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콕’ 대신 매일 등교… “청정 자연 속 진짜 학교 다닐 맛 나요” [S 스토리]

한현묵 2021. 2. 20.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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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무풍지대' 시골학교 유학 붐
도시학생들 농산어촌으로 ‘고고’
코로나 확진 거의 없어 ‘등교수업’ 장점
홈스테이·가족체류·센터형 중 선택 가능
방과후 다양한 프로그램 도시에 ‘버금’
텃밭가꾸기 등 체험 위주 학습도 눈길
폐교 위기 학교들 학생 유입 ‘호호’
서울·전남교육청 프로그램 운영 협약
인구 확대 기회 삼아 생활비 등 지급
지역 마을들도 활기 찾아 환영 분위기
거주·교육 부족함 없도록 지원 강화
기숙사 형태로 꾸며 전국서 26곳 운영
지역학교 통폐합 막고 복식학급 해소
도농교류 첨병·공교육 활성화 등 효과
지난 3일 전남 화순군 천태초등학교에 낯선 손님들이 찾아왔다. 서울에 사는 승은지(43)씨 가족이다. 차에서 내린 승씨 부부와 중학교,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 두 명은 상쾌한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기지개를 켰다. 두 자녀는 교문에 들어서자 마자 운동장으로 뛰기 시작했다. 부모들은 강당과 급식실, 체육관, 교실 등을 꼼꼼히 둘러봤다.

“엄마, 나 여기 학교 다닐래요.” 둘째 동현이는 전학오고 싶다고 엄마를 졸라댔다. 동현이는 운동장에서 만난 이 학교 또래 아이들과 금세 어울렸다. 한참 동안 축구를 한 동현이의 이마에는 구슬땀이 송글송글 맺혀있었다. 이 학교 농촌유학 프로그램 설명을 들은 승씨 부부는 아이들의 전학을 결심했다. 동현이는 3월 신학기부터 이 학교 6학년에 다닌다. 승씨는 “동현이가 컴퓨터나 휴대폰이 아닌 자연과 함께 지낼 수 있게 돼 마음이 놓인다”며 “생각했던 것보다 국악과 자전거 타기 등 방과후 활동이 다양해 맘에 든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장기화하면서 동현이처럼 농산어촌으로 유학을 떠나는 도시 학생들이 늘고 있다. 농산어촌이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이 거의 없는 데다 시골 학교는 ‘코로나 휴교’를 하지 않고 등교수업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유학생을 불러들이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학생 수 부족으로 폐교 위기에 놓인 시골 학교와 지역사회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코로나19 무풍지대 시골학교로

전남도교육청은 지난해 12월 7일 서울시교육청과 의미 있는 협약식을 가졌다. 두 교육청은 서울의 초·중학생들이 6개월 이상 전남지역 농산어촌 학교에 다니면서 농촌을 체험하는 ‘농산어촌 유학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합의했다.

전남도교육청에 따르면 농산어촌 유학 프로그램을 통해 전남도 내 학교로 전학을 오는 서울 학생은 모두 83명(초등생 66명·중학생 17명)이다. 이들은 전남 10개 시군 20개 학교(초등 13·중 7)에서 3월 신학기부터 농산어촌 유학생활을 시작한다. 서울 유학생이 가장 많은 학교는 순천 낙안초교로 17명에 이른다. 섬지역인 진도와 신안에는 7명의 학생이 전학한다.
유학 대상은 서울의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이다. 이들 학생은 유학생을 받기로 신청한 전남지역 학교를 선택해 전학하면 된다. 유학생활 기간은 6개월 이상 학기 단위이며, 연장이 가능하다. 유학기간은 초등생의 경우 6학년 졸업 때까지, 중학생은 2학년까지로 제한한다.

유학생이 유학기간 머무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학생 혼자 해당 지역 농가에서 거주하는 홈스테이형과 가족이 모두 이주해 생활하는 가족체류형, 보호자 역할이 가능한 활동가가 있는 지역센터에서 생활하는 센터형이다.

가족체류형 유학생은 주로 학교 인근 마을에서 추천하는 마을회관이나 농가에서 생활한다. 전남 담양 봉산초교에 두 자녀를 유학 보내기로 한 김모씨는 지난 6일 마을에서 제공하는 숙소를 둘러봤다. 이 마을 주민들은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보존하는 농촌체험관을 유학생 숙소로 내놓았다. 김씨는 “체험관이 한옥인데 내부는 현대식으로 꾸며 있어 불편할 게 없을 것 같다”며 “온 마을 주민들이 유학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줘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유학생의 학적은 농촌학교로 옮겨져 유학기간 전남 학교 소속 학생이 된다. 주소는 실제 사는 농가나 센터로 이전한다. 유학생활에 드는 매월 80만원에 이르는 비용은 학부모와 두 교육청이 각각 절반씩 부담한다.

전남 일부 지자체는 유학생 유치를 인구 늘리는 기회로 보고 학부모 부담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구례와 곡성, 강진군은 유학생 가족이 머무는 농가주택의 보수비용을 부담한다. 낙안초교에 18명의 유학생이 온 전남 순천시는 유학생이 생활하는 펜션의 임차료를 저렴하게 낮춰 학부모의 부담을 덜어줬다.
◆텃밭 가꾸기 등 특성화 프로그램 가득

전남지역 시골 학교 대부분은 지난해 도시 학교와 달리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비대면이나 온라인이 아닌 등교수업을 했다. 코로나19 예방수칙인 집합금지를 할 만큼 학생 수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부 방침을 보면 학생수 300명 이하의 경우 밀집도 조치에서 제외돼 등교수업이 가능하다. 전남지역 초등학교 429곳 가운데 200곳이 기준보다 학생 수가 적다. 시골의 작은 학교 대부분은 코로나19의 영향을 받지 않는 무풍지대였다.

대면수업이 서울 학부모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으로 분석된다. 전남지역 학교로 유학을 결심한 상당수 학부모들은 등교수업을 한다는 점을 꼽았다. 대부분 학교들이 방과후에도 관악부와 미술부, 태권도, 피아노 등 학생들의 수요에 맞는 프로그램을 운영한 것도 유학을 결정하는 요인이 됐다. 이 방과후 프로그램을 통해 유학생이 꿈과 끼를 키울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전남 곡성으로 자녀를 유학 보내는 이모씨는 “지난해 이 학교는 코로나19에도 학생 수가 적어 평상시처럼 대부분 등교수업을 했다”며 “방과후에도 다양한 교육 기회가 있어 교육환경은 도시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유학생을 받는 전남 학교와 마을도 환영 분위기다. 시골 학교 학생들이 서울 학교 학생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도농 학습교류의 장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학생 수가 적어 그동안 제대로 하지 못했던 체육 수업도 가능하게 됐다. 두 학년 학생을 한 교실에서 가르치는 복식학급도 사라지게 됐다.

각 초등학교는 유학생 맞이에 분주하다. 유학생들이 농산어촌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반딧불 축제, 텃밭 가꾸기 등 체험 위주의 특성화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담양 봉산초 임금순 교장은 “학습도 중요하지만 유학생활 동안 자연과 함께 어울리는 다양한 체험 위주의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화순 천태초교가 있는 도암면 마을 사람들은 모처럼 동네에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린다는 소식에 들뜬 모습이다. 최근 10년간 신생아가 한 명도 태어나지 않아 적막하기만 한 이 마을에 서울 유학생들이 어떤 매개 역할을 할지 관심거리다.

전남 화순지원교육청 김경환 장학사는 “유학생이 오는 학교에서는 도시에 없는 시골 학교만이 할 수 있는, 자연과 함께하는 교육과정 운영에 초점을 두고 있다”며 “유학생이 농가에서 머물고 교육하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낮에는 학교 다니고 방과후엔 농산물 수확 체험

농촌에 있는 학교로 전학 가고 싶다면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원하는 농촌유학센터의 문을 두드리면 된다. 농촌유학센터는 기숙사 형태로 꾸며 학생들이 생활하는 공간이다. 센터에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직원이 상주하고 있다. 낮에는 정규 과정의 초·중학교를 다니고 방과후에는 센터에서 숙식하며 농산물 수확 체험이나 등반, 악기, 미술, 체육 활동을 한다.

이 같은 농촌유학센터는 전국에서 26곳이 운영되고 있다. 농식품부가 도시 학생들의 농촌생활 체험과 도농 교류 확대, 농촌 공교육 활성화를 위해 지원하는 사업이다. 지원대상은 법인격을 갖추고 6개월 이상 유학생이 있는 시설로, 농촌유학센터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2011년부터 지원사업을 시작한 농식품부는 2018년부터 본격적인 지원에 나서면서 지난해 유학생 수가 303명으로 늘었다.

농촌유학센터의 지원대상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생까지다. 현재 농촌유학센터에 유학 중인 학생은 초등생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농촌유학센터에서 유학하는 비용은 학생 한 명당 매월 70만∼100만원이다. 해당 지자체가 일부 비용을 보조금 형태로 지원해 학부모 부담은 이보다는 작은 편이다.

농촌유학센터의 유학생이 꾸준히 증가하면서 지역 학교의 통폐합을 방지하고 복식학급(두 학년 이상 편성 학급)을 해소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전북 완주군 동산초는 전교생 24명 중 농촌 유학생이 19명으로 사실상 농촌 유학생이 폐교를 막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농촌유학센터와 마을, 학교 간의 프로그램 운영으로 도농 교류의 장이 되고 있다. 충북 단양 한드미 마을은 ‘한드미 가을 한마당’ 프로그램을, 경북 울주 소호산촌은 방과후 학교와 연계한 숲학교 등을 각각 운영하면서 농촌마을과 유학생 학부모들의 한마당이 되고 있다.

농촌유학센터 유학생들은 농촌 유학 일상을 소재로 웹드라마를 제작해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시골 학교의 폐교를 막고 공교육 활성화를 위해 농촌유학센터 지원사업을 펴고 있다”며 “농촌유학센터의 프로그램 개발과 운영비, 시설 개보수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화순·광주, 무안=한현묵·한승하 기자 hansh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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