 상처를 아물게 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밤에 일을 하면 생체리듬이 교란되어 잠을 이루기 어렵고, 충분히 숙면하지 못해 면역 기능이 떨어진다. 우리 몸은 낮에 활동하고 밤에 쉬게끔 태양의 일정에 맞추어 진화해왔지만, 문명의 힘은 이를 거슬러가도록 강요한다. 맞바람을 향해 요트가 정면으로 마주치면 바람의 힘에 막혀버리지만, 45도 각도로 비틀어 가면 오히려 바람의 힘을 역이용하여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물살을 거슬러가는 뱃사람의 지혜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생활 패턴에 유연하게 적응해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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