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밀유지·갑을관계..공모가 산정 정답은 없다?

김태현 기자 2021. 2. 20.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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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바이오사이언스의 백신 공장 안동 L하우스 /사진=SK바이오사이언스

공모가 고평가 논란이 계속된다. 대어급일수록 더 그렇다. 지난해 빅히트부터 다음달 청약을 앞둔 SK바이오사이언스까지 공모가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업종·상황에 따라 고무줄처럼 변하는 공모가 산정방식에 대한 불만도 계속된다.

그러나 투자은행(IB) 업계는 공모가 산정과 관련해 증권신고서에 명시되지 않는 사정도 감안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편 공모가 논란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발행사와 주관사 간 갑을관계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말 못 하는 비밀에 번지는 공모가 논란
SK바이오사이언스는 다음달 4, 5일 기관 투자자를 대상으로 수요예측을 진행하고 공모가를 확정한다.

앞서 SK바이오사이언스가 제출한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희망 공모가는 4만9000~6만5000원이다. 발행회사와 주관사가 협의해 결정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 공모가 산정과 관련해 논란이 되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비교기업과 평가지표다. 비교기업으로 기준을 정하고 평가지표로 기업가치를 산정한다.

SK바이오사이언스의 비교기업은 △론자 △삼성바이오로직스 △우시 등이다. CMO(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 업체들이다. 공모가 고평가를 지적하는 이들은 백신이 본업인 SK바이오사이언스와 CMO를 비교하는 건 무리라고 설명한다.

통상 CMO 업체는 백신을 개발 판매하는 업체와 비교해 기업가치가 높다. 개발에 들어가는 연구개발(R&D) 비용 부담이 적어 수익성이 낫기 때문이다.

반면 주관사들은 SK바이오사이언스가 진행 중인 코로나19(COVID-19) 백신 CMO를 들여다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아스트라라제네카와 노바백스의 코로나19 백신 원액을 생산·공급하는 위탁생산 계약을 맺었다.

문제는 코로나19 백신 CMO에서 발생하는 실적은 증권신고서에 반영하지 못했다. 아스트라제네카와 기밀유지 조항 때문이다. PER(주가이익비율)이나 향후 현금흐름 관련 지표를 숫자로 공개할 경우 아스트라제네카와의 계약규모와 해당 계약과 관련한 이익률 등이 직·간접적으로 공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SK바이오사이언스는 적정 공모가 산출을 위해 EV/Capacity(생산량 대비 기업가치) 방식을 택했다. 선례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과거 삼성바이오로직스의 IPO 때 이 방식이 시장에 소개됐다. 당시만 해도 생소한 방식이었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현재 유수의 글로벌 제약사와의 잇딴 계약성사로 당시의 밸류에이션 방식이 정당했음을 보여준 바 있다.
플랫폼 확대나선 빅히트, 주가도 재평가

지난해 10월 진행된 빅히트 공모가도 고평가 논란에 휩싸였다. 빅히트의 희망 공모가는 10만5000~13만5000원. 기관 수요예측을 거친 확정 공모가는 13만5000원.

이 때 논란도 비교기업에서 나왔다. 빅히트는 비교기업으로 JYP Ent., 와이지엔터테인먼트, NAVER(네이버), YG PLUS, 카카오 등을 선정했다. 당시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빅히트를 플랫폼 회사와 비교하는 건 무리라는 지적이었다.

빅히트 평가지표인 EV/EBITDA(세전 감가상각 전 영업이익 대비 기업가치)를 기준으로 비교했을 때 네이버(33.26배)와 카카오(49.37배)는 평균 42.36배보다 높은 편이었다.

지지부진한 주가 흐름도 빅히트 공모가 논란에 불을 지폈다. 지난해 10월 15일 장 초반 따상(상장 첫 날 공모가의 2배 가격에 시초가 형성, 이후 상한가를 뜻하는 은어)을 기록한 직후 하락 마감했다. 이후 주가는 14만원대까지 내려갔다.

최근 빅히트 주가는 되살아났다. 19일 기준 빅히트 주가는 23만4500원이다. 이달 들어 37.6% 올랐다. 빅히트의 K-팝 플랫폼 '위버스'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시장 의혹을 당당히 해소한 사례로 꼽힌다.

빅히트는 네이버와 협력해 위버스와 '브이라이브' 통합 플랫폼을 내놓을 계획이다. 빅히트가 최대주주로 사업을 주도하고, 네이버는 기술 역량에 집중한다. 와이지엔터테인먼트 소속 아티스트 MD(기획상품)를 위버스에 공급 위탁하는 계약도 맺었다.

만년 적자 바이오기업은 공모가 산정 어떻게?…'이것' 사용한다

그렇다면 IPO 과정에서 있어 기업가치는 어떻게 산정될까. 산정방식에는 절대가치 평가와 상대가치 평가가 있다. 절대가치평가를 사용하면 기업가치를 자의적으로 책정할 수 있어,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상대가치 평가방법을 이용한다.

상대가치 평가는 △PER(주가이익비율) 비교 △PBR(주가순자산비율) 비교 △EV/EBITDA △PSR(주가매출비율) 비교 등을 통해 이뤄진다. 사업 모델이 유사한 동종업계 기업의 평균 PER에 할인율을 적용해 공모가 밴드를 정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업종별로 평가 지표는 달라진다. 자기자본 등 자산가치가 부각되는 금융업종은 PBR을 쓰는 경우가 많다. 비현금성 비용이 많은 석유·화학·철강 등 장치산업은 EV/EBITDA를 선호한다.

현재 수익이 나지 않는 적자회사의 경우는 매출을 활용한 PSR 등이 사용된다. 특히 향후 신약개발이나 파이프라인 증설 등을 통해 성장 가능성이 큰 바이오기업은 EV/세일즈(매출), EV/파이프라인, EV/Capacity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EV/Capacity와 EV/파이프라인을 통해 기업가치를 산출한 기업이 삼성바이오로직스다.

2016년 상장 당시 주관사는 EV/Capacity와 EV/매출을 통해 삼성바이오로직스 가치와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가치를 산출, 총 기업가치를 10조5676억원으로 추정했다. 현재 시가총액이 약 52조원인 것을 고려하면 4년여 만에 5배 넘게 늘어난 것이다.
발행사가 '갑'인 환경, 공모가 고평가 불러온다
업계에서는 주관사보다 발행사를 '갑'으로 만드는 환경이 공모가 고평가 논란을 가져온다고 지적한다.

주관사들의 질적인 평판보다 양적인 실적 중심으로 평가하는 문화가 수수료 경쟁을 유도한다는 설명이다. 결국 '대어급 딜'을 하나라도 더 따기 위해 주관사들은 적정 공모가를 찾기보다 발행기업의 입맛에 맞출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주관사가 정보발견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을 때 평판 리스크가 강하다면 적정한 가격 책정을 위해 힘쓰게 될 것"이라며 "아직은 국내 시장에서 코스피에 진출하는 대기업의 경우 발행사의 입김이 센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연구위원은 "평판시장은 주관사로 하여금 공모가의 적정성, 투자자 보호를 위한 주관사의 역할, 공모주의 장기성과 향상 등에 필요한 서비스를 향상하도록 유도할 것"이라며 "주관사에 대한 질적 평가기준과 이를 주기적으로 시장에 알릴 수 있는 채널 등이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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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기자 thkim124@mt.co.kr, 강민수 기자 fullwater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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