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화고 3학년 6반 교실엔 '취업의 계절'이 끝나가도 학생들이 남아 있었다 [커버스토리]

유정인 기자 2021. 2. 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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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화고 19명의 졸업, 그 후

[경향신문]

■나는 ( )이 됐다… 졸업 그 후, ‘2월 이야기’

특성화고 졸업생들. 강윤중 기자
특성화고 3학년 6반의 현재

‘언제 끝나지? 졸업주 마시러 가고 싶다.’ 건우(19·가명)는 졸업식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건우는 교실 텔레비전에 비치는 졸업식장을 보면서 간간이 박수를 쳤다. 코로나19로 가족도 오지 않는 조용한 행사다. “일단 해방된 것 같긴 한데….”

어정쩡한 해방이다. 3년간 다닌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순간이다. 내일부터는 대학생도, 직장인도 아니다. 친구들은 “너 이제 백수됐다”고 말했다. 성인이라는 게 크게 실감나진 않는다. 주민등록증을 내보이고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 지금은 그게 성인임을 확인하는 지표 같다. 눈앞의 모든 길은 열린 걸까, 닫힌 걸까. 아직 무엇도 결정하지 못했다.

같은 반 같은 분단의 정태(가명)는 전문대학 입학을 기다리고 있다. 합격소식을 듣고 다행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원래 취업할 생각이었지만, 코로나19로 취업시장이 얼어붙었다. “왜 하필 우리가 이런 시기를 겪어야 하나.” 억울하지만 인생계획을 틀었다. 취업한 학생들도 회사가 망하는 바람에 교실로 돌아왔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텔레비전엔 같은 반 영빈(가명)이 졸업생 대표로 답사하는 모습이 나왔다. “이제 저희는 미성년자가 아닌 성인입니다. 당당한 사회인의 모습을 보여드릴 테니 애정 어린 눈으로 지켜봐 주십시오.” 공기업에 취업한 영빈은 ‘멋지게 퇴장하고 싶다’는 바람을 어느 정도 이룬 것 같다. 고교 졸업은 가슴 뛰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뜻대로 풀리지 않은 친구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좋지 않다. 환희도, 안도도 드러내지 않는다. 마음을 억누른다.

지난 5일, 서울의 한 특성화고등학교에서 졸업식이 치러졌다. 오랜만에 3학년 6반 전원이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 1년간 코로나19는 각자의 삶에 다른 방식으로 개입했다. 누군가는 취업이 안 돼 군대부터 가기로 했고, 누군가는 학교 취업센터에 매일 들러 취업공고를 훑었다. 또 누군가는 ‘코로나19로 대학 경쟁률이 세지는 거 아닌가’ 걱정하며 참고서를 펼쳤다. 모두는 같은 이유로, 조금씩 다른 불안을 안았다. ‘어른 되는 게 원래 어렵다’고 하기엔 초반 장애물이 높았다.

교문 앞 꽃 장수도, 꽃다발을 든 친지들도 보이지 않던 그날, 19명이 성인의 출발점에 섰다. 그중 15명과 연락이 닿았다. 교문 앞 취업 축하 플래카드와 ‘꽁꽁 언 고졸 취업시장’ 기사 사이를 실제로 통과해온 이들이다. 교복을 벗은 뒤의 일상도, 진로도 각각 달랐다. 서울의 한 특성화고 3학년 6반 졸업생들의 2월을 들여다봤다.

특성화고 전공 중 취업이 잘된다는 전기과,
코로나로 상황 달라져…현장실습도 채용공문도 급감
‘19세 구직자’가 된 이들 “불안하지만 아직 기회 있으니까”…
대학 진학 학생 “취업시장 안 좋아 차라리 선택 쉬웠어요”

‘3학년 6반’보다 ‘전기과 1반’이 익숙하다. 특성화고등학교 내 전공을 따라 붙여진 학급 이름이다. 3년 동안 전기이론을 배우고, 전기기기를 만들고 회로 제어하는 방법 등을 익혔다. 코로나19 사태로 학교 대신 집에서 실습하다 드릴로 책상을 뚫어버린 이도 있었다. 그렇게 전기기능사 자격증을 쥐고 졸업을 맞았다.

서울 A 특성화고 ‘전기과 1반’ 19명은 지난 5일 졸업식을 마지막으로 헤어졌다. 그중 기자와 연락이 닿은 15명도 여러 갈래로 흩어졌다. 서면, 전화, 대면 인터뷰 등을 통해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6명은 취업해 일을 시작했거나, 입사일을 기다리고 있다. 4명은 대학에 진학한다. 3명은 군 입대를 준비한다. 2명은 구직 중이다. 15명 중 취업자는 절반에 못 미친다. 고졸 취업을 활성화한다는 특성화고 설립 취지가 무색한 수치다. 그나마 대학 진학자 4명 중 1명은 취업이 안 되는 바람에 진로를 급히 튼 경우다. 입대를 택한 3명 중 2명 역시 취업이 뜻대로 되지 않아 군대부터 가기로 했다. 이 학교 전기과는 2개 학급 38명이다. 두 반을 합쳐도 취업자는 절반이 안 된다. 전기과는 특성화고 전공 중 취업이 상대적으로 잘되는 과로 통한다. 취업을 감안해 전기과를 택한 이들이 적지 않지만, 졸업 즈음 마주한 현실은 달랐다.

■1~19번, 각자의 사정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임의로 매긴 번호 순으로 보면, 졸업생 1번은 입대를 준비 중이다. 2번은 중소기업에 입사했다. 3번은 구직 중이다. 4번은 진학할 예정이다. 5번은 중소기업에 채용됐다. 6번은 공기업에 합격했다. 7번과 8번은 군대에 갈 예정이고, 9번은 취업했다. 10번은 구직 중이다. 11번은 전문대학 입학을 기다리고, 13번은 5번과 같은 회사에서 일한다. 16번과 17번은 진학한다. 18번도 취업했다. 12·14·15·19번은 연락이 닿지 않았다.

단 몇 줄의 문장에 한 학급의 상황이 적힌다. 결과만으로 압축되지 않는 이야기는 좀 더 복잡하다.

1번이 입대를 준비하는 건 코로나19로 취업시장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군대부터 다녀오는 게 낫다”고 권했다. 군에 있는 형도 복무 연장을 신청했다고 했다. 2번은 취업이 안 돼 대학 입시로 눈을 돌렸다가, 지난달 뒤늦게 중소기업에 입사했다. 전기과와는 딱히 관련이 없는 회사다. 3번은 당분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직장을 구해 볼 생각이다. “코로나19로 20년 인생의 6개월은 버린 것 같다”는 4번은 진학을 결정했다. 빨리 취업할 생각으로 특성화고에 왔지만, “대학은 나와야 한다”는 부모님 조언에 따르기로 했다. 5번은 학교 취업센터를 통해 현장실습을 나갔던 중소기업에 채용됐다.

6번은 공기업 입사를 앞두고 있다. 학교 정문에 그의 합격 소식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붙었다. 취업을 목표로 했던 7번은 군대부터 다녀오기로 했다. 코로나19로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 현장실습 기회조차 잡지 못했던 게 아쉬울 뿐이다. 8번도 입대할 생각인데, 기억이 있는 어린 시절부터 군인이 꿈이었다. 특전사 계열에 관심이 많다. 9번은 중소기업에 입사해 졸업식날 오랜만에 학교에 왔다. 10번은 현장실습을 나갔던 중소기업에 채용되지 못하고 돌아왔다. 구직 중이다.

11번은 원래 공기업 취업을 목표로 삼았지만,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입시를 준비했다. 고교 3년 중 가장 기분 좋았던 순간은 대학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다. 코로나19로 취업도 힘든데, 대학까지 불합격했으면 뭐하고 살아야 할지 고민스러웠기 때문이다. 13번은 5번과 함께 현장실습을 나간 회사에 채용돼 일하고 있다. 입학 때부터 진학을 목표로 했던 16번은 2년제 전문대학에 합격했다. 17번 역시 진학을 택했다. 진학과정에서 코로나19로 취업이 어려워진 학생들이 입시로 몰리면서 벌어질 ‘코로나19 변수’를 걱정한 적이 있다. 18번은 전기과와 무관하게 따로 준비하던 곳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

■19세 취업자와 구직자

민웅(가명)은 졸업 후 직장을 찾고 있는 이들 중 한 명이다. 중소기업으로 현장실습을 나갔지만, 취업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야외 현장을 계속 도는 실습은 고됐다. 며칠 동안 언 땅을 파고 또 팠다. 일을 가르쳐주던 회사 직원들이 민웅이 판 땅에 전선을 묻었다. “학교 안에서 생각한 것과 일이 좀 다르긴 했어요.” 현장실습에서 교실로 다시 돌아온 민웅에게 두 번째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취업시장은 부쩍 좁아진 때였다.

졸업과 함께 ‘19세 구직자’가 됐다. 뉴스에서 취업 이야기가 나오면 신경이 쓰이곤 한다. 일단 병역특례업체를 목표로 취업을 알아볼 생각이다. “성인이 된 느낌은 정말 ‘반반’인 것 같아요. 좋은 것 반, 나쁜 것 반. 술 마실 때 잠시 ‘나 성인이야!’ 하고 좋아하다가, 혼자 생각에 잠길 때는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으니 좀 불안하다고 해야 하나.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있어요.”

역시 구직 중인 건우(가명)는 중학생 때까지 운동을 하다 팔꿈치 수술을 받은 뒤 그만뒀다. 아직도 그 종목 경기는 못 본다. ‘기술을 배우라’는 권유에 특성화고에 왔고, ‘취업이 잘된다’고 해서 전기과를 택했다. 졸업과 함께 ‘구직자 첫날’을 맞았다. 아웃렛 주차안내 아르바이트를 하며 버는 월 50만원으로 생활하면서 일을 찾아보려 한다. “운전면허도 따 두고,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일단 병무청 신체검사도 받아놓으려고요.”

직장인도, 학생도 아닌 시기를 맞았지만 두 사람 다 마냥 불안해하진 않는다. 다만 올해 상반기 안에는 길을 찾고, 그 길 위에서 나아가고 있기를 바란다. “처음엔 불안했는데 아직 젊으니까, 기회는 있을 거라고 믿고 싶어요. 직장인, 학생 같은 분류엔 안 들어가지만 ‘아르바이트하면서 스스로 장래를 탐색하고 있는 사람’, 딱 그렇게 지금의 저를 봐줬으면 해요.”(건우)

취업자라고 밝은 면만 경험하진 않는다. 은호(가명)는 학교 취업센터를 통해 폐쇄회로(CC)TV를 다루는 중소기업에서 두 달 현장실습을 했고, 지난 1월1일부로 정규직으로 채용됐다. 일찍 취업된 편이라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친척들에게 회사 이름을 말하면 “어디?”하고 갸우뚱하는 게 가끔 불편하다. 일은 쉽지 않다. “말이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까지이지 매일 10시간 넘게 일하는 것 같아요.” 점심을 급히 먹고 바로 일할 때도 많다. 성인으로서의 첫 직장, 꿈꿔 온 곳이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그래도 만족하기로 한다. “코로나19 때문에 취업이 너무 힘들었어요. 지금 만족도가 높진 않지만, 취업했다는 것 자체로 만족해야죠, 뭐.”

공기업 특채에 합격한 영빈(가명)은 특성화고 졸업자 중 성공적인 경우다. 노을이 지는 학교 옥상에서 최종합격 소식을 확인했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매일 학교 도서관에 남아 밤까지 공부한 게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늘 함께 공부하며 힘을 주고받은 친구가 ‘취업 재수’를 하게 된 것은 두고두고 마음에 걸린다. “제가 말하기 전에 친구들이 먼저 입사 소식을 물어보고 축하해줘서 고마웠어요. 그래도 친구들과 어울릴 때 서로 취업 얘기는 잘 안 하게 됐어요.”

■‘코로나19’라는 모두의 사정

경로는 제각각이지만, 지난 1년간 코로나19는 모두에게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 두드러진 변화는 속도였다. 코로나19는 지난해 특성화고 3학년 교실의 시간을 느리게 흐르도록 했다. 가을부터 본격화된 ‘취업의 계절’이 겨울이 다 지나도록 끝나지 않았다.

예년 같으면 전기과 3학년 학생들은 여름에 전기기능사 자격증을 따고, 가을부터 학교 취업센터를 통해 중소기업 등에 현장실습을 나간다. 1~2개월 실습을 마치면, 채용으로 연계되는 경우가 잦다. 11~12월이면 자연히 교실 의자가 거의 비워졌다.

지난해는 달랐다. ‘학생을 추천해 보내달라’는 중소기업 공문이 확연히 줄었다. 학교 취업센터를 찾은 학생들은 교사들이 중소기업에 ‘우리 학교 학생들 좀 뽑아가달라’ ‘채용공문 좀 보내달라’는 전화를 돌리는 모습을 봤다. 현장실습을 나갈 곳이 줄었다. 취업을 목표로 삼은 학생들 중에서도 현장실습 기회를 얻지 못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한 졸업생은 “취업공고가 많이 들어오면 신청했을 텐데, 별로 없는 데다 옆반까지 합쳐서 추천하니 경쟁률도 너무 세서 엄두를 못 냈다”면서 “3~4건을 제외하곤 일자리의 질도 좋아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겨울이 되도록 교실에 남은 학생이 많았다.

민혁(가명)은 취업이 안돼 전문대에 가려다가, 1월 중순에 중소기업에 합격해 진로를 바꿨다.

■취업자는 단 6명…아이들은 군대로 대학으로 발길 돌려

“위 사람은 고등학교 3개년의 전 과정을 수료하였으므로 이 졸업장을 수여합니다.” 똑같은 문장이 적힌 증서를 받고, 각자 다른 길 앞에 섰다. ‘특성화고 전기과 학생’에서 직장인, 대학생, 군인 그리고 구직자로 뿔뿔이 흩어지는 날이다. 졸업식이 열린 지난 5일 ‘모교’ 담벼락 아래 모인 학생들은 “당장은 졸업도, 졸업 이후의 삶도 실감이 안 난다”면서 서로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기 바빴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지난해 5월 정부 ‘직업계고 취업활성화 방안’ 발표…
장려금·지원센터 운영 추진 밝혔지만 학생 체감도 낮아
“우리는 3개월 뒤 실업자가 된다”
작년 11월 졸업생들과 거리 시위…
고졸 일자리 보장하고 취업 정보 교육 강화 바라

“조금 더 지난다고 코로나19에서 바로 벗어날 것 같지도 않아서 기회가 있을 때 취업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어요. 취업이 더 우선이니까요. 하필 저희 졸업 때 코로나19 상황이라 선택권이 줄어든 건 아쉽죠.”

한 졸업생은 “12월이면 3학년은 다 취업을 나가서 학생이 거의 없었는데, 지난해는 한 반에 1~2명만 빼고 다 나오고 있었다”면서 “지금도 드물게 취업 소식이 들려오고 있으니 최종 취업률은 지켜봐야겠지만, 확실히 시기는 늦어졌다”고 말했다.

사정은 다른 과도 다르지 않았다. 같은 학교 ‘기계과’ 졸업생은 “기계과는 보통 2학기 시작하고서 10월 정도에 취업이 마무리되는데, 이번에는 11월 말까지도 계속 이어졌다”고 했다.

특성화고 학생이라고 모두 취업만을 생각하진 않는다. 3년 동안 출렁출렁 취업과 입시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올해는 코로나19로 대학 입시를 고민하는 이들이 늘었는데, 대입을 일찌감치 결정한 사람들이 마음을 바꿀 이유는 줄었다. 1학년 때부터 진학을 생각했다는 한 학생도 잠시 취업을 고민했다가 마음을 다잡았다. “정말 좋은 조건이라면 취업으로 갔을 수도 있었겠지만, 코로나19가 있었잖아요. 취업시장이 안 좋으니까 선택이 오히려 쉬웠어요.”

코로나19가 실제 특성화고 졸업생들의 인생 그래프를 어떻게 틀어놓았는지 공식 통계는 아직 없다. 올해 말 발표될 교육부의 ‘직업계고 졸업자 취업 통계’에서 코로나19 여파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국가승인통계로 전환된 뒤 지난해 11월 첫 조사결과를 발표했는데, 2020년 1~2월 졸업한 전국 576개 직업계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4월에 조사해 코로나19 영향이 다 반영되진 않았다. ‘코로나19 초기’임을 감안해도 취업률은 높지 않았다. 2020년 직업계고의 전체 취업률은 50.7%로 집계됐다. 졸업자 중 진학자와 입대자 등을 뺀 뒤, 남은 이들의 취업비율을 산출한 통계다. ‘전기과 1반’의 일부 졸업생처럼 취업하지 못하는 바람에 진학과 군 입대로 진로를 바꾸면, 취업률 통계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들이 바란 것은

지난해 4월 영빈은 특성화고 학생들을 대표해 당시 교육부 고위 관계자와 영상 통화로 만났다. ‘특성화고 졸업생들 취업을 도와달라. 기업들이 특성화고 졸업생들의 채용 비율을 높일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달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공기업은 모르겠지만, 중소기업이나 강소기업 쪽으로 준비를 많이 하시라. 그런 쪽의 채용을 위해 노력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취지의 답변을 받았다고 그는 기억했다.

실제로 지난해 5월, 정부는 “코로나19 영향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고 직업계고 학생들의 취업지원을 보다 강화”할 목적으로 ‘직업계고 취업활성화 방안’을 만들었다. 취업연계 장려금, 중앙취업지원센터 운영 등 ‘고졸 취업 활성화 지원 사업’도 추진한다고 했다. 학생들의 체감도가 높진 않았다. “영상통화 당시 교육부 답변을 받고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기대도 됐고요. 그런데 정작 학기 말이 돼서 보니까 취업 나가는 애들도 별로 없고, 채용 공문도 별로 없었어요. 제가 보기에 (상황이) 좋아지거나 어려움이 많이 회복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지난해 11월부터는 특성화고등학교권리연합회 소속 학생과 졸업생들이 거리로 나왔다. “우리는 3개월 뒤 실업자가 된다. 고졸 일자리 보장, 정부가 나서라” “공공부문 고졸 일자리 20% 비율 보장하라” “코로나 고졸 취업급여 지급하라” 등의 팻말을 들었다.

전기과 1반 졸업생들이 바라는 점과 크게 다르진 않았다. “회사에서 특성화고 졸업생을 뽑는 전형이 조금 더 많아져야 한다” “특성화고 채용 비율이 높아져야 한다”고 말하는 졸업생이 많았다. 특성화고 교육과정의 시스템 강화를 주문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 졸업생은 “목표한 곳에 대한 학교의 취업 정보가 워낙 없어서 개인적으로 검색해가며 정보를 찾았고, 학교에서는 자기소개서 첨삭 정도를 봐준 것 같다”며 취업 정보 강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전기과 1반 학생들은 학력과 직장 등 눈에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줄을 세워 차별하는 사람들을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고 했다. 다만 ‘사회’에 그런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고 했다.

영빈은 공기업 입사 뒤 대학에도 진학할 계획이다. ‘학벌을 안 보는 사회’라는 구호는 믿지 않는다. “아무리 요즘 ‘능력주의’를 말한다고 해도 학벌을 안 보는 시대는 아직 아니라고 생각해요. 회사에서 승진도 하려면 어느 정도 영향을 주지 않을까요. 일을 하다가 대학에도 갈 생각입니다.”

또 다른 졸업생들은 “차이점은 인정해야 하지만, 나누더라도 차별하지 않는 사회였으면 한다” “학력이든, 실력이든 그것만을 가지고 사람을 가르는 세상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건우는 구직 시기를 무사히 통과해 10년쯤 뒤엔 “무엇에도 시달리지 않고, 순탄하게” 일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다. 지난 5일 졸업식에 재학생 대표로 나선 후배는 송사에서 “선배님들의 사회로의 첫 발걸음에 꽃이 가득 피어나길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했다. 건우는 생각한다. ‘첫 발걸음에 아직 꽃은 전혀 안 피어있는 것 같은데….’ 노력해서 길을 찾으면, 직장을 구하고 나면, 그때는 꽃을 피울 수 있을까.

■“특성화고는 조기취업 염두에 두고 가는데…취업의 질 뒷받침 안 되면 굳이 선택할 필요 없죠”

2017년 8월24일자 경향신문에는 ‘특성화고 차별’에 당사자로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남성우씨 등 특성화고 학생들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남씨는 “2021년에도 고졸 취업자를 향한 차별은 여전하다”고 말한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7년 ‘학생 권리연합회’ 만든 초기 멤버 남성우씨


“특성화고 학생들은 ‘공부 못하고 말 안 듣는 애들’이라는 편견을 깨고 정당한 권리를 얻고 싶습니다.” 2017년 8월, 특성화고등학교 1·2학년 학생 세 명이 기자와 인터뷰하면서 말했다. 특성화고 학생들이 마주하는 차별과 위험에 맞서 ‘특성화고등학생 권리연합회’ 출범을 준비하던 이들이었다. 네 달 뒤 전태일 열사가 산화한 종로 평화시장에서 특성화고 학생들이 중심이 돼 꾸린 권리연합회가 출범했다.

3년6개월이 흘렀다. 설립 추진위원으로 당시 인터뷰에 나섰던 남성우씨(21) 등 세 명은 그사이 특성화고를 졸업했다. 연합회는 여전히 활발히 활동하지만, 세 사람은 출범 초기에 적극 참여하다가 활동을 그만뒀다. 졸업 뒤엔 자영업과 대학, 군 입대 등 각자 다른 길로 흩어졌다.

사회는 변한 듯 변하지 않았다. 이들이 연합회 출범 전부터 제기해온 청년 노동자들의 산업안전 문제는 일부 제도개선에도 불구하고 ‘끝나지 않는 비극’으로 계속된다. 특성화고 학생들의 낮은 취업률은 몇 년째 이어진다.

특성화고 졸업생으로 사회를 겪은 시간은 이들에게 어떤 새로운 고민을 던져줬을까. 남씨에게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졸업 후 어떻게 지냈나요.

“건축회사에 잠시 다니다가 아르바이트 등을 거쳐서 지난해 초부터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어요.”

-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를 보냈겠습니다.

“한국에 코로나19 환자가 많지 않았던 3월에 영업을 시작했어요.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었으니까요. 매출은 4분의 1 토막이 났어요.”

- 동기들 상황은 어떤가요.

“저와 같은 2018년 특성화고 졸업생들은 ‘외환위기 사태 이후 최악’이라고 할 정도로 취업이 힘들었습니다. 당시 현장실습 나갔다가 숨진 이민호군 사건 이후, 조기취업형 현장실습을 정부가 잠시 폐지했어요. 실습 나간 학생들도 돌아왔고요. ‘안전한 일자리’에 취업할 수 있는 대안을 같이 시행해야 하는 건데, 그건 없었어요. 취업률이 뚝 떨어지고 질도 떨어졌습니다. 저는 마음에 맞는 곳은 아니어도 취업을 해보긴 했으니, 운이 좋은 편이었습니다.”

- 코로나19로 취업이 어려워진 올해 졸업생들 얘기가 와닿겠네요.

“특성화고 졸업생, 대졸자 등 모두가 취업 절벽을 마주하고 힘겨운 때를 보내고 있는 걸로 압니다. 경제가 너무 어려우니까, 특성화고 채용비율 조정만으로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는 것 같아요. 기업도 있는 직원을 해고하고 있으니까요.”

- 계속되는 특성화고 취업률 문제는 어디에서부터 풀어야 할까요.

“특성화고 취업의 경우는 몇 년 전부터 낮아진 취업률 문제가 쌓이고 있다고 생각해요. 조기취업을 염두에 두고 특성화고에 진학하는데, 취업률이나 취업의 질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굳이 특성화고를 택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경쟁력이 낮아지는 거죠.”

- 특성화고 졸업생으로 사회의 편견을 느끼나요.

“고졸 취업자는 대졸자에 비해 여러 면에서 차별받는다는 걸 계속 느낍니다. 한국은 좋은 대학을 나오면 100% 신분상승이 되는 사회는 벗어났지만, 여전히 고졸자는 실력과 무관하게 차별받을 확률이 굉장히 높은 사회라고 할까요. ‘○○라서 월급이 적고, ○○라서 승진에서 누락된다’는 데 ‘고졸’을 넣어보세요. 그것이 현실이라는 게 답답합니다.”

- 직접 겪은 적도 있나요.

“저는 직장 생활을 오래하지 않았지만, 특성화고를 같이 졸업한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건축회사에 취업한 한 친구는 ‘특성화고 출신’이라는 이유로 대졸자인 동료에게 모욕적인 발언을 들었다고 하고요. 똑같이 사무직 업무를 할 수 있는 자격증을 갖추고 있어도, 고졸 취업자는 ‘야외, 현장, 몸 쓰는 일’에 해당하는 업무를 배정받을 때가 많습니다.”

- 연합회 활동은 어떤 이유로 중단하게 됐나요.

“고교 2학년 때 시작해서 3학년 중반까지 활동했어요. 취업률은 계속 낮아지고 현장실습생 사망도 이어지던 때였는데, 특성화고 모임에서 ‘멘토’로 알게 된 분들이 학생이 주체가 되는 단체를 말씀했어요. 이런 때 우리 의견을 주체적으로 전할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이후 기업과 정부에 어떤 대책을 요구해야 하느냐, 정치활동을 통한 변화도 꾀해야 하느냐 등을 두고 다른 생각이 있어서 연합회 참여는 접게 됐어요. 그래도 제 일이고, 또 후배들의 일이기 때문에 특성화고 문제는 늘 관심을 쏟고 안타까워하며 지켜보고 있습니다.”

- 특성화고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어떤 진로를 택하더라도 사회에서 특성화고 졸업생으로서 불합리한 일들을 겪게 될 수도 있어요. 다양한 약자들이 당사자로서 직접 목소리를 내면서 사회를 바꿔왔듯이, 특성화고 졸업생들도 분명히 인식을 바꿔나갈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힘들더라도 자기 방향을 세우고, 이겨낼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응원하고 싶습니다.”

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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