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이 모여 한번도 연습안하고 녹음한 그 음반..대박난 비결은

오수현 2021. 2. 20. 18: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키스자렛 트리오 'Standards' 시리즈..자작곡 So Tender
자렛·피콕·드조넷 전설의 3인조의 최대 히트작
"너네 All The Things You Are 알지. 바로 녹음하자"
녹음 전 한번 맞춰보지도 않은채 그냥 녹음한 비하인드 스토리

[꿀잠뮤직] 거장 재즈 피아니스트 칙 코리아(79)가 지난 9일 희귀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코리아의 부음 소식을 들으니 내가 좋아했던 거장들이 인생의 황혼기를 지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다.

클래식에선 다니엘 바렌보임(78)과 마르타 아르헤리치(79), 알프레트 브렌델(90), 마우리치오 폴리니(79)가 이미 연주 활동을 접었거나 연주자 경력의 끝자락에 와 있다. 재즈에선 코리아와 함께 3대 거장 피아니스트로 꼽혔던 키스 자렛(75)과 허비 행콕(80)이 말년에 이르렀다. 코리아의 부고 소식에 되레 키스 자렛이 생각나 그의 음반을 꺼내 듣게 됐다. 떠난 사람은 떠난 사람이고 살아 있는 사람 챙기자는 심정이었을까.

키스 자렛은 1945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앨런타운에서 태어났다. 5형제 중 장남이었던 그는 어릴 적부터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특히 완벽한 음감을 지니고 있었다. 세 살도 채 되기 전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다섯 살 땐 재능 있는 어린이들이 출연하는 TV프로그램에 나와 피아노를 연주하기도 했다. 일곱 살 때 첫 공식 독주회를 열었는데 모차르트, 바흐, 베토벤, 생상스 같은 전통적인 클래식 레퍼토리를 연주한 뒤 자작곡 2곡으로 연주회를 마무리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음악 신동이었다.

자렛은 자칫(?) 클래식 연주자의 길을 걸을 뻔했지만, 고교 때 재즈에 빠져들면서 음악 인생의 경로를 틀었다. 고교 시절 프랑스 파리의 명망 높은 음악 교사인 나디아 불랑제에게서 배울 기회를 잡았지만, 재즈 연주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이를 포기했다. 불랑제는 작곡을 공부했지만 후학 양성에 매진하며 탁월한 클래식 음악가를 다수 배출한 위대한 교사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에게서 배운 음악인으론 다니엘 바렌보임, 필립 글래스, 아스트로 피아졸라, 미셸 르그랑, 에런 코플런드 등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거장들이 즐비하다. 전설적인 팝음악 프로듀서 퀸시 존스도 그녀에게 배웠다.

키스 자렛 /사진출처=ECM레코드 홈페이지
하지만 자렛은 파리 대신 보스턴에 위치한 버클리 음대에 진학했다. 버클리 음대에선 1년짜리 연주자 과정을 수료하고 바로 프로페셔널 연주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는데, 버클리 시절 학교 연습실에 있는 피아노들을 죄다 분해하는 바람에 징계를 받았다는 일화가 있다. 나름의 방식으로 피아노를 조율해 새로운 음향을 연구해보려는 의도였다고 한다. 꽤나 괴짜 학생이었던 셈이다.

그는 뉴욕과 캘리포니아 등지에서 연주자로 활동하다가 거장 재즈 트럼펫 연주자 마일스 데이비스에게서 "내 밴드에 들어와 함께 연주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1970년 무렵의 일이다. 데이비스는 뉴욕의 한 재즈클럽에서 자렛의 연주를 듣고 이 같은 제안을 했다고 한다.

당시 데이비스는 자신의 밴드에 이미 칙 코리아라는 최고의 건반 연주자가 있었는데도 자렛을 끌어들였다. 코리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만의 음악을 위해 밴드를 떠났고 이후 자렛의 역할은 더 커졌다.

자렛 역시 자신만의 음악을 하겠다는 강한 열망을 품고 데이비스 밴드 외에도 자신의 트리오와 콰르텟 밴드 활동도 병행하며 이름을 알려가기 시작했다. 자렛의 실력을 눈여겨보던 음반사 ECM의 제작자 만프레드 아이허가 자렛에게 음반 제작을 제안해 왔다. 1971년의 일이다.

당시 자렛은 찰리 헤이든, 폴 모시앙과 트리오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아이허는 이들 대신 게리 피콕(베이스), 잭 드조넷(드럼)과 트리오를 조합해 음반을 내자고 했다. 전설적인 트리오가 된 자렛, 피콕, 드조넷의 조합은 아이허가 밑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하지만 현 트리오와 잘 활동하고 있던 자렛은 이러한 제안을 거절했다.

키스 자렛, 잭 드조넷, 게리 피콕(왼쪽부터)
그리고 무려 12년 뒤인 1983년 마침내 바로 '그 트리오'가 결성된다. 자렛과 피콕, 드조넷이 함께 낸 첫 앨범은 스탠더드 넘버곡들을 실은 '스탠더즈 vol.1'이었다. 전설적인 트리오가 야심차게 내놓은 음반이 고작 스탠더드넘버 앨범이었다니. 스탠더드넘버란 쉽게 말해 유명 고전음악처럼 흔히 연주돼 수없이 편곡되고 연주되는 음악을 말한다. 예컨대 'All The Things You Are' 'Someday My Prince Will Come' 'Over The Rainbow' 등이 대표적인 스탠더드넘버들이다.

게리 피콕이 밝힌 바에 따르면 이 음반은 연습 한 번 제대로 안 하고 만들어낸 음반이다. 피콕과 드조넷은 "같이 음반 내자"는 자렛의 전화를 받고 영문도 모르고 녹음실에 모였다고 한다. 자렛은 전화로 "스탠더드 앨범을 낼 생각"이라고만 알려줬다. 이에 피콕은 "무슨 스탠더드 앨범을 내나"라고 의아해 하면서도 일단 참여했다고 한다.

녹음실에서 자렛은 "너희들 'All The Things You Are' 알지? 그거 연주해 보자"라고 하더니 바로 연주를 시작해 버렸다. 엉겁결에 피콕과 디조넷도 자렛을 따라 연주를 했고, 재즈계 최고의 히트작 '스탠더드 시리즈'는 그렇게 탄생했다.

이렇게 연습도 제대로 안 하고 녹음했지만 높은 음악적 완성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며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고, 이후 이들 트리오는 계속해서 스탠더드 음반 시리즈를 발매했다. 나오는 앨범마다 히트였다.

이 스탠더드 시리즈는 자렛과 피콕, 디조넷이라는 대가들의 조합이 아니었다면 절대 나오지 못했을 결과물이다. 이 음반을 두고선 "새로운 재즈 장르를 만들어 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당연히 이들 대가가 스탠더드넘버들을 그냥 쳤을 리는 없다. 대가다운 해석과 깊이가 담겨 있고, 학구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연주들이다.

특히 당시 음악계에선 "재즈는 무조건 스윙필로 연주해야 돼"라는 인식이 일반적이었다. 소위 스윙재즈라고 하는 밀고 당기는 재즈 특유의 리듬으로 연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키스 자렛 트리오는 스탠더드넘버 시리즈에서 이 같은 '스윙필'을 상당히 걷어내고 연주했다. 그저 모차르트나 바흐 곡을 연주하듯 비교적 스트레이트(straight)하게 연주하면서도 재즈적인 맛을 살려냈다. 그래서 키스 자렛의 음악을 듣다보면 전통적인 재즈와는 다른 자렛 고유의 색깔이 묻어난다.

키스 자렛 트리오의 두 번째 스탠더드앨범인 '스탠더즈 vol.2'에는 스탠더드넘버가 아닌 자렛이 작곡한 'So Tender'라는 곡이 실려 있다. 조용하며 자렛 특유의 서정미가 듬뿍 담겨 있는 보물 같은 작품이다.

유튜브에서 'keith jarrett trio so tender'라고 검색하면 스탠더드 vol.2 음반 커버가 있는 음악을 찾을 수 있다. 늦은 밤 재즈바에서의 공기를 맛볼 수 있는 음악이다.

[오수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