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코리아] 싱글맘 의원의 ‘꼬마 비서’
장애 동생과 휴일 근무 장혜영
다양한 가족이 바꾼 의회 풍경
정파 넘나드는 생활 밀착형 정치
“우리 딸은 나하고 껴안고 자야 하는데 걱정이에요.” 작년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과 저녁 자리에서 만났을 때였다. 알려졌듯 김 의원은 조카 둘에 입양 딸을 키우는 싱글맘. 지역구인 부산에 두고 주말에만 보는 초3 딸 걱정이 컸다. 국회의원도 평범한 워킹맘이었다. 정치인은 내 삶과 동떨어진 사람이라는 편견이 조금 사라졌다.
2년 차를 맞은 싱글맘 초선 의원은 장거리 육아에 적응했을까. 오래간만에 연락했더니 좌충우돌 육아기를 쏟아냈다.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꼬마 비서님, 감사해요~’라는 문자가 왔더란다. 자초지종은 이랬다. 안 그래도 딸을 자주 못 보는데 코로나 때문에 등교도 안 하고 있으니 영 맘이 안 좋아 국회에 데리고 와 원격 수업을 듣게 했단다. 엄마가 국회에 출석한 사이, 녀석의 장난기가 발동했다. ‘국회의원 김미애 꼬마 비서 ○○○’ 하고 자기 이름 넣은 명함을 그려 의원실로 찾아온 손님에게 뿌린 것이었다. 엄마 개인용 전화번호까지 턱 하니 박아! 국회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일’과 ‘돌봄’ 병행이 이뤄지는 의원실을 또 본 적이 있다. 얼마 전 인터뷰한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종종 주말에 동생을 데리고 국회로 출근한다고 했다. 동생은 24시간 돌봐 줄 사람이 필요한 중증발달장애인이다. 18년간 장애인보호시설에 있었는데 시설의 열악함을 알게 된 장 의원이 몇 해 전 데려와 둘이서 산다. 주말엔 돌봐 줄 사람 구하기가 도저히 힘들어 의원실로 데리고 와 곁에 둔다고 했다.
아이와 등원한 싱글맘 의원, 장애인 동생과 휴일 근무하는 의원. 일과 가정이 완벽히 분리된 듯한 공간인 국회에서 보기 드문 풍경이다. 돌봄을 해결하지 못해 일터로 가족을 데리고 온 경우라 정치인의 카메라 앞 보여주기식 쇼와도 다르다.
‘국회가 유치원이냐, 놀이터냐’는 시선도 있겠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의원 배지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돌봄 사각지대가 우리 사회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의원도 이런데 생업에 쫓기는 이들이 겪는 돌봄 공백은 오죽할까 싶다.
국회의원이라는 화려한 계급장을 떼고 보면 둘은 입양아 둔 싱글맘, 장애인 가족이다. 소수자 목소리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소속 정당의 정치 지향은 정반대지만, 정치를 대하는 두 사람의 태도엔 공통점이 있어 보인다. 당사자만이 느끼는 절박함, 진심이다. 뜬구름 잡는 소리 넘치는 우리 정치에서 결여된 부분 아닌가.
주변에 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두 사람을 응원하는 이들이 꽤 있다. 불임으로 입양을 고민하다가 ‘정인이 사건’ 이후 용기가 안 난다는 40대 지인은 김 의원이 입양 발언을 할 때마다 유심히 본다고 했다. 친문 성향인 그는 국민의힘 의원 얘기에 귀 기울일 줄은 몰랐단다. 장애인 딸을 둔 보수 60대 지인은 장 의원 지지자가 됐다. “장애인 가족 마음은 안 겪어 보면 모른다. 나하고 상관없는 얘기하는 정치인보다 우리 딸 삶 바꿔주는 정치인이 낫다”고 했다. 사람들 마음을 움직이는 정치는 결국 ‘내 얘기’라고 느끼게 하는 정치 아닐까.
갈수록 다양한 방식의 삶이 생겨나고 새로운 사회 문제가 곳곳에 생겨나는데, 정치만 보수·진보라는 커다란 두 덫에 걸려 벗어나질 못한다. 두 정치인은 말한다. 좌우 낡은 두 틀로는 자신들의 정치를 설명할 수 없다고. 며칠 전 장 의원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떠오르는 인물 100인’에 선정됐다. 기준은 다양성·불확실성이 커지는 시대에 희망을 줬느냐였다. 큰 그림 짜는 정치만큼이나 일상의 세세한 틈을 보듬는 정치가 중요한 세상이 왔다는 신호다. 삶에서 우러난 정책을 말하며 진영을 흔드는 ‘생활 밀착형’ 정치인을 더 많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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