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녹고 철조망 걷힌 봄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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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21일 오전 6시50분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한강 하류 전류리 포구.
철조망과 얼음으로 둘러싸인 포구의 어둠을 뚫고 어민 대표가 인터폰 앞에 섰다.
지난해 말 김포시는 한강 하류 첫 번째 다리인 일산대교에서 전류리 포구까지 8.1㎞의 군용 철책을 올해 안에 철거하기로 국방부와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한강 하류로 남과 북의 배가 자유롭게 왕래하는 출발점, 전류리 포구의 얼음이 녹고 철조망은 걷히는 평화의 봄바람이 불어오길 제발,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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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21일 오전 6시50분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한강 하류 전류리 포구. 철조망과 얼음으로 둘러싸인 포구의 어둠을 뚫고 어민 대표가 인터폰 앞에 섰다. 조업 인원과 어선 번호를 통보하자 굳게 닫힌 군부대 통문이 기계음을 내며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두꺼운 겨울옷에 물장화로 무장한 어민 10여 명이 통문을 통과하자 서치라이트를 켠 굴삭기 한 대가 어민들의 뒤를 따라 통문 안으로 향했다.
진흙과 얼음으로 뒤섞인 선착장 위에는 소형 어선 10여 척이 정박해 있었고, 배에 올라탄 어민들은 전날 준비해둔 그물을 살피며 출항 준비를 서둘렀다.
함께 들어온 굴삭기가 선착장을 가득 메우고 있던 얼음을 깨부수기 시작하더니 이내 출항 대기 중이던 소형 어선을 끌어당겨 6~7m 아래 강물로 밀어붙였다. 얼음과 펄이 뒤섞인 비탈면을 따라 미끄러져 내려간 어선은 얼음이 둥둥 떠 있는 차가운 한강물과 조우하며 물보라를 일으켰다. 조업에 나선 배는 총 7척.
새해 벽두부터 몰아친 초강력 한파 때문에 전류리 포구의 조업은 중단된 상태였다. 두껍게 얼어붙었던 한강의 유빙(얼음조각)이 포구를 뒤덮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기온이 조금씩 올라가면서 유빙이 조류를 타고 상류와 하류로 오르락내리락하자 포구 앞에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 틈을 놓칠 리 없는 어민들이 ‘틈새 공략’에 나선 것이다. 한바탕 조업을 하다 보면 조류가 바뀌어 포구 앞이 또다시 유빙으로 가득 차는데, 하루 두 번 밀물과 썰물의 섭리를 틈타 공략하는 게 작업의 핵심이었다. 오늘의 대상 어종은 겨울철 인기 만점 ‘숭어’.
굴삭기에 등 떠밀려(?) 얼음물로 들어갔지만, 어선들은 3시간째 포구 앞에서만 뱅글뱅글 맴돌았다. 유빙이 하류 먼 곳까지 밀려가도 배들은 더 이상 따라가지 않았다. 전류리가 고향이라는 심 아무개씨(51)는 전류리 포구에서 하류로 800m 언저리에 그어진 ‘어로한계선’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고급 어종이 잡힌다 해도 그 선을 넘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한강 하류 평화의 물길 출발점
사실 3년 전만 해도 어로한계선을 넘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었다고 했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 거푸 열리던 2018년. 그리고 그해 11월 남북은 강화군 말도~파주시 만우리 구역에서 한강하구 수로 측량과 조석 관측 등 공동 조사를 실시했다. 당시 남측의 측량선이 출발한 곳이 전류리 포구다. 머지않아 어로한계선이 풀리고 한강 하류까지 배가 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했단다.
하지만 북·미 정상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지고 남북관계마저 진전을 이루지 못하면서 한반도 상황은 포구를 뒤덮은 얼음만큼이나 꽁꽁 얼어붙었다.
지난해 말 김포시는 한강 하류 첫 번째 다리인 일산대교에서 전류리 포구까지 8.1㎞의 군용 철책을 올해 안에 철거하기로 국방부와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평화의 훈풍을 불게 하기 위해서다. 전류리 포구의 어민들이 유빙과 싸우며 조업하던 그날, 바다 건너 미국에서는 트럼프에 이어 바이든이 대통령으로 취임했고, 한반도 정책의 큰 변화를 예고했다.
한강 하류로 남과 북의 배가 자유롭게 왕래하는 출발점, 전류리 포구의 얼음이 녹고 철조망은 걷히는 평화의 봄바람이 불어오길 제발, 기대해본다.
글·사진 조남진 기자 chanmoo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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