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윤지선 교수 "보겸, '여혐표현' 의도 은폐..엄중 대처 할 것"
최근 유명 유튜버 보겸이 여러 편의 영상에서 한 논문을 거론하며 “‘여혐’으로 박제당했다”고 억울함을 호소 중인 가운데, 이 논문 저자인 철학박사 윤지선 교수가 입을 열었다. 윤 교수는 2019년 철학연구회가 발행한 학술잡지에 ‘‘관음충’의 발생학’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게재했다. 해당 논문은 보겸이 유행시킨 특정 용어(보이루)가 여성 성기와 인삿말을 합성해 여성혐오적으로 사용되는 부분을 지적했다.
19일 세계일보 인터뷰에 응한 윤 교수는 “무대응으로 일관하려 했으나 저 개인을 넘어 한국연구재단과 철학연구회에까지 집단 공격 양상으로 번지는 것을 보며 입장을 밝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저의 논문 한 구절로 인한 논란으로 큰 고초를 겪고 계신 철학연구회 임원 분들과 한국연구재단 관계자들께 진심으로 송구하다”고 전했다.
현재 보겸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페미니스트 여교수를 직접 찾으러 갑니다’ 등의 제목으로 가톨릭대 교수실 문을 두드리고, 철학연구회 임원과의 통화를 공개하는 내용 등의 영상을 올리고 있다. 윤 교수는 이에 대해 “자극적으로 조회수를 올리며 수익을 취하고 있다”며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안티 페미니스트 유튜버들이 수십만이 넘는 구독자들에게 철학연구회나 한국연구재단을 온오프라인에서 집단 포격하길 주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연구자로서 양심을 꺾게 하려는 다각적인 압력의 행사”라는 것이다.
◆“보겸은 여성비하 용례 모르지 않았다”
문제시된 표현 ‘보이루’는 이미 초등성평등연구회를 비롯해 젠더 연구가들에 의해 ‘교실 속 여성혐오 용어’이자 심각한 성차별 사회 현상으로 지적돼 왔다는 게 윤 교수의 입장이다. 교육부에서도 유튜버나 BJ들의 무분별하고 성차별적인 콘텐츠와 혐오성 언어 사용의 해악을 지적할 정도로 첨예한 사회적 사안이라는 것이다.
윤 교수는 “보겸은 수백만명 구독자를 거느리고 있고, 초등학생 구독자 비율이 매우 높아 미성년자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성인 유튜버”라며 “그럼에도 그는 교실·게임에서 사회적 논란을 빚어온 이 표현을 여성 혐오적으로 사용하지 말아 달라는 언급이나 요청을 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롤플레이 게임 사이트에 여성 게이머가 등장하는 순간 다른 남성 게이머들에 의해 채팅창이 ‘보이루’로 도배되는 등 여성혐오 표현을 놀이처럼 쏟아내는 현상이 대두되고 있음에도 보겸은 자신의 용어가 소위 오용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은 적 없이 묵인해 왔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용어의 유행을 수십만 남성팬을 자신의 수익구조에 편입하고 흡수하는 계기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여성혐오 문화를 기반으로 구축된 자신의 팬덤과 ‘공생’하는 관계”라고 윤 교수는 덧붙였다.
윤 교수는 “현재 여성혐오와 성차별적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는 ‘보이루’ 표현의 전파자로서 보겸 자신이 기록되는 것이 명예훼손이라 주장한다면, 그가 이 용어를 혐오 표현으로 적극 전파하고 사실상 여성혐오 문화를 생성한 남성 팬들에게 ‘명예훼손의 원인 제공자’라고 왜 결코 이야기하지 못할까”라고 반문했다.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보겸이 자신의 용어가 어떤 맥락에서 재사용되고 확대 전파되며 자신의 인기를 강화시켰는지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자신을 피해자로 만들어 남성팬들에 면죄부”
젠더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성차별 같은 건 없다’, ‘그렇게 받아들인 네가 예민한 것’ 등으로 존재하는 차별을 부정해 온 유구한 역사와 이번 논란은 일맥상통하다는 게 윤 교수의 생각이다. 이러한 인식이 팽배한 사회에서는 종종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뀌고, 거짓 억울함이 호소되며, 여성혐오에 대한 문제 제기를 애매한 것으로 만드는 등 각종 ‘검열 시스템’이 작동한다.
윤 교수에 따르면 이는 “차별 현상을 마치 문제 없는 것으로 변모시키거나 비가시화하며 현재의 교실 속 성차별 등을 더 심각하게 만드는 것”이며 “현재 유튜버 보겸에게도 그대로 드러나는 방식”이다. ‘보이루’를 듣는 여학생들이 이를 불편하고 공격적인 표현으로 인지해 반발하면 남성들은 “아니다. ‘보겸+하이루’의 단순 표현일뿐 여성 비하가 아니다. 듣는 네가 잘못된 것”이라고 대응하며, 이는 “말하는 이의 의도를 적극 은폐할뿐 아니라 오히려 문제 제기하는 듣는 이의 인식 구조가 잘못된 양 몰아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보겸은 ‘보이루’의 사회적 의미를 모르는 척 적극 은폐하며, 이 용어의 해악을 지적하는 이들을 ‘발화 오류 수신자’로 왜곡한다”며 “이로써 미성년 교실과 게임, 일상에 침습한 여성혐오 문화를 존속 및 유지시키는 동시에 남성 팬덤문화의 수호자로 등극한다”고 분석했다. 또한 이러한 방식으로 “해당 표현의 맥락을 휘발시켜 자신을 피해자로 놓음으로써 지금까지 여성혐오적으로 이 용어를 사용해 온 수많은 팬들에게 일종의 면죄부를 쥐어준다”고 설명했다.
◆“명예훼손 협박 굴복 없다…연구자로서 소명 느껴”
이번 일에 대응하지 않으려던 윤 교수가 인터뷰를 결정한 것은 사회철학 연구자로서 이러한 사회 현상에 대해 대책을 촉구해야 한다는 소명 때문이다. 또한 철학이라는 학문의 신뢰성, 연구단체에 대한 집단 공격으로 여겨져 엄중한 대처를 할 예정이다.
윤 교수는 “여성혐오 표현의 진화와 전파에 암묵적으로 공모한 유튜버 보겸은 철학자인 저에게도 ‘그렇게 인식하는 네가 문제야. 나는 결백하고 너는 잘못됐다. 여성혐오는 존재하지도 않는 망상이다’는 똑같은 방식의 공격을 행한다”며 “수많은 여성과 여아들에게 수치심과 분노, 굴욕감을 주는 언어를 묵인한 자의 명예훼손 협박에 굴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성차별적 현상의 발원지를 분석하고 변화를 촉구하는 행위가 집단공격의 위험으로 침묵과 굴복을 강요당하는 현실에서는 미래 세대를 위한 대책을 논의조차 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그는 “보겸의 주장대로라면 문제의 표현에 따른 여성혐오 따위는 존재하지 않기에 이로 인한 교실 안 여성혐오에 대한 개입이나 대책 수립을 강구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기성세대로서 여성혐오 현상이 뿌리내린 교실과 젊은 세대의 문화에 어떠한 개입을 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느낀다”며 “성차별적 콘텐츠 생산으로 고수익을 올리는 일부 유튜버·BJ의 여성혐오 문화 내 공생관계를 폭로해 적절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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