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에 한 번씩 연인에게 살해되는데..'데이트 폭력' 법적 정의조차 없다

김태영 기자 youngkim@sedaily.com 2021. 2. 2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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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연인 관계에서 벌어지는 살인, 이른바 ‘데이트 살인’이 끊임 없이 벌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데이트 살인은 폭력의 연장선상에서 발생하는 만큼 데이트 폭력 단계에서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고 가해자를 철저히 처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 지 오래지만 현행법에는 아직까지도 데이트 폭력에 대한 정의조차 없다. 데이트 폭력에 범국가적으로 대응하며 ‘경제적 통제’까지 가정 및 데이트 폭력으로 보는 외국처럼 한국도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거세다.

2019년 언론에 보도된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한 여성살해' 범행 유형 및 동기별 분류. /사진 제공=한국여성의전화

◆이별 요구해서, 홧김에, 바람 피는 것 같아서···6일에 한 번씩 연인에게 살해 당한다

20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 2019년 발생한 살인 범죄(미수 포함) 847건 중 피해자와 범죄자가 연인 관계였던 경우는 총 64건이었다. 365일을 64로 나누면 약 5.7일로 1년 중 6일에 한 번 꼴은 데이트 살인이 발생하는 셈이다. 데이트 살인이 전체 살인 범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4년 12.6%에서 2019년 7.5%로 감소 추세지만 여전히 상당한 수준이다. 한국여성의전화가 2019년 언론에 보도된 데이트 살인 사건(배우자 살인 포함)들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범행 동기는 ‘상대방의 결별 요구 혹은 재결합 거부(29.6%)’와 ‘우발 범행(29.6%)’이었다. 그 다음은 ‘상대방의 바람 의심’으로 12.8%를 차지했다.

교제 상대방이 결별을 요구하거나 바람을 피는 것 같다는 이유로 살인에 이르는 사례들은 언론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 18일 대법원은 여자친구의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29세 남성 권 모씨에게 징역 28년형을 선고했다. 권씨는 A씨에게 이별 통보를 받자 이러한 범행을 저질렀다. A씨가 다른 남자를 만난다고 의심하고 2년간 상습적으로 폭행한 전적도 있다. 지난 8일에는 62세 이 모 씨 역시 헤어지자고 한 B씨를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이씨는 법정에서 "(이별 통보 전) 성폭행 혐의로 경찰에 신고해 화가 났다"며 "많이 사랑했다"고 울먹였지만 과거에도 B씨가 몸이 안 좋다며 성관계를 거부하자 머리를 수십 차례 때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11월에는 서울북부지법에서 연인을 살해한 남성 2명의 재판이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열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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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 폭력은 심각한 범죄' 인식 필요하지만 법적 정의·피해자 보호 제도 없어

이처럼 대부분의 데이트 살인 사건에서 이미 폭력이 존재했던 것으로 밝혀지는 경우가 많은 만큼 연인 간 벌어지는 ‘데이트 폭력’부터 엄격히 관리하고 처벌해야 비극을 막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혜원 경기도여성가족재단 여성연구팀장은 “데이트 살인은 여러 폭력이 누적되다가 결국 살인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데이트 폭력은 신고 이후 보복이 가해질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피해자가 제대로 대처하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래서 데이트 폭력이 심각한 범죄라는 인식이 필요한데 아직까지도 한국 사회에는 ‘통제와 집착 정도는 사랑’이라며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현재 데이트 폭력을 별도로 규정하고 피해자 보호 방안을 명시한 법은 전무하다. 데이트 폭력이 협박, 감금, 폭행 등 ‘뚜렷한 폭력 행위’를 동반했을 시 형법에 근거해 처벌할 수 있지만 여기까지다. 피해자 보호를 위해 가해자와 피해자의 접근금지 조치 명령 등을 규정한 가정폭력처벌법은 혼인과 사실혼 관계를 대상으로 하는 탓에 연인 관계에는 적용하지 못한다. 국회 입법조사관 출신의 조주은 경찰청 여성청소년안전기획관은 “재범이 쉬운 데이트 폭력 특성상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며 “경찰이 현실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보호조치는 스마트워치 지급, 신고 시 신속 출동 정도가 대부분이라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조 기획관은 “정부가 지난 1월 발의한 스토킹처벌법이 통과되더라도 스토킹 피해에 관한 내용이어서 데이트 폭력 피해자는 사각지대에 놓인다”고 우려했다.

영국 정부가 지난해 하원을 통과한 가정 폭력 법안을 소개하고 있다. 해당 법안은 가정 폭력의 범주에 신체적 폭력뿐만 아니라 정서적·강압적·통제적·경제적 학대도 포함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영국 정부 홈페이지 캡처

◆적극적으로 피해자 보호하는 영·미···의무 체포·전과 조회·경제적 통제 처벌

반면 미국과 영국은 갖가지 법을 통해 데이트 폭력 근절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은 가정폭력의 범주에 ‘데이트 관계’ 또는 ‘서로 친밀한 개인적 관계’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포함한다. 데이트 폭력 피해자에게도 가정폭력 피해자가 받는 보호 조치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뿐만 아니다. 미국은 대부분의 주에서 가정폭력 가해자에 대한 의무 체포제를 채택하고 있다. 영국은 지난 2013년 신체적 폭력뿐만 아니라 ‘강압적인 통제’를 가정폭력에 포함시켰고 더 나아가 지난해엔 ‘경제적인 통제’까지 가정폭력으로 간주해 처벌하기로 했다. 2014년부터는 폭력 위험이 있는 연인의 전과 기록을 조회할 수 있도록 하는 일명 ‘클레어법’도 시행 중이다. 김효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스토킹처벌법이 15대 국회부터 발의됐고 데이트폭력 관련 법도 여러 차례 나왔지만 매번 무관심 속에 폐기됐다”며 “가장 시급하게는 가정폭력처벌법부터 데이트 폭력도 포괄할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태영 기자 young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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