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치 혀에 담은 정치.. 與野 '말의 칼'에 오늘도 웃고 울어 [심층기획]
전날부터 시작되는 하루
밤 10시 논평기조 토론 후 회견문 작성
새벽 5시 기상.. 뉴스 모니터링 계속 해
아침 7시부터 기자 전화 받는 건 일상
'말의 전쟁'이 심해졌다
진영논리·대치 잦아지며 거친 말 오가
본의 아닌 비판 많아 미안한 마음 커
자극적 표현대신 정제된 말 하려 노력
◆“전날부터 하루 시작”
더불어민주당 허영 대변인의 하루는 전날 저녁부터 시작된다. 다음날 논평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허 대변인은 “다음날 이슈가 될 사안을 보좌진, 당 공보국과 논의한다”며 “밤 9~10시까지 토론하면서 논평의 기조를 잡는다”고 말했다. 이어 “다음날 오전 7시 30분 이후부터 논평 작성을 한다”며 “오전 11시 30분 정도면 대체로 2~3건 작성을 완료한다”고 했다. 오전 7시부터 각종 현안을 취재하려는 각 언론사 기자들의 전화를 받는 건 덤이다.
국민의힘 박기녕 부대변인은 각종 이슈를 실시간 파악하기 위해 뉴스에서 눈을 떼지 않는 스타일이다. 박 부대변인은 화장품 매장을 운영하는 30대 자영업자로, 정치권에선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그는 “자영업자이다 보니 일을 하는 와중에도 계속 뉴스 모니터링을 한다”면서 “어떤 문제점을 발견했을 때 머릿속에 생각나는 단어를 모두 적은 뒤 즉시 대응해야겠다 싶으면 바로 논평을 쓴다”고 말했다. 같은 당 배준영 대변인도 “오전 5시면 일어난다”며 “조간신문과 방송 뉴스를 본 뒤 논평을 어느 방향으로 준비해야 할지 자료분석실과 의논하고 작성한다”고 했다. 배 대변인은 “모든 게 스승”이라며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TV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듣는다”고 했다.
◆말 한마디에 전국서 비판
모든 정당은 대변인 제도를 두고 있지만, 신문·방송·유튜브·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소속 의원들을 통제하기는 어렵다. 그러다 보니 상대 당을 겨눈 도를 넘는 발언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확대재생산되는 일도 흔하다.
아나운서로 26년간 근무하며 정제된 언어 습관을 길러온 박 원내대변인은 정치권의 언어가 품격을 잃은 원인을 “진영논리가 더 강해져서인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는 “대치국면이 잦아지면서 말의 수위가 높아졌다. 말 안에 칼이 들어가기 시작했다”고 했다.
◆“대변인 이후엔…”
대변인들이 꼽은 대변인은 누굴까. 세계일보와 만난 5명의 여야 대변인들에게 소속 당을 제외한 ‘다른 당에서 돋보이는 대변인’과 ‘본받고 싶은 역대 정치권 대변인’이 누구인지 물어봤다.
더불어민주당 허영 대변인은 국민의힘 김은혜 대변인을 선택했다. 그는 김 대변인의 브리핑을 두고 “언론인 출신이다보니 구사하는 단어가 화려하다. 전달력도 굉장히 확실하다”며 높이 평가했다. 정치권을 통틀어 닮고 싶은 대변인으로는 20년 전 민주당 대변인을 역임한 같은 당 이낙연 대표와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을 꼽았다. 그는 과거 이 대표 논평에서 “촌철살인, 유머와 위트가 느껴졌다”고 돌아봤다. 강 대변인에 대해선 “대통령의 백신 확보 노력을 정리해 깔끔하게 브리핑하는 모습에서 많이 배웠다”고 했다.
민주당 박성준 원내대변인은 국민의힘 최형두 원내대변인을 꼽았다. 그는 최 대변인이 “언론인 출신으로 정제된 분”이라며 “토론에 자주 파트너로 출연해서 친하고 덕담도 하는데, 들어가서는 세게 붙게 된다”며 웃었다. 국민의힘 배현진 원내대변인에 대해서도 “앵커 출신이라 그런지 맥락을 잘 잡는다”며 호평했다. 본받고 싶은 대변인으로는 박희태 전 국회의장과 고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를 꼽았다. 박 대변인은 두 전직 대변인을 들며 “요즘 정치는 감정적인 말이 난무한다. (과거 두 분은) 말에서부터 나오는 신뢰라는 영역에서 품격이 있었다”고 했다.
민주당 조은주 청년대변인은 “정의당 조혜민 대변인이 여성 관련 문제 논평을 쓸 때 저와 겹치는 부분이 있어 주목하게 된다”고 말했다. 또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은 과한 표현이 없고, ‘요동치지 않는 물결’ 같으면서도 깊이 있는 논평을 썼다”고 돌아봤다.
국민의힘 배준영 대변인은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의 브리핑을 인상깊게 봤다. 배 대변인은 “강 대변인이 말하는 태도라든지 톤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친숙하게 한다”며 높게 평가했다. 롤모델로 삼고 싶은 대변인으로는 박 전 의장을 꼽았다. 배 대변인은 “박희태 대변인께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총체적 난국’과 같은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표현을 남기셨다. 굉장한 감각”이라며 “대변인이 종합적 사안을 한두 가지 단어로 정리할 능력도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높이 본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박기녕 부대변인은 대변인직을 두 달여간 맡았다는 점에서 “아직은 (다른 당 대변인을) 평가하기가 그렇다. 관심 갖고 지켜보려 한다”면서도 같은 당에선 “김예령 대변인이 브리핑할 때 음성이나 톤이 사람을 집중하게 만든다.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닮고 싶은 대변인에 대해서도 “제가 경험해본 지금의 국민의힘 대변인단 분들이 앞으로도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했다.
배민영·곽은산 기자 goodpoin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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