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치 혀에 담은 정치.. 與野 '말의 칼'에 오늘도 웃고 울어 [심층기획]

배민영 2021. 2. 20.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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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대변인들의 삶
전날부터 시작되는 하루
밤 10시 논평기조 토론 후 회견문 작성
새벽 5시 기상.. 뉴스 모니터링 계속 해
아침 7시부터 기자 전화 받는 건 일상
'말의 전쟁'이 심해졌다
진영논리·대치 잦아지며 거친 말 오가
본의 아닌 비판 많아 미안한 마음 커
자극적 표현대신 정제된 말 하려 노력
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언어는 한 정당의 승패를 가른다. 4·7 재보궐 선거를 앞둔 정치권은 각 정당 대변인의 입을 주목하고 있다. 날카로운 수사는 비수로 변해 상대의 폐부를 찌르곤 한다. 각 정당 대변인은 말과 언어로 화한 격전지 최전선의 전사들이다. 세계일보는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4일까지 일주일에 걸쳐 각 당 대변인을 만나 그들의 24시간을 들여다봤다.

◆“전날부터 하루 시작”

더불어민주당 허영 대변인의 하루는 전날 저녁부터 시작된다. 다음날 논평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허 대변인은 “다음날 이슈가 될 사안을 보좌진, 당 공보국과 논의한다”며 “밤 9~10시까지 토론하면서 논평의 기조를 잡는다”고 말했다. 이어 “다음날 오전 7시 30분 이후부터 논평 작성을 한다”며 “오전 11시 30분 정도면 대체로 2~3건 작성을 완료한다”고 했다. 오전 7시부터 각종 현안을 취재하려는 각 언론사 기자들의 전화를 받는 건 덤이다.

국민의힘 박기녕 부대변인은 각종 이슈를 실시간 파악하기 위해 뉴스에서 눈을 떼지 않는 스타일이다. 박 부대변인은 화장품 매장을 운영하는 30대 자영업자로, 정치권에선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그는 “자영업자이다 보니 일을 하는 와중에도 계속 뉴스 모니터링을 한다”면서 “어떤 문제점을 발견했을 때 머릿속에 생각나는 단어를 모두 적은 뒤 즉시 대응해야겠다 싶으면 바로 논평을 쓴다”고 말했다. 같은 당 배준영 대변인도 “오전 5시면 일어난다”며 “조간신문과 방송 뉴스를 본 뒤 논평을 어느 방향으로 준비해야 할지 자료분석실과 의논하고 작성한다”고 했다. 배 대변인은 “모든 게 스승”이라며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TV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듣는다”고 했다.

◆말 한마디에 전국서 비판

당의 얼굴이자 입인 대변인은 비판도 전국구다. 특히 권한과 책임이 큰 집권 여당 대변인일수록 여론의 주목과 비판이 집중되기 때문에 신중하면서도 할 말은 해야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허 대변인은 지난해 12월 윤석열 검찰총장 탄핵론이 불거지자 “우리도 감정을 조절해야 한다”는 취지로 페이스북에 글을 남겼다가 핵심 지지층의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그는 “핵심 지지층에서 공격을 많이 받았다. 그렇지만 소신껏 했다”면서 “지금은 오히려 ‘용기 있게 잘 이야기했다’는 격려를 받는다”고 했다.
민주당 박성준 원내대변인은 지난해 9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군 생활 시절 ‘황제 휴가’ 의혹이 불거지자 추 전 장관 자녀의 입대를 ‘위국헌신 군인본분’에 비유하는 국회 브리핑을 했다가 정치권 안팎의 비판에 결국 사과하고 발언을 철회했다. 박 원내대변인은 “추 전 장관 아들도 군대 간 심정은 위국헌신 군인본분이란 걸 생각해서 말했다”면서도 “제가 말하고 싶은 것보다 다른 사람이 달리 받아들이면 그게 정답”이라고 했다. 박 원내대변인은 “내가 생각한 틀과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했을 경우 정치적으로 달리 해석될 수 있겠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고 상당히 많이 배웠다”고 했다. 야당 대변인의 고충도 만만찮다. 배 대변인은 “저희는 비판을 주로 해야 한다”며 “일을 해냈다는 성취감은 덜한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비판이란 게 남한테는 상처를 주는 것”이라며 “상대방에 대한 미안한 생각이 없을 수가 없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성준 대변인. 연합뉴스
◆“진영논리가 말 전쟁 심하게 해”

모든 정당은 대변인 제도를 두고 있지만, 신문·방송·유튜브·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소속 의원들을 통제하기는 어렵다. 그러다 보니 상대 당을 겨눈 도를 넘는 발언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확대재생산되는 일도 흔하다.

아나운서로 26년간 근무하며 정제된 언어 습관을 길러온 박 원내대변인은 정치권의 언어가 품격을 잃은 원인을 “진영논리가 더 강해져서인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는 “대치국면이 잦아지면서 말의 수위가 높아졌다. 말 안에 칼이 들어가기 시작했다”고 했다.

대변인의 언어에는 당의 입장이 반영됐다고 해석될 수 있어서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허 대변인은 “정치는 말이라고 하는데 제 말이 위로가 되고 시원함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공감을 일으키기도 했으면 좋겠다”면서도 “제 말로 인해 당과 저 자신에게 부담이 되는 논평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허 대변인은 “그런 부담은 대부분 비유를 잘못하거나 잘못된 시각에 의하는 경우”라며 “최대한 비유를 하지 말고 논리와 사실에 기반한 논평을 하자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 배준영 대변인. 연합뉴스
배 대변인도 “정제된 언어를 사용하려고 한다”며 “(정치인들이) 언론에 부각되기 위해 너무 심한 언어를 쓰다 보니까 오히려 공감을 더 못 얻고 막말 논란을 빚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급적 평이하고 정제된 언어로 잘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것이 쉬운 작업이 아니다”라고 했다.

◆“대변인 이후엔…”

대변인들도 어깨에 멘 총대를 내려놓을 때가 온다. 누군가에겐 홀가분하겠지만 아쉬움이 큰 이도 있다. 주목도가 떨어지는 청년 정치인들이 그렇다. 민주당 조은주 청년대변인은 “대변인이 아니어도 당내 전국 청년당 등을 통해 정책을 제안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같은 당 박 원내대변인은 “선거의 꽃인 대선에서 주요 멤버가 돼 선거 조직은 어떻게 구성되고 공약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등을 경험해보고 싶다”고 했고, 허 대변인은 “장차 당 정책 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정책 현안에 대한 깊은 인식의 기회를 갖고 싶다”고 했다. 국민의힘 소속 배 대변인은 “소속 상임위인 교육위 활동을 좀 더 열심히 할 수 있겠다”고 전했다.
국민의힘 김은혜 대변인(왼쪽부터), 최형두 대변인,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대변인. 연합뉴스
◆대변인들이 꼽은 대변인

대변인들이 꼽은 대변인은 누굴까. 세계일보와 만난 5명의 여야 대변인들에게 소속 당을 제외한 ‘다른 당에서 돋보이는 대변인’과 ‘본받고 싶은 역대 정치권 대변인’이 누구인지 물어봤다.

더불어민주당 허영 대변인은 국민의힘 김은혜 대변인을 선택했다. 그는 김 대변인의 브리핑을 두고 “언론인 출신이다보니 구사하는 단어가 화려하다. 전달력도 굉장히 확실하다”며 높이 평가했다. 정치권을 통틀어 닮고 싶은 대변인으로는 20년 전 민주당 대변인을 역임한 같은 당 이낙연 대표와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을 꼽았다. 그는 과거 이 대표 논평에서 “촌철살인, 유머와 위트가 느껴졌다”고 돌아봤다. 강 대변인에 대해선 “대통령의 백신 확보 노력을 정리해 깔끔하게 브리핑하는 모습에서 많이 배웠다”고 했다.

민주당 박성준 원내대변인은 국민의힘 최형두 원내대변인을 꼽았다. 그는 최 대변인이 “언론인 출신으로 정제된 분”이라며 “토론에 자주 파트너로 출연해서 친하고 덕담도 하는데, 들어가서는 세게 붙게 된다”며 웃었다. 국민의힘 배현진 원내대변인에 대해서도 “앵커 출신이라 그런지 맥락을 잘 잡는다”며 호평했다. 본받고 싶은 대변인으로는 박희태 전 국회의장과 고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를 꼽았다. 박 대변인은 두 전직 대변인을 들며 “요즘 정치는 감정적인 말이 난무한다. (과거 두 분은) 말에서부터 나오는 신뢰라는 영역에서 품격이 있었다”고 했다.

민주당 조은주 청년대변인은 “정의당 조혜민 대변인이 여성 관련 문제 논평을 쓸 때 저와 겹치는 부분이 있어 주목하게 된다”고 말했다. 또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은 과한 표현이 없고, ‘요동치지 않는 물결’ 같으면서도 깊이 있는 논평을 썼다”고 돌아봤다.

국민의힘 배준영 대변인은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의 브리핑을 인상깊게 봤다. 배 대변인은 “강 대변인이 말하는 태도라든지 톤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친숙하게 한다”며 높게 평가했다. 롤모델로 삼고 싶은 대변인으로는 박 전 의장을 꼽았다. 배 대변인은 “박희태 대변인께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총체적 난국’과 같은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표현을 남기셨다. 굉장한 감각”이라며 “대변인이 종합적 사안을 한두 가지 단어로 정리할 능력도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높이 본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박기녕 부대변인은 대변인직을 두 달여간 맡았다는 점에서 “아직은 (다른 당 대변인을) 평가하기가 그렇다. 관심 갖고 지켜보려 한다”면서도 같은 당에선 “김예령 대변인이 브리핑할 때 음성이나 톤이 사람을 집중하게 만든다.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닮고 싶은 대변인에 대해서도 “제가 경험해본 지금의 국민의힘 대변인단 분들이 앞으로도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했다.

배민영·곽은산 기자 goodpoin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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